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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전북도립국악원 신춘음악회

작곡가 박범훈 곡 기획 /  한번으로 끝나 아쉬워 /  유료관람도 고려할 만

▲ 지난 5일 도립국악원 관련악단이 신춘음악회 ‘춘흥, 박범훈의 신맞이’공연을 마치고 인사를 하고 있다.

인생의 봄(청춘)이 그러하듯 봄도 그냥오지 않는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도 그렇지만 봄바람을 또 얼마나 얄궂던가? 겨우내 굳어있던 물줄기를 터주기 위해서는 가지를 사방으로 흔들어주어야 한다. 꽃을 피우고 싹을 틔우기 위한 봄바람이 가지를 부러뜨릴 만큼 강하고 방향도 종잡을 수 없이 제멋대로다. 생명 세상으로의 거듭남이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어서일 것이다.

 

도립국악원 신춘음악회가 있던 날도 그랬다. 벌써 봄! 성급한 예단을 질타하는 듯 꽃샘바람은 매섭기만 했다. 제대로 된 봄을 맞이하기 위해 많은 시련의 담금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주었다. ≪춘흥 - 박범훈의 신(神)맞이 공연은 그런 담금질에 반드시 필요할 것 같은 신명과 흥을 제공해주었다. 움츠러든 어깨를 활짝 펼 수 있을 만큼 화끈한.

 

박범훈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흥과 신명은 꿈틀대기 시작했다. <신모듬> 등 그가 펼쳐놓은 풍요로운 국악관현악의 세계에 대한 추억이 그만큼 강열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하여 해금의 김애라, 가야금의 김일륜이라니! 연주가 시작되기도 전에 차가운 밖과는 다른, 기대로 달궈진 열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봄을 맞이하기 위한 ‘신맞이’가 시작되었다. 전체적인 구도가 한 사람의 작품으로만 구성했는데도 짜임새가 탄탄하다. 신내림-신맞이-신모듬. 신을 부르고 맞이하고 보내는. 그 중간에 신 중에서 필요한 신만을 골라서 모신다는 <가리잡이> 해금 <허튼타령> 과 화사한 봄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가야금 협주곡 <경드름 산조> 를 배치한 것도 자칫 경직될 수 있는 제식 구조에 적절한 변화의 온기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연출의 묘를 느끼게 해준 대목이다.

 

첫 곡 <신내림> 에서부터 작곡가 특유의 장기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타악과 피리를 통해 굿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때로는 현악기를 타악기처럼 연주하게 함으로써 주술적 효과를 배가 시킨 점 등이 그랬다. 특이한 점은 지금은 사라진 키를 긁어 연주함으로써 묘한 추억에 잠기게 한 것.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 흘리며 그 소리에 젖어들었다. 연주의 극적인 끝맺음이나 “모여라!” 주문을 함께 외게 하여 관객들을 끌어드린 점에서도 작곡자가 청중의 심리를 얼마나 잘 읽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초연이나 다름없는 <가리잡이> 나 <경드름 산조> 연주에서도 작곡가의 장기는 물론 연주자들의 높은 내공까지 확인하면서 이미 취해버린 흥과 신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발랄한 해금과 진중한 콘트라베이스의 주고받음, 그리고 첼로의 부조를 받으며 진행된 <가리잡이> 에서는 특히나 독특하고 다양한 가락의 소개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다채로운 발랄함에 취해 꽃샘추위는 먼 얘기가 되고 말았다. 해금의 장기를 마음껏 살려준 김애라의 무르익은 연주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어진 김일륜의 가야금 연주. 이 고장 출신이라서 더 반가웠을까? 이곡의 독특한 구성이 우선 주목을 끈다. 관현악단이 산조를? 남조계면조 가락이 빠진 산조가 가당키나 한 것인가? 김일륜의 편안함까지 느끼게 해주는 완숙한 연주는 이런 의문을 이내 잊게 해주었다. 독주악기와 관현악단의 ‘밀당’을 통해 독주자는 물론 이미 어느 경지에 오른 관현악단의 역량까지 함께 가늠해보면서 관계도 없는 사람이 괜히 뿌듯함을 즐기고 있었다.

 

<신맞이> 는 말 그대로 굿판의 연희형식을 협주곡을 통해 재현해낸 것으로 많은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제공해주었다. 명과 복을 비는 만신의 축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것이 흠이 될 수는 없다. 애초 신과 나누는 말들은 속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래야 더 영험이 있을 테니까.

 

축원까지 마쳤으니 이제 신나는 ‘놀이’만 남았다. 이날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박범훈의 대표작, ‘동서양 악단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연주된다’는 곡 <신모듬> 중 3악장 ‘놀이’ 젊은 사물놀이패 ‘사물광대’가 말 그대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 신명을 통해 무대뿐 아니라 공연장 전체가 봄맞이 흥과 신명의 춤판으로 거듭났다.

▲ 이종민 전북대 교수

그렇게 우리는 봄맞이 준비를 마쳤다.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이런 판을 몇몇 행운아들만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많은 이들이 추운 바깥에서 봄이 찾아왔는데도 떨고 있어야 한다는 것. 판을 늘립시다! 이런 곡에 이런 연주자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 공연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예산과 수요를 염려할 수 있다. 유료관람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고 그 예산을 홍보에 쏟아 부어 수요를 창출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결국 이를 통해 한국음악의 저변을 확장시켜나가는 것이니 도립국악원의 위상이나 존재 명분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연주에만 흥과 신명을 기할 게 아니라 전체 기획에도 흥과 신명을 더하라고 덕담을 겸해 주문하고 싶은 것이다.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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