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란 인간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원형이다. 내 영화가 관객들에게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명세 감독에게 ‘첫사랑이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들려준 말이다. 그는 ‘기쁜 우리 젊은 날’ ‘첫사랑’ 등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첫사랑을 화두로 던져왔다. 그리고 ‘M’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M’은 어렵다?
‘M’을 본 후 영화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을 여럿 접했다. 포털에 올라온 관람평 중에도 내용 이해가 쉽지 않았다는 글들이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M’은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는 영화가 아니다. 이명세 감독은 재담꾼이 되고자 하지 않는다. ‘M’은 감동을 주자는 영화도 아니다. 이 감독은 ‘모든’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감동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야기와 감동 만들기에 능한 감독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비슷비슷한 영화들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게 이명세의 생각이다. 그가 택한 영화방식은 ‘이미지와 감정의 흐름’이다. ‘M’에는 이미지가 가득하다. 흘러가는 이미지들 속에서 ‘줄거리’를 잡아내려 하니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M’에도 아주 간단하지만 줄거리는 있다. 첫사랑 미미에 대한 기억으로 시달리고 있는 민우의 이야기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내가 지금 강렬했던 첫사랑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식은 현재의 애인에게 정착했다고 생각하는데 무의식은 뭔가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는 첫사랑에 발목 잡혀있다.
그러면 나는 첫사랑에 관한 꿈을 꾸기도 하고, 일하다가도 문득 첫사랑과 함께 있던 일들을 떠올린다. 첫사랑의 기억이 오늘의 현실을 포박해 들어오는 단계까지 이르면 상태가 좀더 심각해진다. 길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첫사랑과 닮아 보이기도 하고, 그녀의 현재를 알고 싶어 연락을 끊고 지내던 동창회에 발길을 하기도 한다. 첫사랑으로 불면의 밤의 지속되면 길거리의 그 사람은 닮아보이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첫사랑이고, 그의 영이 마치 존재처럼 ‘현시’되어져 내 곁에 나타나기도 한다.
‘M’이 ‘낯선’ 이유 두 가지
이처럼 영화 ‘M’은 지독하게 첫사랑에 관한 기억에 묶여있는 사람이 일상에서 겪을 만한 일들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겪었거나 겪을 수 있는 사랑앓이를 가감없이 날 것으로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왜 낯설까.
많은 영화들이 우리가 꿈으로, 추억으로, 착시로, 행동으로, 현시로 만난 첫사랑을 하나의 이야기로 재배열해 들려준다. 그러나 ‘M’은 ‘어느 한 때’ 우리가 집중적으로 겪거나 떠올린 첫사랑에 관한 일들을 ‘공시적’으로, 혼재된 상태 그대로 보여준다. ‘통시적’으로, 시간 순서대로 재배열하거나 틀어도 살짝만 뒤튼 영화에 익숙한 우리가 보기에는 낯선 풍경이다.
게다가 그 꿈과 추억과 현시가 혼재된 몽환적 상태를 영상으로 표현해냈으니 생경할 만하다. 현실이거나, 상상이 빛어낸 판타지 세상이거나, 꿈속이거나 그 구분이 분명한 영상 문법에 길들여진 관객의 눈에 꿈과 생시, 육과 영의 세계를 오가는 영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현란한 변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색깔이 배제된, 어둠 속 빛만이 또렷이 보이는 무채색 화면과 희미한 수은등이 안내하는 뒷골목은 우리의 꿈속 세상과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민우와 미미가 재회한 카페 ‘루팡’은 현실에서는 가본 적이 없는 곳임이 분명한데도 꿈속에서 만큼은 그 길을 아는 것처럼 다시 또 찾아가곤 하는 ‘어느 장소’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영화 ‘M’이 영사된 스크린 위에서 어젯밤 머릿속에서 펼쳐졌던 꿈의 세계를 다시 만나지 않았는가. 나는 묻고 싶다.
