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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있는 주말] ②혼수를 준비하며

"왜 좋은 날 남의 팔자 입고 시집 가려고 해"

"한복을 왜 안하냐고~. 사람들이 같이 살다가 이제 식만 올리는 거냐고 다 물어보더라."

 

"친구한테 빌려입을 거라고 했잖아."

 

"사람들이 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해. 한복 빌려줄 사람 팔자가 얼마나 좋은 지는 모르겠지만, 왜 좋은 날 남의 팔자 입고 시집가냐고."

 

결국 엄마와 싸우고 말았다. 그러고는 '결혼할 때 한 번 입고 옷장 속에 쳐박아 두게 된다'는 한복을 기어코 맞췄다. 그런데 막상 한복을 입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TV 장식장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인터넷에서 몇 천원에 파는 정리박스 8개를 나란히 놓고 LCD TV를 올려놨더니 집구경 오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다. "집에 들어오면 TV 장식장이 가장 먼저 보이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에는 "괜찮아. 그리고 우리 돈 없어"라고 웃어 넘기던 일이 반복되자 스트레스가 됐다. 결국 "가구는 몇 십년 쓸 건데, 겨울 코트 한 벌 값이니까"라는 말로 스스로를 쇄뇌시키며 꽤 비싼 TV 장식장을 들여놓았다.

 

처음 결혼계획을 세울 때 우린 무조건 "생략" "절약"을 외쳤다. 주택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결혼 비용은 2000만원 안에서 해결할 것. 남자친구와 커피숍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엑셀 파일을 열었다. 제목은 '우리 예산'. 옷장 대신 행거,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는 선물, 식탁은 집에서 쓰던 테이블로…. 줄인다고 줄였는데, 예산안은 벌써 2500만원을 넘겼다.

 

처음 장만한 살림은 역시 인터넷 쇼핑으로 산 3만2300원짜리 양념통. '양념통과 캐니스터가 세트로 돼있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습기를 방지하는 실리콘 및 TPE 패킹 사용' ' 와이어랙에 고무 파킹이 있어 미끄럼 방지' 등 줄줄이 달린 제품설명 보다는 세련된 디자인과 색상이 신혼집 싱크대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렇게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 '손목을 끊지 않으면 끊을 수 없다'는 인터넷쇼핑과 홈쇼핑. 기사 쓰는 틈틈이 인터넷 쇼핑몰 창을 열어두고 이것저것 구매하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집들이에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산 맥주잔과 소주잔이, 그 다음날에는 찬바람이 불면서 세일에 들어간 여름용 차렵이불이 배달돼 왔다.

 

텅 빈 집을 채운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24평을 채우는 것도 이러할 진데, 만약 30평대 40평대 신혼집을 채워야 했다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도내 사진학과 교수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진짜 혼수가 필요한 때는 결혼하고 한 5년 정도 지난 후인 것 같아요. 지금이야 아무 것 없이 둘만 있어도 행복할 때죠. 둘이 있어도 할 말이 없어질 때쯤 이것 저것 사러다니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도, 남자친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림살이을 준비하며 욕심을 낸 가구가 딱 하나 있었다. 모든 가구를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제작한다는 '○○○' 브랜드의 식탁과 의자였다. 진한 밤색 원목이 주는 차분한 색감, 게다가 부드러운 촉감은 심리적으로 안정된 느낌마저 주는 것 같았다. 문제는 가격. 냉장고 한 대와 맞먹는 가격에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신혼집 거실 한 가운데에는 '○○○' 식탁과 의자가 놓여있다.

 

"어떤 것이든, 신혼 때 산 걸 늙어서까지 쓰면 참 좋을 것 같아. 부부와 함께 세월을 보낸 거잖아."

 

선배의 한마디에 그렇게 '○○○' 식탁과 의자는 우리 신혼집에서 가장 비싼 물건이 됐다. 우리 부부와 함께 늙어갈 가구를 생각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게다가 '○○○' 본사와 전국 할인 매장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15%나 할인받았으니, 썩 잘 산 것 같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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