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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31)(주)전주페이퍼 ④성장기반 구축

1968년 초지기 1호기 가동 후 해외차관 공격적 투자…전주공장에 수퍼머신 가동, 국내 최대 제지기업 우뚝

(좌)1호기 열병합 발전소 (우)3호기 증설 후 전주공장 전경 (desk@jjan.kr)

우리나라 경제는 1960년대 도전기를 거쳐 1970년대 성장통을 앓으면서 안정된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이 있었기에 80년대와 90년대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고, 1997년 닥친 IMF외환위기도 슬기롭게 극복, 21세기를 활력있게 출발할 수 있었다.

1965년 삼성이 새한제지를 인수해 출발한 전주제지는 우리나라 격동의 경제사와 궤를 함께 하며 국내 제지산업을 선도해 왔다.

전주제지는 1968년 9월1일 역사적 가동에 들어간 뒤 1991년 11월 6일 삼성으로부터 분리 독립, 1992년 10월 한솔제지로 사명을 바꾸었다. 당시 정부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완화돼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삼성은 전주제지와 신세계백화점을 계열 분리 대상으로 결정했다. 분리독립 후 전주제지는 사명을 한솔제지로 바꾼 후 제2창업을 선언하고 홀로서기를 넘어 대그룹화를 겨냥,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위부터) 윈스턴-삼성 준공식 장면, 업계 최초로 설립된 제지연구소 현판식, 수퍼머신 조인식 (desk@jjan.kr)

하지만 IMF외환위기의 파고 속에서 경영이 흔들렸고, 1998년 세계 1·2위 규모의 신문용지 제조업체인 캐나다의 아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사와 노르웨이의 노스케스코그사가 공동 지분으로 참여하면서 1999년 12월31일 3개사 합작법인인 팬아시아페이퍼 코리아(주)로 사명이 바뀌었다.

그러나 3개사 공동지분 체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솔제지가 2001년 보유 지분을 아비티비와 노스케스코그에 전량 매각하고 손을 뗀 것.

이후 2005년 노스케스코그가 지분 100%를 확보한 뒤 2006년 1월 한국노스케스코그로 사명을 바꾸고 경영 안정을 이뤘지만, 2008년 9월 모건스탠리PE(58%)와 신한PE(42%)가 지분을 인수하고 사명을 현재의 전주페이퍼(주)로 변경했다.

▲성장기반의 구축

전주제지는 1968년 9월 초지기 1호기를 가동한 뒤 곧바로 2호기 설치 작업에 들어가 1969년 가동에 들어가는 등 초기부터 공격적인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상당 부분의 투자금이 외국 차관이었지만, 경쟁 제지사들의 열악한 시설과 생산량, 그리고 향후 종이 수요 급증에 따른 공급 부족 현상 등을 세밀하게 조사하고 예상해 내려진 결정은 빗나가지 않았다.

전주제지는 공장 가동 후 약 3년간 누적 적자가 1억6946만 원이었지만 신문용지 시장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여나갔고 72년부터는 순이익이 났다. 72년부터 74년까지 3년간 누적 흑자 규모는 16억4251만 원에 달했다. 물론 이같은 흑자 규모는 정부의 8.3조치 영향과 함께 비약적인 경제발전 속에서 언론 출판 교육이 활기를 띠며 종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대적 흐름이 크게 작용했다.

전주제지는 국내경기 호황에 따른 제지 수요 증가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시설 증설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시장조사 결과, 1974년 국내 제지업계의 공급능력은 11만 7000톤이었고, 당시 고려제지를 인수한 세대제지가 증설작업을 마쳐도 16만톤 정도에 불과했다. 이정도 공급량이 유지될 경우 1977년 4만톤, 1979년 8만톤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됐다.

▲3호기 증설과 시련

전주제지는 곧바로 3호기 증설에 들어갔고, 장기적 안목에서 하루 생산 200톤 규모로 결정했다. 이는 1·2호기를 합한 생산량 130톤을 훨씬 웃도는 대규모 시설이다. 1974년 10월31일 서독 엣샤비스사와 2433만3000마르크에 초지기 도입 계약을 체결했고, 1977년 4월7일 준공했다. 이 과정에서 3호기에 소요될 쇄목펄프와 탈묵펄프 생산시설 증설도 병행했다. 1976년 10월 완공된 탈묵펄프 설비는 자체 기술에 의한 공정 개발과 설계로 완전한 국산화를 이룬 것으로 이 곳에서 생산되는 하루 100톤의 탈묵펄프로 3호기에서 생산되는 신문용지 원료의 45%를 공급할 수 있었다.

