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3대 문도 복원해야
숭례문이 방화에 의해 소실되었다. 화마가 이 문을 무너뜨린 지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이곳은 새로운 의미의 장소로 변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소실된 문화재 건축물에게 제사지내 듯 재배(再拜)하고 추모하는 사례는 드물 것 같다. 이렇듯 잃어버린 문화재에 대해 마치 조상이 돌아가신 것처럼 슬퍼하고 추모하는 모습에 새삼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애착심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동안 크고 작은 문화재의 훼손과 소실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우려를 보여 왔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숭례문은 국보 1호라는 점에서 우리의 정신과 전통성의 상징이므로 국민적 인식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門)은 우리의 전통적인 공간개념에서 볼 때, 드나드는 기능적 역할 뿐 만 아니라, 정신적 의미가 매우 큰 건축물이다. 전통적으로 도시가 형성될 때, 방호적(防護的) 읍성(邑城)이 구축되고 그 곳을 드나드는 문(門)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주택을 지을 때도 문의 크기와 위치는 전체적인 배치에 있어서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모든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이 곳을 통해 드나든다고 여겼었다.
이러한 상징성은 사찰건축에서 더욱 극명하게 부각된다. 사찰의 초입에 세워지는 일주문은 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진입에 필수적인 사찰의 일부인 것이다. 이렇듯 문은 우리의 전통적 건축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적 건물이었던 것이다.
유구한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는 전북지역은 도시적 역사성이 더욱 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문화성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 우리의 풍남문은 이러한 관점에서 더욱 귀해 보인다. 풍남문은 이번 숭례문 화재사건을 계기로 관리와 보존이 더욱 잘 될 것으로 기대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풍남문도 전주 부성 축성의 시기인 1018-1031년에 건축되어,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영조 10년(1734), 영조 43년(1767) 때의 화재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현재의 문은 1978년의 보수공사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그동안, 일제에 의해 1905년에 전주 부성이, 1911년에 동, 서, 북의 3대문이 헐린 후 지금까지 홀로 전주의 역사성을 증언 해 주고 있다. 전주의 3개 대문 역시 풍남문 만큼의 역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복원되지 않고 있다. 우리시대의 화재로 소실된 서울의 숭례문이 당연히 복원되어야 하는 것처럼, 일제시대의 도시계획으로 헐린 전주의 북문(공북문), 동문(완동문), 서문(패서문)도 당연히 복원되어야 한다.
일제시대에 헐린 후 지난 90 여년은 이 문들의 전체 역사 970년의 10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우리의 3개 대문 역시 숭례문을 복원하듯 복원해야한다. 일제의 도시계획과 숭례문의 방화행위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주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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