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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최공술 전북은행 동우회장

"IMF 합병설 딛고 독자행보…지역 최고은행으로 우뚝"

"전북은행은 나의 꿈이고, 추억이자 그리움입니다. 인사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공식석상에서 "전북은행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라는 신념을 앞세우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는데, 여전히 이 발언은 유효합니다"

전북은행 공채 1기로 입행했던 전북은행 동우회 최공술 회장은 "전북은행이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도 지역을 지키는 최고은행으로 우뚝 서게 됐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지방은행 10곳 가운데 독립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은행은 전북은행·대구은행·부산은행 등 3곳에 불과하다"면서 "전북은행의 경영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무한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1973년 노조결성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던 그는 "IMF경제환란당시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면서 "당시 다른 은행과의 합병설을 딛고 독자행보를 걸을 수 있었던 배경은 전북은행 특유의 내실경영 마인드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지난 1998년 상무이사를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입행 당시 동기가 11명이었고, 1기라는 중압감이 컸다"면서 "창립초기 전북은행의 존재감을 알리고 예금권유을 위해 가정방문과 길거리홍보에 열중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개점일에 고객이 쇄도해 쩔쩔 맸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기억으로 개점당일 예수금이 약 5억원이었습니다. 당시 쌀한가마니 가격이 350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수준은 당시의 50배수준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는 "설립초기만 해도 현재와는 달리 모든 업무가 주산과 수기로 이뤄졌었다"면서 "당시 일선 지점의 마감시간에 계수가 맞지 않거나 매월 한차례씩 갑호장맞추기(대차대조표와 원장의 일치)가 쉽지 않은 탓에 며칠씩 철야근무에 나섰던 기억도 난다"고 말했다.

 

정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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