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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창고집 '창고음악회'

 

은영이와 남식씨네 집에서 열리는 "창고음악회”-유난히 천장이 높고 휑뎅그러니 네모난 운암호반의 빈 창고를 살림집으로 개조하여 아름답게 가꾸며 살고 있는 이 집 사람들을 이웃들이 모두 부러워 하여 "倉庫집”이라 부르는 내력을 아끼는 주인이 이렇게 이름지었다 한다.-에 초대되어 갔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손님들이 많다. 가족들끼리, 연인들끼리, 젊은이와 어른들, 아이들은 또 저희들끼리 뛰어다니며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호반에서 불어오는 초여름 밤 바람이 상쾌하다. 옷자락을 스치며 넓은 마당을 기웃기웃 돌아다니는 바람들. 마침, 잘 익은 여름 과일처럼 향긋한 냄새가 묻어나는 듯 하다.

 

오백여 평 넓은 잔디마당도 손질이 아주 잘 되어 있다. "마음을 다하여 마당을 치우고 손님을 모시겠다.”고 한 주인의 정성이 짐작된다. 마당 앞으로 호수를 바라보며 수 십년 해묵은 느티나무와 감나무가 서 있고, 뒷편에 심어 한 길이나 자란 벚나무 잎들이 소소한 소리를 내며 시원하다. 잔디밭 아래 낮은 동산에는 아마 백년도 더 되었을까. 나이를 잊은 듯 청청하게 푸른 소나무가 너댓 그루나 있어 운치가 대단하다. 소나무 아래에 누워 있는 이 누구인지, 비석도 없는 두 무덤에도 잔디가 푸르러 보기에 정겹다.

 

잔디밭으로 군데군데 준비되어 있는 다과상들 위에 방금 앞서 빚은 모양으로 부드러운 쑥떡이 인기다. 싱싱한 방울토마토와 과자들도 올라 있는데, 음식과 함께 여린 들꽃이나 싱그러운 담쟁이 덩굴 한 줄기를 깔아 치장한 안 주인의 세련된 상 차림 솜씨가 음식보다 더 맛있고 멋있어 보인다. 오지그릇을 사방에 고이고 그 위에 투명한 유리를 얹어 낸 상 위에는 허브 향의 작은 화분 하나를 올려 멋스러움을 더하였다. 뒷 문 양쪽에 장식한 돌확에 물을 채우고 띄운 꽃잎들이 돌확 가장자리에 켜둔 불빛을 받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당 곳곳에 세워둔 촛대 위에 셋씩, 넷씩 밝힌 촛불들. 종이컵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어둠에 섞이어 은은하게 퍼지면서 무르익은 초여름 밤의 낭만과 설레임을 오히려 고즈넉하게 붙잡아 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주인은 구름 낀 하늘을 걱정하지만, 올려다보니 아마도 음악회가 시작될 무렵에는 별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곳만한 청정한 시골이면 마치 와르르 쏟아 부은 보석처럼 많은 별들이 밤 하늘을 가득 수놓을 것이다.

 

음악회가 시작되고 색소폰과 드럼과 베이스, 기타와 피아노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연주된다. '꽃밭에서' '그렇게 너를 사랑해' 그리고 '춘천 가는 기차'는 곡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익숙하고 다정한 노래인가. 'try to remember'나, '오즈의 마법사'의 화면을 흐르던 'over the rainbow'는 그 달콤한 멜로디로 가슴 두근거리는데, 그러나 'recado bossa'나, 'rio funk'같은 남미풍의 재즈곡들은 귀에 낯설어 그 경쾌한 리듬만으로 함께 흔들리며 즐겁다. 이어 정감어린 색소폰이 노래하는 'stranger on the shore'는 어느 해변보다 더 아름다운 이 곳 운암호반에 초대된 우리 손님들을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주인은 다만, 음악을 알고,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물과 바람, 나무와 풀들, 하늘과 구름”이 철따라 좋은 호반의 경치도 함께 나누고 싶어 음악회를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밤에 음악이나 경치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소박한 정성과 조촐하고 넉넉한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여느 음악회와는 달리 아늑한 감동을 받아 행복한 것도,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따스함과 순수한 꿈을 가진 이들과의 아름다운 교감에 있을 것이다. 연주된 노래와 음악회장의 아름다운 정경들이 서늘하고 깊은 울림으로 남아 서로의 가슴 안에 오래도록 머물게 되리라는 예감도 이와 다르지 않다. 더구나, 연약한 한 가족이 힘을 모아 오랜 동안 기획하고 준비하여 무상으로 베푸는 음악회가 아닌가. 우리를 초대한 은영이와 남식씨, 그리고 병약하신 어머니와 귀여운 강아지 아롱이. 노래보다 더 고운 마음결을 지닌 이들이 바로, 이 밤의 예술이며 음악이 아니고 무엇이랴. 풀과 나무들이 땅 속에서 물을 길어 올려 가지와 잎을 키우듯, 이 음악회의 추억이 맑은 수액처럼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적시고 한 길이나 훌쩍 더 그 키를 높이리라.

 

/최정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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