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획자 없이도 작품 전체를 총감독한 장 대표는 경쾌한 경기음악에 맞춰 화려한 목단이 그려진 깃털부채를 들고 추는 시원스런 춤사위 대신에 단아한 합죽선을 양손에 갈라쥐며 구부러진 듯 휘감았다가 다시 풀어 조아리는 진중한 살풀이 호흡의 무작(舞作)을 선보였다. 봄 밤 창가에서 매화를 지켜보는 매창(梅窓)의 애절한 추억의 편린이 흩날리는 것 같았다.
관객 입장에선 공연이 모든 면에서 성공적으로 올려진 것으로 비춰지진 않겠으나 민간단체가 이 같은 공연을 했다는 것은 관립단체의 공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아쉬움은 공연의 성패를 떠나 1회성 공연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전북도립국악원을 비롯해 전주·익산·남원시립예술단 등은 매년 열심히 준비한 기획공연을 단 한 차례 올리고 끝이 났다.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이 지난 5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선보인 '어매 아리랑'도 그렇다. 공연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창극에 트롯트를 연계한 신선한 시도로 관람객들은 환호했다. 특히 중년 관객들은 효도 공연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역시 1회 공연에 그쳤다.
어떤 최고의 공연도 첫 시도로 성공을 보장할 순 없다. 공연의 발전가능성을 타진할 뿐이다. 매년 관립단체와 문화예술단체가 수많은 공연을 내놓고도 브랜드 공연을 내놓지 못한 것은 일회성에 그치기 때문이다. 재공연에 대한 예산 확보는 어렵고, 공연에 대한 호평으로 재공연이 된다 하더라도 뒤늦게 공연장 일정 잡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재공연 기회와 객석의 추임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술작품 하나가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절차탁마(切磋琢磨)할 수 있는 인고의 세월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지난해 '2013 광대의 노래'를 재초청했다는 사실이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판소리 퍼포먼스 그룹 '미친 광대'의 창작 판소리극'동리, 오동은 봉황을 기다리고'는 지난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신재효를 기리기 위해 기획됐다. 문순태의 소설 '도리화가'를 바탕으로 한 사무친 그리움을 다룬 이 작품을 두고 윤중강 국악평론가는 슬픔을 조금 절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전체적으로 A급이나 B급 같아 보이는 A급으로 조금 더 재밌고 가벼워질 수 있다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래서 올해 광대의 노래는 지난해 미흡했던 점을 보완한 공연으로 재탄생시킬 계획이다.
공연을 한 번만 소비하지 않고 브랜드 공연으로 나아갈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준 소리축제 측의 고민을 지자체나 다른 문화예술단체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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