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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세계문화유산 임실 필봉농악

지난 4일 단옷날을 맞이해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마을에서는 신명 나는 연희 굿판이 펼쳐졌다. 굿판을 주도한 우리 지역의 임실 필봉농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된 소중한 마을굿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되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전통예술이다. 필봉 마을굿의 역사를 살펴보면 약 300여 년 정도로 추정된다. 일찍이 수준 높은 풍물 굿으로 유도했던 상쇠(연희판의 꽹과리를 제일 잘 치며 연희를 주도하는 사람)가 계셨는데 제일 먼저 강진면에 사는 박학삼이라는 유명한 상쇠를 필봉으로 초대하면서 그 계보는 시작된다. 계보를 이어 두 번째 송주회 상쇠가 필봉농악을 지켰으며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상쇠 양순용에 의해 전승의 꽃을 피우게 된다. 허튼가락과 부들 상모의 명인이었던 양순용은 필봉리 출신으로 필봉굿의 정리와 체계를 마련한 분이다. 지난 민족의 수난이 많았던 1980년대, 양순용 명인은 우리의 전통 연희굿에 관심을 갖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필봉농악을 정성으로 전수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고 임실 농악의 진가를 널리 알린 분이기도 하다. 이후 활발한 전승과 진흥에 노력하시다가 1995년 작고하시고 명인의 아들 양진성, 양진환 선생이 그 뒤를 이어 필봉농악을 전승하고 있다. 자. 그럼 우리 임실 필봉농악을 잠시 살펴보자. 필봉의 농악수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조끼를 입고 삼색띠를 두룬다. 그리고 쇠잡이(꽹과리나 징을 치는 사람)만 상모(털이나 줄이 달린 농악에서 쓰는 모자)를 쓰고 나머지는 고깔을 쓰며 연희를 행한다. 타 여느 농악처럼 종류에는 섣달그믐의 매굿, 정초의 마당밟기(풍물을 치며 집집마다 도는 것), 당산제굿(당산에서 마을을 위해 제사 지낼 때 농악을 치며 노는 것), 보름굿, 문굿, 농사철의 두레굿, 기굿과 판굿 등이 있지만 이 중 임실 필봉농악 판굿은 가장 연희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지난 단오일, 임실 필봉농악 정기발표회 ‘단오야 필봉가자’에는 당산제, 샘굿, 마당밟이와 같은 마을굿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뒷굿인 노래굿, 돌굿, 수박치기굿, 등지기굿 등 연희자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판이 흥겹게 진행되었다. 또한, 공연에서 뒷굿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도둑잽이굿과 탈머리굿도 선보여 많은 관객에게 환호를 받았는데 이중 도둑잽이굿은 마을공동체의 질서와 결속, 화합을 목적으로 실연하는 연극굿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행사에는 연희와 더불어 필봉문화촌 마을 어귀에 창포물 머리감기, 족욕하기, 단오선 부채 만들기, 화채 나눠먹기 등 다양한 전래놀이 체험도 힘께 진행하여 코로나19로 움츠렸던 힘든 어깨를 펴고 함께 만나 소통하는 귀한 시간을 만들었다. 진정한 연희는 대중과 함께하며 마음을 열게 하고 소중히 하나 됨을 추구한다. 현실의 삶은 어렵고 힘들지만, 단옷날의 필봉농악처럼 희망찬 나래를 펴고 즐겁게 이겨낼 수 있는 판을 모두 함께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러한 살판 위에 우리네 삶을 멋지게 가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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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9 17:1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순창 고추장

지난 29일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는 성금연가락보존회(대표 지성자)가 주최·주관하는 ‘성금연류 가야금산조 한바탕 이수자 발표회’가 있었다. 연주된 가야금산조는 춘사 성금연이 구성한 산조로 창작자의 오랜 시간 끊임없이 발견과 이해를 통한 반복으로 다듬고 다듬어진 가락의 창조물이다. 성금연 명인은 일찍이 1960년대 파리민속예술제와 1972년 최초로 카네기 홀 무대에 섰었으며, 음악가로만 아니라 국악예술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에 봉직하며 교육자로서도 익히 알려진 가야금의 명인이다. 전라북도에서는 2010년 3월 지성자 명인을 무형문화재로 인정하였는데 그녀는 1945년에 태어나 모친인 성금연에게 가야금산조를 이어받고 일찍이 8세 때 발표회를 시작하여 다수공연과 연주회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가야금의 명인이었다. 오랜 세월 굳건히 성금연류 가야금산조를 지키고 있으며 특히 고제古制의 예스러움과 투철한 예술 감각으로 그 맥을 잇고 있다. 또한, 지성자 명인은 국내 최초 15현 가야금 개량 및 연주곡들을 작곡하여 가야금산조의 신기원을 만들어 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디 산조는 기악 독주곡으로 오랜 세월 삶의 이치를 가락으로 구성하고 가녀린 손끝으로 만들어 내는 희로애락의 원초적 소리이다. 그리고 같은 산조라 해도 각 개인 환경과 생각의 차이에 따라 개성이 뚜렷하고 나타내는 마음 표현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전통 악기 중 가야금은 그러한 산조를 가장 먼저 만들어 냈다. 가야금산조는 산조 중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으며 장단 또한 다채롭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에는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구성되어 있다. 장단 구분에서 굿거리가 삽입된 점이 특징이며 다른 유파流派에 비하여 간결하고 경쾌하며 감칠맛이 있다. 감칠맛을 논할 때 우리는 전통음식 중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고추장하면 영조英祖와 전라북도 순창이 떠오르는데 영조는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오래 재위하였고, 가장 오래 장수한 왕이다. 장수의 비결이 있음 직하나 사실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어의는 매번 설사와 어지럼증으로 입맛이 없는 영조를 걱정했지만, 가을 보리밥에 고추장, 즙저만 있으면 족하다며 늘 검소한 수라를 드셨다 한다. 이러한 고추장의 감칠맛은 왕의 건강을 지켰고 그 맛의 비결은 지금도 순창 지역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금연류 가야금산조와 전라북도 순창 고추장의 감칠맛. 그 둘은 누구나 흉내를 낼 수 없는 특별하고 색다른 멋과 맛에 있다. 가야금의 요동치는 선율은 맛깔스러운 별미와도 같고 고추장의 감칠맛은 가야금 선율의 휘몰아치는 감동과 같다. 우리 선조는 그렇게 구성진 가락과 감칠맛에 동요되고 고락苦樂을 함께하며 삶을 지켜왔다. 자. 이제 우리 가야금산조를 듣고 즐기며 순창의 고추장을 영조처럼 탐식하며 감칠맛을 즐겨보자. 그리 녹록지 않은 세상의 삶이지만 우리네 마음에는 감칠맛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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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02 16:34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다시 부른 민중의 노래