3호기 증설을 통해 전주제지는 하루 380톤, 연간 13만톤으로 생산능력이 확대돼 국내 최대 규모의 제지회사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3호기는 가동 초기부터 결함을 드러내 많은 어려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기계 중단이 잦았고, 가동률이 90%를 넘지 못했다. 게다가 품질도 떨어져 종업원들의 사기도 저하됐다. 3호기는 1978년 9월에 가서야 설계보증속도인 800m/분을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애를 먹였다.

이 과정에서 자금난이 발생했고, 외상매출금까지 늘었다. 77년 41억원이던 외상매출금이 78년에는 56억원까지 늘었다. 단기차입금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78년 5월에는 원료 야적장에서 화재가 발생, 5억원이 넘는 피해가 발생했다.

▲초지기 개조, 생산성 향상

1980년 무렵 국내 제지업계는 전주제지의 3호기 가동과 세대제지의 증설로 신문용지 공급능력이 연간 18만톤에 달했다. 이는 수요를 웃도는 규모였다.

그동안 생산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제지업계는 이 무렵에 와서야 원가 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1977년 3호기 가동으로 국내 제지업계 선두 자리를 굳게 지킨 전주제지도 이 무렵 1968년 첫 가동에 들어간 1호기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 등 설비 현대화 작업에 들어갔다.

개조 작업을 거쳐 1981년과 1984년에 각각 정상 가동에 들어간 1·2호기는 노후 배관 교체, 헤드박스 신형 교체 등 대부분의 시설이 최신형으로 교체됐고, 신형 프로세스 컴퓨터를 설치해 제품의 평량(坪量)과 수분(水分)을 자동제어했다. 이에 따라 품질이 현격히 향상됐고, 원가도 크게 절감됐다.

이어 3호기도 개조했다. 설계 당시부터 결함을 안고 있어 문제가 됐던 3호기는 85년과 86년 두차례에 걸쳐 개조공사가 진행됐으며, 이를 통해 지절 감소 등 생산성이 향상되고 품질도 크게 개선됐다.

전주제지는 기존 1·2·3호기에 대한 대대적인 개조작업을 벌이는 한편 향후 국내를 넘어 국제 규모의 제지기업으로 도약한다는 야심찬 계획하에 수퍼머신 증설 계획도 함께 진행했다. 이 계획은 1979년 4월 경영정책결정회의에서 결정됐지만, 그 해 말에 닥친 제2차석유파동 등으로 인해 미뤄지다 1982년 10월22일 최종 결정돼 시행에 들어갔다.

▲수퍼머신 증설

수퍼머신은 해외 건설과 전주공장 외 건설 등 안이 검토됐지만, 당시 금강유역상수도공사가 착공돼 용수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판단되고 또 열병합발전소 가동(83년 10월)으로 인한 에너지 절감 등을 감안, 전주공장 건설로 결정됐다.

수퍼머신의 생산규모는 하루 500톤 안까지 검토됐지만, 400톤 규모로 결정됐다. 또 생산지폭 6304㎜, 운전속도 850m/분, 설계운전속도 1000m/분 등 각 부분의 용량을 여유있게 함으로써 기계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향후 생산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또 신문용지 경량화 및 인쇄기술 발달에 대비, 기존 장망식(長網式) 대신 양망식(兩網式)으로 결정하고, 기종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벨로이트사의 벨베 포머형으로 했다.

1983년 8월26일 미쓰비시중공업과 초지기 도입계약을 체결한 전주제지는 1984년 2월17일 기공식을 갖고 공사에 들어간 뒤 1985년 9월부터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전주제지의 수퍼머신은 3호기 증설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감안, 조직적인 계획 속에서 진행돼 성공적인 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주제지는 수퍼머신이 가동됨에 따라 하루 840톤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춘, 명실상부 국내 최대의 신문용지 제조기업으로 우뚝 섰다.

한편 수퍼머신 설치에 앞서 1984년 10월 탈묵공장을 준공했고, 그해 12월에는 쇄목펄프시설도 준공했다. 이 당시 쇄목기 4대가 추가 설치돼 전주제지는 총16대의 쇄목기를 보유, 하루 290톤 생산 규모를 갖추게 됐다.

수퍼머신에 양망식을 적용함으로써 제품 품질이 대폭 개선됐고, 설계와 설치, 시운전,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자체 기술로 해결, 국내 제지기술도 크게 향상됐다. 특히 전주공장 수퍼머신 증설로 인해 전주제지는 기존 인력의 40%에 해당하는 인력을 전주와 인근에서 충원, 지역 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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