‘M’은 관객의 손에서 완성된다
‘M’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느냐, 관객이 어떤 것을 전달받기를 바라느냐고 어리석은 질문을 던졌다. 이명세 감독은 “‘M’이 추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는 있겠지만, 내가 그 문까지 대신 열어줄 수는 없다. 관객이 어느 장면에서 어떤 기억과 어떻게 소통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모든 장면에 공을 들인다”고 현답을 돌려줬다.
고전적 얘기지만, 영국의 문화비평가 스튜어트 홀은 어떤 텍스트의 의미는 만들어진대로(인코딩) 해독(디코딩)되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의 텍스트(영화)에 대해 모든 수용자(관객)가 똑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해석해 의미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매체의 전달효과를 연구한 미국 효과론의 종착점도 미디어 내용의 주체적 소비를 강조한다. 수용자와 미디어 내용물의 만남을 통해 의미가 새롭게 생산된다는 것이다.
영화 ‘M’은 우리에게 추억의 문을 열 수 있는 ‘첫사랑’이라는 ‘열쇠’를 쥐어준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각자 추억이 불러일으켜지는 장면은 다르겠지만, 민우의 미미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나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 ‘M’과 함께 흐른다. 민우와 미미의 감정에 내 감상을 보태니 기쁘고 슬픈 감정이 배로 커진다. 첫사랑을 겪었던 시절의 친구들도 생각나고 그 때 내가 무엇에 열심이었던가도 떠오른다. 영화에 간극과 공백이 있다면, 나의 추억과 감정이 그것을 메우며 가슴 벅차게 흘러간다. 어쩌면 영화 ‘M’의 내용과 의미는 관객의 추억까지 보태질 때, 관객의 마음 속에서 완성된다.
관객에게 불친절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 영화 ‘M’. 이야기를 전하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고, 주인공의 가슴갑갑한 상황을 현실과 꿈이 혼재된 몽환적 영상으로 ‘낯설게’ 표현했으니 친절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첫사랑을 열쇠로 해서 오랫동안 닫혀있던 추억의 문이 열리고, 공들여 빚은 영상미를 감상할 수 있는 ‘M’의 미덕 또한 작다고 할 수 없다.
‘M’에 담긴 이명세의 ‘제빵 철학’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어렵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영상미를 추구하는 예술적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단과 관객의 호평과 칭찬, 흥행성공은 감독이라면 누구나 욕심 나는 것일텐데 말이다. 스스로를 제빵사라고 생각하는 이명세 감독의 ‘제빵 철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누구라도 ‘나는 커서 빵을 굽는 제빵사가 돼야지’라는 꿈을 갖게 된 순간 그 이유가 ‘돈’이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돈을 벌고자 한다면 다른 직업이 많다. 내가 만든 빵을 먹고 행복해하는 사람의 표정을 보며 더 많은 사람에게 내 빵을 먹게 하고 싶다는 바램이 이유였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A라는 빵이 아주 맛있고 잘 팔린다고 해서 모든 제빵사가 같은 빵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선택권이 무시되는 것이다.”
이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엔 호밀빵이 뻣뻣하고 달콤하지도 않아 사람들이 외면할지 모르지만, 웰빙 바람이 불어 건강에 좋은 걸 찾게 되면 각광받을 수도 있다는 것. 본인은 그저 변두리 가게에서 이런 빵도 만들어보고 같은 빵을 저렇게도 만들어보는 제빵사라며, 아직은 자신의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만 입소문이 나면 맛의 기준이 바뀌어 ‘맛있다’고 입을 모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자기만족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관객과의 소통을 소중히 하는 감독이다. 다만 지금 당장 유행에 맞는 빵을 만들어 많이 팔기 보다는, 후배 제빵사들도 계속 빵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비슷비슷한 빵에 질린 소비자들이 아예 빵이 아니라 다른 것을 찾으면 어쩔 것인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고 관객들도 영화를 봐야하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하는 답은, 영화는 예술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영화는 예술이다.”
영화 ‘트랜스포머’를 보며 기술로 출발해 예술이기를 갈망하던 영화가 이제는 기술로 회귀하려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최고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삼는 시대에 영화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명세 감독. 그의 장인정신이 빚어낼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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