지난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거행하며 보수 정권으로는 처음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시도하였고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불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정부가 5·18 유족들의 뜻을 받아 기념식을 주관하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제창' 형식으로 불린 민중가요이다. 이후 '제창'은 2009년부터 종북 논란의 이유로 '합창' 형식으로 전환된 과거가 있다. 특히 2010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경기민요인 '방아타령'을 식순에 넣어 거센 비난을 받고 철회하기도 했다. '제창'은 참석한 모든 이가 함께 부르는 음악의 형식이다. 그리고 '합창'은 여러 화성을 만들어 함께 부르는 노래 형식이긴 하지만 이 또한 누구나 다 같이 부를 수도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제창'과 '합창'은 각각의 논리와 변으로 서로의 정치적 의미를 내포했고 화합을 추구하는 민주적 추모 행사에 전대미문의 음악적 궤변으로 만들어졌다. 그 결과 국가가 인정한 민주화 추모 행사에 애매한 음악의 갈래로 의미 부여를 교란했으며, 때아닌 경기민요의 등장으로 성급한 정책의 혼돈으로 남았다. 지난주 다시 돌아온 5월 18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 다시금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새로운 대통령은 '합창'으로 일축했던 보수의 고정관념을 깨고 '제창'의 형식으로 그 의의를 다시 찾고자 했다. 그리고 모든 참석자는 마음속 깊이 응어리졌던 노래를 세상 밖으로 용출시켰다.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음악은 대부분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 선조들은 소중한 분을 잃었을 때 돌아가신 분과 그 가족 앞에서 곡을 했고 힘든 일을 할 땐 노동요로 그 고됨을 이겨 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공동체 삶 속에 희로애락의 노래를 자생적으로 만들어 불렀고, 그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삶의 토대를 그리며 더 행복한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역사는 한 시대를 대변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고 그 노래는 국민 가슴속에 자리 잡아 한 시대의 위안이자 민중의 노래로 남았다. 이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진보의 정치적 성과라 생각지 말고 보수의 논리로 그 뜻을 논쟁치도 말자.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나간 아픈 역사적인 산물로 만들어진 선율이요, 가사이다. 아픈 곳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네 맘을 곱씹어 만들어 냈던 노래인 것이다. 비장한 단조의 멜로디는 역사의 뒤안길이다. 흐르는 곡의 4/4박자는 우리들의 맥박이요, 외치는 간결한 가사는 우리 역사의 심장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통해 처절하게 돌아가신 유공자들의 영혼을 달래 줄 수 있다면, 또한 우리의 후대들로 하여금 다시 이러한 역사의 불행이 오지 않게 동기 부여를 한다면 제창이 중요하리요, 합창이 뭐 그리 중요하리요. 역사의 중요한 멜로디가 되고 소중히 함께 부르고 싶어 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이제 '제창'과 '합창'이란 음악적 논쟁 앞에 멈추지 않고 아픔 없는 나라를 위한 민중의 노래로 남아 그 의를 돌아보며 영원히 함께하는 역사적 산물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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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6 17:07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통춤을 아는가

지난 30일 전라북도 전주에 춤과 관련된 모든 상상이 가능한 춤 놀이터 문화공간 ‘금파아트센터’가 개관했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7호 한량무 보유자인 故 금파 김조균, 전북무용협회장을 역임한 故 김숙의 딸이자 금파아트센터 창립자인 애니킴 이사장은 “춤의 학문적 가치와 사회적 중요성을 높이고 그 실천의 장을 이끌기 위해 금파아트센터를 마련했다”라 말했다. 또한, 실험적인 춤 작업뿐 아니라 전통 수용과 현대적 변용을 통해 확장하고 성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침체하였던 전통예술계로서는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쁜 마음에 전통춤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논해보자. 우리나라의 노래와 춤은 지방마다 다르며 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환경에 따른 삶의 적응방식이나 민속문화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 지역인 전라도는 소리에 강점이 있다. 특히 판소리는 선조 대대로 명창이 많았으며 이를 애창하며 배우려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마한과 백제로 이어지면서 풍요로운 농경문화와 다양한 농경민속, 민간춤들이 만들어졌고 각 지역마다 농악, 여성적인 소리춤들이 발달하여 존재감이 특별했다. 전라도의 춤에는 여성춤, 손짓춤 같은 특성을 나타내는 선의 아름다움이 존재했고 춤에 따른 배경음악이 뛰어난 강점도 가지고 있다. 반면 경상도의 춤은 수직·수평적이다. 평면적·동적인 춤이 발달했고 마당춤과 방안춤 등 복합적인 전승이 이루어져 흥겹고 여흥적인 춤의 특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각 전라도와 경상도의 독특한 지역적 특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담론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담론은 선입감이란 공론을 만들었고 전라도는 마치 춤이 부족하다는 감성으로 표현됐다. 