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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기업사] 페이퍼코리아-②고려제지로 새출발

전란 피해복구·생산시설 확충…제2의 도약기

고려제지 공장 전경. (desk@jjan.kr)

6.25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북선제지 군산공장은 북한군이 퇴각한 후 공장 복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우선 북한군에 의해 해체돼 은닉돼있던 2대의 초지기를 찾아 조립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당장 부족한 부품을 조달할 길이 없어 공습으로 파괴된 제2호기의 부품을 뜯어다가 제1호기를 보수하고 1951년 5월에야 정상가동을 할 수 있었다.

 

 

 

고려제지 군산공장 당시 사내 설치된 전용산업 철도. (desk@jjan.kr)

 

이후에도 관계당국에 적극적인 원조를 요청해 생산능력을 키워나갔다.

그 결과 1953년 2244t였던 생산량이 이듬해에는 5311t으로 236% 증가했고 그 다음해에는 6900t으로 껑충 뛰었다.

생산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종업원 수가 늘어났다. 1956년 당시 군산공장에는 사무직 및 경비원 46명, 기술직 29명, 숙련공 105명, 공원 172명, 기타 34명 등 모두 386명의 종업원이 있었다.

또한 1956년에는 공장장을 미국에 파견해 최신기술을 연마케 하는 등 선진 제지기술 도입에도 적극적이었다.

정부에서도 지류의 수급문제가 날로 심각해지자 제지공장에 막대한 원조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제지공장의 장기부흥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유일의 신문용지 생산공장였던 북선제지 입장에서는 새로운 경쟁자 등장으로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김원전씨와 동업관계나 다름없던 우자형씨의 세품제지에 정부가 50만불을 지원하면서 또 다른 신문용지 생산공장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더 큰 변화는 적산귀속기업체인 북선제지 군산공장의 불하문제였다.

당시 관리인였던 김원전씨나 우자형씨측에서 먼저 공장을 불하 받고자 했는지, 아니면 정부에서 불하하려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여러 정황 등을 분석해볼 때 6.25 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충격이 컸던 김원전씨 등에서 자진해 먼저 불하를 받겠다고 나설 처지가 안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면 총리가 적극 밀었던 사학재단에서 군산공장에 눈독을 들여 불하공작을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김원전씨의 증언에 따르면 사학재단에서 북선제지 군산공장을 불하받으려 했고 당시의 장면 내각도 이러한 방침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적산귀속기업체는 관리인측에 기득권이 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빼앗길 수는 없었다고 한다.

온갖 역경을 딛고 오늘에 이르렀으며 6.25의 피해를 겨우 복구해 이제 제대로 가동하려는 공장을 내놓을 수 없었던 김원전씨는 당시 군산공장과 신문용지 독점공급관계를 맺고 있던 연합신문의 도움을 바탕으로 공장 불하를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무회의에서 공매내정가격을 6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2배 인상해 단독응찰임에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불하를 포기하면 자연스럽게 사학재단이 불하를 받게되는 현실에 김원전씨와 우자형씨, 연합신문은 재응찰을 위한 전열을 다시 가다듬었다.

결국 3자는 2배로 뛰어오른 대금으로 응찰을 해 마침내 낙찰을 받게 됐다.

사학재단을 지원했던 장 총리는 당시 정부 대표로 유엔에 파견돼있던 시기라 별다른 방해공작없이 공장을 인수하게 된 것이다.

공장인수와 함께 북선제지는 고려제지로 사명을 개편하고 초대 사장에 김원전씨가 취임하면서 제2의 도약기를 맞게 된다.

◇공장 불하받기까지 비하인드 스토리

북선제지 군산공장 불하문제가 국무회의에 상정되자 당시 법무부장관였던 조진만씨는 장면 총리가 유엔총회에 참석해 부재중인 관계로 장 총리가 귀국할 때까지 불하를 연기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장 총리의 의중이 사학재단에 있음을 알고 시간을 끌기 위해서인 듯 하다.

하지만 국무총리 권한대행였던 사회부장관 허정씨가 조 장관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매입찰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되자 조 장관은 재무부에서 산정한 불하예정가격이 너무 싸게 책정되었다고 주장하며 60억원였던 불하예정가격을 120억원으로 대폭 인상했다.

김원전씨의 증언에 따르면 불하예정가격 인상 사실이 비밀에 붙여져 입찰 당일 뒤늦게야 알게돼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적산귀속재산의 공매 등을 담당했던 관재청 처분국장 이재항씨가 직접 공장에 내려와 시설 등을 포함, 동산과 부동산을 모두 점검하고 공매가격을 60억원으로 책정했는데 이보다 2배나 높은 가격에 응찰을 해야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것.

당시 북선제지 군산공장이 보유한 현금이 고작 7억원에 불과했고 김원전씨 사유재산도 넉넉치않았기 때문에 불하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자형씨가 주도적으로 나서며 재응찰의 물꼬를 텄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60억원의 추가자금 마련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이전까지 거의 휴지조각에 불과했던 지가증권을 불하대금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자금문제는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액면치의 20% 정도로 지가증권을 사모아서 불하대금을 납부한 것.

울며겨자먹기로 60억원의 돈을 더 물어야했을 상황에서 법 개정으로 오히려 더 헐값에 공장을 불하받게 된 것이다.

지가증권 매입자금 대부분은 우자형씨가 조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에서 다소 의구심이 생긴다. 사장은 김원전씨인데 자금조달은 우자형씨가 했다는 점이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것.

이와 관련 공장 불하를 받은 뒤 주식을 분배해 공동출자로 단일법인체를 만들자고 3자가 합의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자 당사자인 김원전씨는 강력히 부인한 상태다.

하지만 김원전씨와 우자형씨가 이후 결별하면서 김원전씨가 합의내용을 이행하지 않아 서로 헤어지게 됐다는 설이 회자하고 있다.

 

 

강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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