사람이 머무는 공간엔 예외 없이 온갖 살이 퍼져 있다. 이런 살은 금기를 범했을 때 느닷없이 몽니를 부린다. 주당살, 상문살, 동법살, 성주님살……, 상가(喪家)에는 상문살귀(喪門殺鬼)가 모여있다. 때문에 상가에 다녀온 뒤 병이 나면 ‘상문(이) 들기’도 한다.
19일 덕진공원을 찾은 김씨부인도 상문이 들었다. 사방으로 액막이 줄이 쳐진다. 솟대가 세워지고 멍석이 깔린다. 멍석의 네 귀에 항아리가 놓이고 그 속에 대나무가지가 가득 담긴다. 장구와 북, 징과 쇠, 태평소가 옆을 막는다. 이제 굿판이 벌어진다.
사다리 위에 김씨를 눕히고 무녀의 주장소리에 맞추어 흰 수건을 두른 마을 아낙들은 절구방아를 찧는다. 주무녀가 나와 한바탕 장구소리를 낸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속엔 눈먼 봉사도 있고 저승길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밴 여인도 있다. 저 멀리 김씨부인을 데리러 저승사자가 한 걸음으로 달려온다. 병자를 죽음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허장마당은 이제부터다.
아낙들은 환자의 옷을 입힌 인형을 마치 사자처럼 상여를 맨다. 주무녀의 노래가 구슬프게 이어진다. 망자의 혼의 달래는 무녀의 소리와 춤은 듣는 이마저 이승에 없는 듯 하다. 마을 사람들은 굿판에 모인 잡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지전을 주며 배송한다. 사람들의 재담은 바라보는 이를 더욱 즐겁게 한다. 어쩌면 희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루 위에 김씨를 밖을 향해 앉힌다. 머리 위에 땀밴 속옷을 덮는다. 상문이 달려나오면 무녀가 신칼로 위협한다. 살귀는 겁내지 않고 오히려 비웃는다. 다시 도끼를 들고 달려오면 기겁하며 도망간다. 사람들은 상문살에서 벗어난 김씨의 쾌유를 빌며 기뻐하며 노래를 부른다.
이윽고 한 손에 흰 수건을 든 무녀는 수없이 많은 선을 그려가며 살을 푼다. 짐직 느리게, 이따금 수건을 오른쪽 왼팔로 옮기고 때로는 던져서 떨어뜨린 다음 몸을 굽히고 엎드려 두 손으로 조용히 들어올리기도 한다. 슬픔은 머무르지 않고 환희의 세계로 승화된다.
이제 모든 사람이 흥에 겹다.
/ 최기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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