담론의 사유를 논하자면 그것은 호남의 뛰어난 소리와 기악선율문화 때문에 상대적으로 춤이 저평가된 것이 아니었을까? 더불어 논하자면 경상도의 춤이 발달하게 된 원인에는 지역 향토춤과 탈놀이 그리고 기방문화가 있었다. 그중 큰 획을 긋고 있는 기방춤은 과거 영남지역에 호남 출신이거나 호남에서 춤을 배웠던 예인들이 권번에서 춤을 지도했었고,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호남에서 피난 온 많은 예술가들이 영남의 각 지역에서 호남춤을 전파해 현재까지 그 영향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유추해 볼 때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담론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우리 한민족은 오랜 세월을 지내며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창출하고 호, 영남의 특색있는 색깔로 화합을 이끈 민족이다. 소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춤, 기악, 기예, 연희 등 지역의 특화된 장점을 근거로 다양한 예술을 보존하고 이어가며 발전시켜 왔다. 특화된 지역의 예술적 장점을 담론으로 표현하며 보존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부분은 충분히 논의될 수 있지만 공통된 생태문화권을 형성하면서 함께 이루어진 주체를 분류하여 지역 나눔을 가져야만 하는가 의문을 가져본다. 물론 특화된 지역의 장점을 부각시켜 더 나은 결과물을 찾기 위한 연구의 방편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명제가 굳어진다면 연구의 시발점조차 잃게 되는 두려움을 안게 될 것이다. 이제 “소리는 전라도요, 춤은 경상도”라는 고정관념은 뒤로하고 지역의 특화된 예술은 장점으로 품으며 또 다른 서로의 장, 단점을 찾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비로소 통합적인 시각과 미시적인 관점, 정교한 논리를 준비하며 전통춤을 알릴 시기가 다시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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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9 16:47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국악교육 개정에 대한 단상

현시대 우리의 대한민국은 전통예술을 이해함은 물론 삶의 가치로 융합, 수용하여 많은 국민과 함께 즐기고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는 도전과 시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며칠 전 일이다. SK텔레콤은 국립극장과 협력해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 각종 문화 행사가 가능한 '놀러와 국립극장'을 만들어 전통예술에 기반한 콘텐츠와 함께 디지털화 및 확산, 선도한다는 사업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 28일 개관식을 통해 랜드 오픈식을 성대히 치륐다. 기업의 이러한 혁신적인 시도는 전통예술을 새로운 가치의 세계로 확산시켰고 민족의 정체성과 함께 경제적 창출을 포용한다는 성과를 이뤄냈다. 또 다른 민간사업을 살펴보자. 게임으로 대한민국을 세계에 널리 알린 넥슨재단은 5월 11일, 12일 이틀간 제1회 ‘보더리스 공연: PLAY판'라는 공연을 개최한다고 알렸다. 재단은 공모전을 통해 ‘게임과 전통예술의 만남’이란 주제로 ‘현대연희 prototype21’ ‘플레이 오케스트라’ ‘보쏘(BOSS5)’ 등 세 팀을 뽑았고 지난 1월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개최했다. 선발된 세 팀은 넥슨의 대표 IP에 씻김굿, 마당놀이, 국악관현악 등 전통예술과 접목한 공연을 선보이며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한류 게임 문화 콘텐츠 가치를 대내외로 알렸다. 이러한 전통문화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융합 창출하고자 하는 사업이 있는 방면 안타까운 국가정책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올해 말 확정·고시 예정인 <2022 개정 교육 과정의 '국악' 전면 배제>라는 논의이다. 지난 4월 21일 전국 국악교육자협의회는 “졸속 개정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의 규탄 성명을 발표했는데, 한국국악협회 등 130여개 관련 단체와 함께 소신 의사를 밝혔다. 이에 전통문화계는 크게 논란이 되었고 SNS 속 많은 담론객들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용을 살펴보자. 지난 4월 교육부가 공개한 ‘2022 개정 음악과 교육 과정 시안’의 ‘성취 기준’ 항목에는 국악 관련 내용이 하나도 없다. 여기서 교육 목표를 의미하는 ‘성취 기준’이란 학교 수업·평가와 교과서 편찬의 가이드 라인으로 새롭게 변경된 기준안에는 국악이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논란에 교육부는 "서양음악, 국악 등 장르를 구분하기보단 실생활 위주의 교육을 위한 개정 과정에서 국악이란 표현이 빠졌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전통예술가 및 관련 교육자에게는 이해의 아쉬움이 많은 답변이었다. 국가는 그러한 이해의 정책이라면 국악과 더불어 이제 역사 또한 세계사 속에 한국사를 넣어 동일한 형평성으로 교육함이 옳으며 국어 또한 영어, 일어, 중국어와 함께 만국어란 교과명으로 통일해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 국가 원동력인 전통문화를 향한 민간기업과 정부의 애정 어린 마음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이토록 방향성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드러내어 창출하고자 하는 의도와 포용해 획일 시키려는 의미는 다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수용하고 지혜롭게 이끌어내며 담아 가느냐가 관건이다. 전통은 불온한 혁신과 수용 속에 본질을 잃을 수도 있고 섣부른 융합과 무관심 속엔 사라질 수도 있는 정서적 매개체임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올곧은 전승과 진흥으로 함께 전통예술을 소중히 지키고 이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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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2 17:0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라북도립국악원

