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한옥마을서 문화마당 천향 여는 조각가 전병관씨 "500점 이상 더 만들터"
지난해부터 술을 끊었다.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다. 대학마다 조각학과는 문을 닫고, 조각을 하려는 이들은 줄어든다. 중·고등학교 정규교육에서도 공예는 홀대받고 있다. 이 모든 현실이 답답해졌다.
전주 한옥마을 내 은행로에 문화마당 천향을 열게 된 전병관씨(52). 오궁리미술촌 창작 스튜디오 촌장을 맡기도 했던 그가 오궁리에서 한옥마을로 출퇴근하기로 결정한 것은 왜 일까.
"오궁리미술촌 창작 스튜디오가 만들어진 지 16년이 됐습니다. 전국적으로 폐교를 활용한 예술촌이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오궁리도 그 끝자락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오궁리를 버리겠다는 뜻은 아니고요, 한옥마을에서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궁리처럼 이미 가동되고 있는 곳은 레지던스 지원에 해당이 되지 않았다"는 그는 "작가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 버거웠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오픈 스튜디오를 운영할 계획. 작가들이 상주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이라기 보다 작업공간을 내주는 개념에 가깝다.
24일 개관을 앞두고 크고 작은 돌 수 천 점을 들여다 놓은 상태. "반절은 냇물이 만들고, 반절은 버림받은 돌을 보기좋게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돌은 무겁고 투박한 재료지만, 하찮게 버려지기도 해요. 하지만 소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엄청납니다. 재료가 가진 불규칙함이 좋거든요. 결이 맘대로인 돌은 툭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깨지죠. 그런 불규칙함과 우연성을 귀하게 생각해요."
조각가로서의 출발은 전주대 미술교육과 시절 인체 구상조각에서 비롯됐다. 기하학적인 추상조각으로 나무를 잘라 묶어서 쌓는다든지 각목을 불규칙하게 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태리 까라라 피사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재질의 특징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내면의 조형성을 담아낸 작업. 음과 양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원초적인 생명력에 회귀하는 작품으로 확장됐다. 개막전'3W 바람마당 정신'엔 그의 전생애를 아우르는 작품이 전시된다.
"변화무쌍한 사람의 표정을 담아봤습니다. 돌에도 얼굴이 있거든요. 웃다가, 울다가, 삐치다가 그런 표정을 만드는 게 재밌습니다."
그는 조각이 어렵고 힘든 작업이라고만 여기는 것은 편견이라고 강조했다. "앉아서 그림 그리는 것 보다 움직이면서 뚝딱뚝딱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조각의 본질은 힘과 에너지. 그래서 그는 날마다 재료를 두드려 패가며 자기 자신과 싸운다. 500점 이상은 더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찬 각오.
도록 「전병관 바람마당 정신전」도 함께 출간됐다. 그의 작품세계와 철학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책. 그의 정과 망치 소리로 고즈넉한 한옥마을에 또 다른 생기가 이어질 것 같다. 개막식은 24일 오후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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