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최강희, 김성근 그리고 '늙은 말'

올해 들어 국내 프로 스포츠가 보기 드문 기록과 각종 화제로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 중 가장 뜨거운 뉴스의 주인공은 K리그 역사를 새로 쓴 전북현대 축구단. 전북은 지난 18일 ‘22경기 연속 무패’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국내 프로 축구 17년 만에 작성된 대기록이다. 팬들의 관심사는 이제 ‘1강’으로 꼽히는 전북이 자신들의 기록을 얼마나 더 갈아치울 것인지로 모아진다. 이 때문에 전북이 ‘무패 우승’ 이라는 전인미답의 목표를 세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패배를 모르는 전북현대의 질주는 ‘낙후와 꼴찌’의 열패감에 시달리는 전북도민들에게 크나 큰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전북이 작년 챔피언에 이어 올해도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명장 최강희(56) 감독의 용병술을 빼놓을 수 없다. ‘봉동 이장’이라는 귀에 익은 별명을 지닌 최 감독은 대기록 달성 배경을 노장 선수에게서 찾는다. 최 감독은 무패 신기록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밖에서 볼 때 전북이 단지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지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내 생각엔 든든한 노장이 많기에 새 역사를 쓸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베테랑 선수들이 무패 행진의 원동력이라는 뜻이다. 최 감독은 “전북이 최소한 지지 않는 까닭은 이동국(36세) 같은 노장들이 큰 산으로 버티고 있어 선수들이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북 선수단 평균 연령은 27.1세로 가장 높다. K리그 클래식 전체 평균은 25.7세다.

 

전북 노장들의 진면목은 대기록 달성의 고비에서 빛났다. 기존 신기록 ‘21경기 연속 무패’에 도전하던 지난 15일 부산과의 원정 경기. 전북은 후반에 선제골을 내주며 큰 고비를 맞았다. 최 감독은 곧 바로 이동국과 레오나르도(29세)를 투입했고 두 선수는 릴레이 골로 2-1 역전승을 일궜다. 최 감독은 “나이가 많은 선수가 한 발짝이라고 더 뛸 때 팀이 진짜 강해지더라”고 술회했다.

 

이번에는 프로야구. 만년 바닥 팀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야신’(야구의 신) 김성근(73) 감독. 시즌 초반이지만 올 초 내건 취임 공약 승률 5할을 달성하자 팬들이 환호하고 있다. 김 감독은 자신의 저서에서 “조직이 위기일수록 버틸 힘은 베테랑에서 나온다”고 노장의 역할을 명토 박았다. 이어 그는 “진정한 베테랑의 역할은 고비 때 빛을 발한다. 베테랑이 1년 내내 모든 경기에서 활약해 주길 기대하면 안된다. 1년에 승부처는 30게임 정도인데 그 고비를 넘겨내는 힘이 바로 베테랑의 경험에서 나온다. 단 한 경기라도 팀을 위해 중요한 순간에서 해준다면 1년 치 연봉 값을 해내는 것이다. 그런 경험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감독과 김 감독은 ‘업계’에서 나이 든 축에 속하는 공통점이 있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경륜과 지혜의 가치를 꿰뚫는 안목이 그야말로 닮은꼴이다. 이른바 노마지지(老馬之智:늙은 말의 지혜). 한비자의 설립편에 제나라 환공이 참모 관중을 데리고 고죽국을 정벌한 뒤 귀국하다 산중에서 길을 잃는 대목이 나온다. 진퇴양난. 모두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늙은 말은 거의 본능적으로 길을 찾는다”고 아뢴다. 환공은 늙은 말을 앞세우고 나이든 병사를 뒤따르게 해 마침내 길을 찾는다.

 

“관중의 총명과 지혜는 늙은 말을 스승삼은 덕분이다. 관중은 그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은 어리석게도 성현이나 원로의 지혜를 배우려 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 가르침을 업수이 여긴다면 이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한비자가 단 주석이다.

 

‘늙은 말의 지혜’는 2600여년이 흐른 오늘에까지 ‘봉동 이장’과 ‘야신’의 통찰력과 맞닿아 있다.

 

체육부장·편집국 부국장

김성중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정치일반李대통령, 외교 ‘강행군’ 여파 속 일정 불참

스포츠일반[제37회 전북역전마라톤대회] 전주시 6시간 28분 49초로 종합우승

스포츠일반[제37회 전북역전마라톤대회] 통산 3번째 종합우승 전주시…“내년도 좋은 성적으로 보답”

스포츠일반[제37회 전북역전마라톤대회] 종합우승 전주시와 준우승 군산시 역대 최고의 박빙 승부

스포츠일반[제37회 전북역전마라톤대회] 최우수 지도자상 김미숙, “팀워크의 힘으로 일군 2연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