지난 24일 전라북도립국악원은 37년간 함께했던 청사를 떠나 행정 사무국, 교육학예실 등 주요 부처가 전통문화체험전수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동안 도립국악원은 노후화된 청사로 인해 안전 확보, 주차공간 활용 및 연수공간 운영 등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에 따른 환경 개선 및 효율적 활용을 위해 신청사의 건립을 추진, 성사시켰다. 2년 뒤에는 현 위치에서 새로운 청사로 도립국악원을 만나게 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아간다는 말이다. 전통예술 역시 고정화된 역사의 산물이기보다는 함께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부딪히며 이루어내는 결과물이며 국가적인 계승과 창조적 문화 창달을 위한 근본이 된다. 이러한 옛것을 알고 새로움을 행하려면 우리의 전통문화를 인지하고 느끼며 배워야 한다. 전라북도는 그러한 매개 중심에 민족문화예술의 국악원을 만들었고, 도민들과 함께하는 국악을 즐기며 37년의 세월을 보냈다. 전라북도는 도립국악원 외에도 타 시도와 다르게 전통예술의 다양한 무형문화재 종목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판소리와 농악은 여느 곳과 비교되지 못할 정도로 예능 보유자와 이수자가 많으며 다양한 지역의 전통예술 희소성을 입증하고 있다. 더불어 특별한 점은 그러한 전통예술을 함께 배우고자 하는 도민들도 많다는 것이며 든든한 예술적 관심을 바탕으로 우리 전라북도의 전통예술은 한국 최고의 수준 그리고 전통예술의 본향이란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전라북도 예술계도 지난 수년간 코로나19의 전염병으로 많은 고통과 아픔을 받았다. 특히, 전라북도의 전통 문화계는 더욱더 그러했다. 우리 도의 중추적인 문화사업소인 전라북도립국악원은 이러한 아픔을 딛고 전통예술의 위상과 대민 교육 및 문화 향수권을 위해 많은 시간을 노력했다. 갑작스럽게 발발한 코로나19에 초·중·고급 온라인 교육 강좌를 대응 개설하여 도민과의 전통예술 학습을 지속시켰으며, 비대면Untact 온라인 공연의 콘텐츠 서비스를 추진해 사실상 어려운 비대면 속이지만 국악 대중화에 노력하였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악서樂書 악학궤범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음악은 하늘과 자연에서 나온 것으로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 따라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국악은 이렇듯 수천 년을 이어온 문화적 산물로 만들어졌다. 시대를 거치며 많은 사람이 느끼며 즐겼고 민족의 음악을 통해 난관을 극복하고 나아가 삶의 소리로 승화시켰다. 전라북도립국악원은 이렇듯 민족의 애환과 희망을 담고 있으며 민족의 정서를 올곧게 전승하려는 전라북도의 중요한 기관으로 그 책임과 사명을 다하고 있다. 향후 새로이 건립되는 전라북도립국악원과 함께 다양한 전통예술의 교육과 연구, 공연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현시대에 필요한 “포용적 회복 inclusive resilience”의 가치를 만들고 새로운 역사의 주역으로 이어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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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28 16:4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한恨의 악기 “아쟁牙箏”

한국의 정치와 사회, 문화, 경제, 학술의 모든 분야에 있어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일제강점기의 우리 국민은 식민지 치하의 차별받는 분노와 굴욕,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잠재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시대를 다루는 우리나라의 예술작품들은 한결같이 무겁고 우울했다. 짐짓 밝은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리 인기를 끌어내지 못했다. 이때 사람들에게 기대 심리를 자극하며 나오게 된 것이 전통극인 창극이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의 상황을 아무런 고민, 고뇌도 없이 희망과 진보, 기대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애환과 억눌린 감정의 표출을 민족극인 창극으로 나타냈다. 1939년 9월 동일창극단 창작 창극 “일목장군”을 계기로 남, 여 혼성의 창극에서 여성 창극의 시대를 연다. 창극이란 원래 기존의 판소리나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작창하여 부르는 연극 형식인데 노래를 포함하여 춤, 노래의 반주와 배경 무대가 포함된다. 이때 노래의 반주에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귀신소리, 천둥소리 등 인간과 짐승의 감정까지 모두 성음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곧 판소리에서 소리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작품의 소리 감정이 여성들의 배역으로 이루어지면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과 간결함으로 작품의 소리 감정을 표출하였다. 또한, 남성의 역할을 여성이 표현함으로 색다른 중성적 이면과 성음을 표현하게 되는데 이때 반주가 이러한 표현을 도와준다. 이러한 음악적 간지懇志에 필요성을 느낀 악기가 아쟁이다. 찰현악기인 해금 아쟁은 지속적인 음을 내는 악기로서 가야금과 거문고보다 창극반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소리와 동작을 파악하여 장면을 만들어 낼 때, 지속적인 현의 소리로 극 중 고조되는 부분은 더욱 고조되게 표출하며, 애절한 곳은 더욱 애절하게, 기쁜 곳은 다양한 가락의 지속음을 통해 더욱 기쁘게 표현하였기 때문이었다. 박성옥은 이러한 아쟁을 연주하기 편한 크기로 작게 개량하여 사용하였다. 당시 박성옥(朴成玉)은 무용음악을 위해 전통적인 악기의 개량을 주로 많이 하였는데 아쟁 또한 그에 의해 음량이 증폭된 악기로 개량되어 창극과 무용음악에 사용되었다. 1949년 2월 「여성국악동호회」의 〈햇님 달님>은 아쟁의 애절한 소리로 각광을 받은 창극이다. 현재 아쟁산조의 한 유파를 형성하고 있는 정철호와 한일섭은 그 당시의 공연을 보고 아쟁소리에 반하여, 가야금을 고쳐 아쟁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장월중선, 김일구, 지영희 또한 다양한 시험을 거쳐 오늘날 산조아쟁이라 불리는 전통악기를 만들어냈다. 그 당시의 창극은 음악적 표현에서 전반적으로 계면조를 선호하였는데, 이때 우조와 평조 표현보다 계면조 표현을 더 잘하는 아쟁을 민중들이 더욱 좋아하였다. 기존 아쟁의 크기와 개나리 활대는 각 연주자의 부분적 개량과 용도에 따라 변화되었으며, 창극의 반주로써 쓰이던 아쟁은 점차 독자적인 악기의 기능이 확대되어 독주 악기로 발전한다. 