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월드컵史 산증인, 전북출신 선수1호 정남식옹

 

 

한국 축구의 월드컵사를 연 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회때 직접 그라운드에 섰던 우리 월드컵사의 산증인 정남식옹(81, 서울 송파구 석촌동). 정옹은 한국이 월드컵 첫 본선에 올랐던 스위스 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중 골기퍼로 활약한 홍덕영씨와 함께 유일한 생존자다.

 

김제 만경 출신의 정옹은 스위스 월드컵때 유일한 전북 출신이어서 도내 출신 월드컵 축구 출전 1호 선수이기도 하다.

 

요즘 세대에겐 이름 석자 조차 낯설지만 정옹의 당시 명성은 대단했다. 40~50년대의 차범근, 황선홍, 최용수라할 만한 스트라이커였다.

 

당시 유럽 축구와 기량 차이가 커 본선에서 1골도 기록하지 못했지만 본선 진출에 그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본선 진출을 다툰 일본과 1차전서 해트 트릭을 기록하며 승리의 주역이 됐고, 2차전서도 2골을 넣어 일본과 2대 2로 비겼다. 38세 노장으로 레프트 윙을 맡았던 정옹은 추운 날씨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벌어진 당시 한.일전 경기를 그래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정옹의 발 기술은 당시 아시아권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1m74㎝ 정도의 스트라이커로서는 별로 크지 않은 신장에 주력이 특별히 빠르지 않으면서도 일거에 2~3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슛 찬스를 만들어 골로 연결시키는 ‘신기’를 보여주었다.

 

정옹의 기량은 일본전 이전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48년 홍콩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대회 아시아예선전서 한국은 홍콩을 6대 0으로 대파하고 올림픽 축구 출전권을 땄다. 정옹은 이게임에서 혼자 5골을 넣으며 스타 덤에 올랐다. 그후 몇 차례 친선 경기를 통해 홍콩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옹의 사진이 지금도 홍콩의 국립체육관에 걸려있다고 한다.

 

“지금은 각국에 대한 정보가 있지만 세계 수준의 축구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몰랐어요. 처음 헝가리 선수들을 보았을 때 배가 불럭 나와 제대로 뛸 수 있을까 걱정해줄 정도였으니까요.” 몸집이 두 배 정도되는 헝가리 선수들이 날렵한 움직임에 우리 선수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제대로 하프라인을 한 번도 넘지 못해 골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정옹은 당시의 아픔을 털어놓았다.

 

38세에 월드컵 주전으로 출전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과시한 정옹는 월드컵 출전 이후에도 5년 더 육군첩보대에서 감독겸 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했다. 그후 모교인 고려대로 옮겨 잠시 감독을 맡았다. 김정남 전 국가대표 감독도 그가 직접 지도한 제자다.

 

해병대 축구팀을 창단해 초대 감독을 맡고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정형식씨가 친동생이며, 아들 환종씨도 고려대와 한전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후배 축구인들은 정옹을 그라운드의 신사로 기억하고 있다. 경기장에 나갈 때 꼭 머리에 기름칠을 출전했다는 것. 또 치열한 수중전을 벌이고도 하얀 유니폼에 흙이 묻지 않을 만큼 「예쁜」 축구」를 했다고 한다.

 

전문 축구인으로 유일하게 월드컵조직위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정옹은 월드컵 개최도시 결정 당시 고대 동창인 이철승 전 국회의원과 함께 전주개최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보탰다.

 

만경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간지 60여년이 지났지만 그는 초등학교 시절을 잊지 못하며, 지금도 기회 있을 때마다 고향을 찾아 향수를 달랜다.

 

 

 

 

전북일보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선거전북에도 본선거날 투표용지 부족…익산서 선거당일 추가 공급

정치일반李대통령, 투표용지 부족 "민주주의 한순간에 망가뜨린 일…주권 감수성 부족 반성”

정치일반李대통령 “검찰 보완수사권, 결론은 국회에…국민 불신 너무 커”

오피니언씁쓸한 싹쓸이

오피니언[사설] 깜깜이 교육감 선거, 지금이 개선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