유일한 전통음악의 저음부인 아쟁은 저음부의 찰현 음색과 표현력으로 그 시대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대변하였다. 아쟁의 표현력이란 타 전통악기와 달리 거친 개나리 나무의 찰현 소리와 판소리에서 쉰 듯한 목소리의 성음 표현을 말한다. 이러한 아쟁만의 음악적 음색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시대를 풍미했던 창극의 중요한 전통악기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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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21 16:41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한류韓流의 창조적 가치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이니까 아주 오래된 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강남의 고등학교 주위에는 상추와 고추가 막 지어진 아파트 사이로 간간이 그 푸름을 간직할 시기였다. 1970년대 강남 개발로 한강 이남에 아파트가 하나둘씩 지어지고 젊은이들의 유행이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퍼진 1980년대. 압구정동과 강남역을 중심으로 유흥가에서는 일명 말처럼 흔드는 '말춤'이 유행했고, 음식과 주류를 양반다리의 교자상이 아닌 의자처럼 앉을 수 있도록 방바닥이 꺼진 곳에서 먹고 마시는 음식 주점 문화가 흘러들어왔다. 젊은이들이 강남역의 유흥가를 돌며 멋들어진 춤과 한 잔의 술로 청춘을 예찬한 곳이 바로 강남이었다. 어찌 여흥에 긍정적인 모습만 있겠냐마는 그래도 그 시절 그 장소엔 오늘날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가는 우리 중년들이 한 번쯤 강남스타일로 멋을 부리며 진한 소주 한 잔으로 열정과 패기를 곱씹었던 추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러한 동경을 꿈꾸며 그곳을 찾았고, 그렇게 스타일을 외치며 불확실한 자신의 미래에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한 우리 젊음의 패기와 도전 정신의 모체가 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음악과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져 주목을 받으며 새로운 유행을 만들었고 유튜브 수억 뷰를 만들며 우리들의 감성은 세계인의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불과 ‘강남스타일’이 세계를 휩쓴 지 몇 년, 우리의 젊은 그룹 방탄소년단이 한류韓流의 정체성을 담아 또다시 K-pop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더 시티'란 프로젝트를 통해 미국 라스베이거스 콘서트를 단순히 공연이 아닌, 하나의 축제로 다시 만들었다. 지난 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는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라스베이거스'(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LAS VEGAS)란 공연을 시작으로 그들은 한류 감성感性의 돌풍을 다시금 일으켰다. 특히 이번 공연은 세계적인 리조트 그룹 MGM과 함께 손을 잡고 진행되었다. 현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MGM 그룹 소속 호텔 11곳, 약 3만 7000여 개의 방을 방탄소년단 테마로 꾸며진 BTS 테마룸으로 개조했으며 각 방에는 방탄소년단의 손글씨 웰컴 카드, 방탄소년단의 모습이 담긴 포토 카드 등을 구비하여 한류의 팬심을 전했다. 또한, 방탄소년단이 즐겨 먹는 한식韓食 메뉴들을 코스 요리로 즐길 수 있는 음식점도 선보였는데 이곳에서는 방탄소년단이 좋아하는 음식들인 비빔국수, 치킨, 붕어빵 등을 새롭게 해석하여 코스 요리로 제공하기도 했다. 세계 각 나라에는 제각각의 특별한 문화와 풍습이 있다. 그것은 고유의 문화 전승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나라의 현실에 맞게 나타나는 문화의 유행일 될 수도 있다. 그러한 흐름이 우리 대한민국의 멋과 흥, 멜로디로 투영되어 세계 대중문화 중심인 Las Vegas를 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한류 문화의 바람이 아시아를 넘어 함께하고 싶어 하는 욕구와 욕망 그리고 그것을 취하고자 하는 의도적 시발점으로 함께 거듭나며 세계적인 도시를 ‘제2의 대한민국’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메타버스Metaverse의 가상을 넘어 실질적인 현실의 문화 유행과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한류韓流 문화공동체의 역량과 자긍심이며 미래 비전Vision의 창조적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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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14 16:43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국가무형문화재 '남원농악'

지난 3월 25일 대한민국의 국악계 큰 어른이시며 남원농악을 이끈 상쇠 류명철 명인이 81세의 춘추로 안타깝게 별세하셨다. 명인이 몸담았던 남원농악은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일원에서 전승되는 농악으로 호남 좌도농악의 성격과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마을 단위 대동굿을 통해 오랫동안 전승되어온 전라북도의 농악이다. 특히 들당산굿, 마당밟이, 판굿으로 구성된 마을굿으로 판굿 중 뒷굿(도둑잽이, 재능기) 구성이 특이하며 호남 좌도농악에서만 사용하는 부들상모를 전승자들이 현재까지도 직접 제작하여 연행하는 등 차별화된 연희를 구현하고 있다. 남원농악의 특징은 가락이 다채로우며 놀이 동선과 동작이 세련되고 섬세하다. 그것은 각 장단의 가락과 연희 동선의 예술성이 높다는 이야기로 그러한 농악의 품격은 남다르다. 남원농악을 이끌었던 고故 류명철 명인은 약관인 16세에 마을 농악단에 들어가 기능을 익혔고 18세에 상쇠로 입문하여 남원농악을 이끄셨다. 이후 지역 농악인들을 규합해 1970년대 초 남원농악단을 창단하셨고 오랜 시간 활발한 활동을 하시면서 남원농악의 진가를 대내외에 알렸다. 1997년 8월 남원농악 판굿 발표회를 주도적으로 실연하였고 이듬해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심사를 거쳐 남원농악의 예능 보유자가 되셨다. 류명철 명인과 함께 남원농악의 전승과 진흥을 담당하던 남원농악보존회는 기록 및 채록 작업을 통해 많은 자료를 더불어 남겼다. 남원농악의 가락과 고사소리를 CD와 동영상 자료로 제작하였고 농악에 들어가는 모든 장단을 정간보와 서양 악보로 기록하여 단행본을 내는 등 남원농악을 위한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러한 결과로 전라북도의 무형문화재였던 남원농악은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승격을 이루어냈고 그 위풍을 당당히 전국의 전통예술인들에게 보여주었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농악에는 전국 8곳의 농악이 있다. 각각 지역 특화된 연희와 가락을 전승하고 있는데 그 분포를 살펴보면 경기도 1곳(평택농악), 강원도 1곳(강릉농악), 경북 1곳(김천금릉빗내농악), 경남 1곳(진주삼천포농악), 전남 1곳(구례잔수농악) 그리고 전북 3곳(이리농악, 임실필봉농악, 남원농악)으로 각각 차별화된 예술성과 더불어 실연능력과 전승활동, 전승의지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중 남원농악은 걸립(乞粒)농악의 전통을 모두 갖고 있다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의미는 농악 연희자들이 지역사회 운영의 주축이 되어 마을을 돌며 마을 공공자금을 마련하고자(걸립)하는 공동체의 유기적 관계 즉 운명공동체의 생활 방식을 잘 표현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또한, 남원농악은 마당극 형식의 재담과 상여소리, 호남좌도 특유의 부들상모놀음 등 많은 지역 문화 전통예술의 특징을 담고 있다. 8개의 “농악” 국가무형문화재 중 3곳을 보유하고 있는 전라북도. 호남평야의 드넓은 대지 위에 선조들의 역동적이며 진취적인 삶을 대변하는 우리 농악은 그렇게 역사 위에 견디어 왔고 우리 민중 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고故 류명철 명인의 명복을 다시금 빌며 호남 운명공동체의 대표적 문화유산 “남원농악”의 보존과 전승이 굳건히 이어지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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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07 16:45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9조

우연히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 책을 놓칠 뻔했다. 하늘의 명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의 나이인데도 이렇게 헌법에 무지의 소치란 사실이 부끄러웠다. 예술을 하면 정치나 경제엔 참으로 무디어진다.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에 온몸과 마음을 몰입하지만 의외로 세상 물정엔 그리 밝지 못한 환경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한편으론 세상과 조제된 자유를 거부하는 의미일 수도 있고 편협된 사고를 저버리고자 하는 예술적 의도일 수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우리의 선배 예술가들은 배고프고 억울했던 시절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이제 아픈 추억의 뒤안길이 되었고 현시대에는 많은 예술인은 정치, 경제, 문화 참여와 공조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예술가로서 얕은 법률 지식을 위해 대한민국의 헌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헌법의 전문에는 이러한 글귀가 적혀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중략." 그렇다. 이 땅의 주인인 우리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민족이다. 조국을 위한 이념의 항거와 정의를 위한 시련도 있었고 민족의 단결과 자유 민주주의를 향한 아픔도 있었다. 그러한 역사 진실은 이제 삶의 뿌리가 되었고 시대의 교훈은 현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헌법 서두의 제1장 총강을 살펴보자. 모두가 잘 아는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조항이다. 제2조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중략. 국가는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는 조항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요건과 법으로 보호받을 권리를 알리고 있다. 제3조를 보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영토에 관한 문장이며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 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며 이를 추진한다."로 우리의 현 분단국가에 대한 통일 염원을 담은 소중한 헌법 조항이다. 제5조를 살펴보면 "대한민국은 국제 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란 법령으로 세계 평화에 일조하겠다는 의지 조항이며 제6조는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즉 국제사회에서의 한민족 지위와 보호, 존엄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제7조로 들어가면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는 조항이 있다. 그것은 국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무원 조직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피력한 조항이다. 제8조는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국민은 나라 운영에 참여할 수는 권리가 있고 모든 자유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리는 조항이다. 마지막으로 피력된 헌법 제1장 중 제9조 바로 그것은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문장이다. 이는 국외 문화 개방과 개혁에 의한 수용보다도 전통문화에 따른 계승·발전이 국가의 존재가치와 발전에 우선시 된다는 것으로 헌법 제1장에 먼저 규정하여 그 소중함을 귀히 알리고 있다. 헌법은 우리가 지켜야 할 중요한 의무이자 권리이며 삶의 준칙이다. 헌법 제1장 제9조의 법령이 국민의 삶에 항상 함께하기를 전통 예술가로서 소망하며 의무와 책임을 다시금 소중히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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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31 16:5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윤석열 문화예술정책에 대한 소고小考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새로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는 안을 확정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모두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겠다"란 말을 남기며 협치의 교감을 강조했다. 이에 문화예술정책을 몇 자 풀며 작은 소고를 논하고자 한다. 향후 신정부의 문화정책공약을 보면 첫째, 지역별 문화 격차 해소 및 지역 중심 문화자치 시대 개막. 둘째, 전 국민 문화향유 시대 확립으로 문화기본권 보장. 셋째,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맞춤형 지원. 넷째, K-컬처를 통한 세계문화의 미래 발전. 다섯째, K-컬처 스타트업 지원으로 문화산업 선진국 도약. 여섯째, 전통문화유산의 보존과 가치 제고. 일곱째, 제약 없고 공정한 장애 예술인 활동기회 및 가치를 약속했다. 문화예술부문 공약과 향후 정책 추진 방향에는 전통예술의 다각적인 세부 활용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향후 보다 효율적인 문화예술 정책이 논의, 실현되기를 소원하며 추진 중인 정책 또한 보편성이 혁신을 가리지 않게 더욱 실용적 플랜으로 제고하기를 부탁드린다. 제안 드린다. 첫째. 한복, 한식 등의 우리 민족 고유한 정체성이 담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한 정책은 방향성의 가늠이 중요하다. 어떠한 동기부여와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또한, 함께 도모할 콘텐츠의 수용은 효율적인가? 미래 문화예술은 독자적인 플랜보다 융복합의 전통문화 재창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현시대에 있어 전통문화 창의 융복합은 필수라 판단된다. 전통예술과의 모색. 한복과 한식 '더불어 함께'라는 공통어 즉 <융합 콘텐츠 창조>를 지향해야 하겠다. 둘째. K-컬처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관련 지원 확대. 이를 통해 앞으로 게임·엔터테인먼트·광고 등 다양한 분야의 일자리 창출과 동반성장 공약 부분의 보완이다. 이것은 다양한 메세나 부문의 협조와 공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의 지원이 먼저가 아니라 사회적 동반성장의 플랫폼을 조성시켜 주어야 한다. 셋째. 전통문화유산의 미래 문화자산 보존과 가치 제고 공약을 살펴보면 유형 문화유산에 대한 정책으로 집중되어 있다. 무형 문화유산의 특별지원 확대, 과학을 통한 현대적 발전 유도 등 포괄적으로 제시된 무형유산의 정책에 비해 매장문화재발굴조사 비용 제고, 전통사찰 및 문화재 보수 정비, 국립공원 내 사찰 가치 고려, 국보급 문화재 복원 계획 수립 및 추진 등 유형 유산은 구체적인 방안으로 구성된 점 이에 국립국악원, 국립무형유산원, 시·도립국악원, 전통예술단체 등 현실적인 무형유산 관련 단체의 활용 방안과 전승, 등용 및 진흥 정책을 면밀히 추진하여 무형유산의 성장도 함께 도모해야 하겠다. 2021년 정부시상 지원 경연대회에서 수여한 대통령상을 살펴보면 무용 분야 2곳, 음악 분야 2곳, 연극 분야 1곳인 반면 전통예술 분야는 국립국악원 온나라국악경연대회까지 포함 총 26곳에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있다. 이러한 타 분야보다 10배가 넘는 대통령 표창에는 많은 정책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 본질은 세계 문화 중심을 향한 k-컬처의 지향성에 있다. 국빈 초청의 중요한 국가 의장행사엔 국악 취타대가 항상 의장대와 함께 의식을 진행한다. 그것은 대한민국 전통문화를 고결히 세계에 표함이며 더 나아가 보존하고 지켜야 할 한민족의 존엄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국가 운영에 미치는 전통예술의 역할은 소중하며 그 가치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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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24 17:42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태준 명인을 그리며

지난 12일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46호 전라삼현육각 대금 예능 보유자인 전태준 명인이 별세했다. 전라삼현육각은 전국 각 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삼현육각 중 전라북도 전주지역에서 전승되어져 내려오던 음악이다. 사라져만 가던 전라삼현육각을 그는 1983년 이정렬(피리), 이광남(피리), 김준기(장구) 등 옛 선·후배,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복원에 힘썼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라북도의 향제 삼현육각으로 부각시켰다. 삼현육각은 일반적으로 피리 두 개, 대금, 해금, 장구, 북 하나씩 편성되어 연주되는 풍류 음악을 말한다. 이러한 삼현육각은 지역의 특색을 안고 다양한 음악이 계승되고 있는데 조선말까지 거상악<과거 연회에서 연주하던 곡을 뜻한다. 상을 받기 전에 아뢰던 음악으로 이때 부르던 노래는 대개 가곡, 가사, 시조가 있다>, 무용 반주음악, 행진 음악은 물론 지방 관아의 연향 및 고관의 행차, 사가의 연향, 향교의 제향 등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삼현육각은 맥을 잇기에는 연주가의 단절, 전승 가락의 소멸, 악보 부재 등으로 전승이 녹록지 못했다. 다행히도 삼현육각의 음악을 잇고자 하는 경기지역의 삼현육각, 해서지역의 해주, 은율 삼현육각, 영남지역의 통영삼현육각, 호남지역의 나주, 전주 농·민삼현육각 등은 어려움 속에서도 올곧은 전승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전라삼현육각은 오래전 관아와 민간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소중한 전통음악으로 정자선-정형인-전태준에게 이어지고 있는 지역 시민의 삶에 묻어있는 생활 음악이다. 그러한 우리의 전라삼현육각은 전라북도의 특수성을 안고 전라삼현육각 보존회와 전라삼현육각 대금 보유자인 전태준에 의해 전승되고 있었다. 전태준은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 출신이다. 청년 시절 서울로 상경하여 1970년부터 1983년까지 13년간 종로에서 생활을 했다. 1974년 종로 삼청각에서 국악예술단을 이끄는 초대 단장으로 그 이름이 났으며 스물아홉의 나이에는 서울시의 단체등록을 한 30여 명의 단원을 이끄는 중요한 단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때 함께 근무했던 명인, 명창을 살펴보면 유대봉 명창, 안향년 명창, 박후성 명창의 부인 백도화 선생, 정철호 명인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국악인들이다. 전태준은 종로 생활을 통해 국빈들과 외국 국빈들을 맞이하고 전통예술을 보여주는 자부심으로 생활했으며 그 당시 정화영, 이생강, 김일구, 김청만, 백인영, 김무길, 조통달, 김동진 등과 같은 기악 명인과 함께 종로 생활을 보냈다. 이후 1986년부터는 전북도립국악원 교수부장으로 15년간 재직한다. 오랫동안 보직에 있으면서 교수부에 교수음악회를 처음 만들었으며 전라북도의 전통음악을 함께 도민과 공유했다. 갑작스러운 전태준 명인의 부고로 국악계는 아픔이 크다. 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이러한 '전라삼현'의 특별한 전통음악은 전태준을 비롯 전라삼현육각 보존회의 노력 없이는 전승할 수 없는 전통예술이었으므로 이제 우리는 더욱 이러한 전라북도의 소중한 전통예술에 관심을 두고 계승자들과 함께 소중히 이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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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17 17:41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배연신굿에 대한 추억

벌써 30년이 지났으니까 강산이 3번 변했다. 필자가 국악이 아닌 사범대에서 수학을 공부할 때였으니 머릿속에는 온통 대학 미적분, 로그와 탄젠트를 그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러한 공간에서 벗어나 서해안 어느 바닷가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아마도 전남 영광으로 기억되는데 그곳엔 참으로 아름답고 신기한 추억이 많다. 광주를 시작으로 담양 그리고 영광을 거치는 나 홀로 여행. 동해안의 드넓고 푸른 기대를 저버리고 왠지 모를 끌림으로 그렇게 발길을 따라 굽이굽이 직행버스에 몸을 맡기고 떠났다. 탁한 차창 넘어 펼쳐진 비경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평온 그리고 안식이었다. 이내 황금빛 대지, 붉은 노을과 함께 육신의 멍에가 하늘로 비상터니 처음 보는 이름 모를 무巫 의식에 순간 마음도 잃었다. 아마 신神도 필자의 고뇌를 알고 있어 그렇게 몸과 마음을 이끌었던 것 같다. 바다로 나가는 길목에서는 그다지 크지 않은 배의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무녀와 동행한 선주船主처럼 보이는 이는 치성과 기원을 드렸고, 자연스레 모인 동네 사람들은 합장하며 함께 마음을 담았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의식을 향한 필자의 첫 사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서해안 일대 행해지는 대표적 굿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는 배연신굿과 대동굿의 풍어제로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에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굿은 이처럼 삼면 바다인 한국의 지역적 관습과 음악적 특이성을 잘 지탱하며 전승되어 왔다. 배연신굿이 행해지는 주된 공간은 배ship다. 선주들의 개인 뱃굿으로 선주의 배에 대한 간절한 기원을 담아 무사고와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로 전해지고 있다. 30년 전 서해 어느 바닷가의 제의도 지금 생각하면 배연신굿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서해안 배연신굿은 전북 고창군과 전남 영광군 일대와 황해도 옹진군 일대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오늘날 배 진수식과 같은 의미도 갖는다. 배연신굿에 자주 등장하는 한 유래를 살펴보자. “조선 시대 임경업 장군이 전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병사를 거느리고 연평도로 건너갈 때 무도에서 병사들이 굶주리고 지쳐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임경업 장군은 ‘땜슴’이라는 곳에서 병사를 시켜 산에서 ‘뽀르스나무(일종의 가시나무)’를 꺾어 오게 한 후 물골에다 이 나무들을 세워 놓고 주문을 외우니까 조기들이 나무에 하얗게 걸려들었다. 임경업 장군은 이 조기로 병사들을 배불리 먹여서 땜슴이란 곳을 무사히 지나갔다. 그 이후로 뱃사람들은 임경업 장군을 신으로 섬겼다. 그때부터 모든 배에서도 임 장군 신을 섬겼는데 여기서부터 배연신굿이 시작되었다.” 굴비의 어원은 고려 때 이자겸이 처음 사용했다. 당시 이자겸은 정주(지금의 영광 법성포)로 귀양을 왔다가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했는데 그때 이자겸은 말린 조기를 임금에게 보내어 자신의 뜻을 '굽히지屈 않겠다非'는 의미의 '굴비'라는 이름을 붙여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표현했다. 역사 속 인물의 지조와 더불어 그 옛날 천혜의 맛 굴비는 맛의 고장 ‘영광’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배연신굿은 서해안을 지키는 소중한 전통의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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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10 17:00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임방울과 방일영

임방울은 1904년 출생의 근대 판소리 명창이다. 그가 젊은 시절 일본에서 취입한 ‘쑥대머리’는 우리나라·일본·만주 등지에서 100여만 장이나 팔렸을 정도로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한 임방울의 소리를 즐겨듣고 함께 여가 시간을 보낸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조선일보 제2대 사장인 고 방일영이다. 방일영은 국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았다. 그가 세운 방일영문화재단에서는 1994년 '국악의 해' 기념사업으로 국악의 올바른 전승과 보급, 전통문화 창달에 기여한 국악인을 선정하여 매년 방일영국악상으로 공론화하며 수상과 함께 홍보하고 있다. 지난 2021년 제28회 수상에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적벽가 예능 보유자인 전주의 김일구 명창이 선정되기도 했다. 근대 명창 임방울과 방일영 사장의 일화이다.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에 임방울과 방일영이 함께 오르며 있었던 일이다. 임방울은 평소에 콧노래를 즐겨 부르던 습관이 있었다. 역시 그날도 일행과 함께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돌다리를 건널 무렵 그는 작은 소리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는데 방일영도 그를 만난 후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의 콧노래를 즐겨 들으며 산길을 걸고 있었다. 마침 입산하는 날 날씨가 화창하고 멋진 풍경이 그들을 에워싸고 있던 이유로 임방울의 노랫소리는 점점 커졌고, 계곡을 도는 시냇가 근처 햇볕 단아한 넓은 터에 다다랐을 즈음 그의 소리는 굵은 통성으로 바뀌어 자연 풍경과 함께 동화되었다. 그때 그 소리는 바로 적벽가 중 '불 지르는 대목'으로 임방울이 즐겨 부르던 눈대목이었다. 삶이 소리이며 생활이었던 임방울의 노래는 통도사를 울렸고 때마침 방일영 사장의 애창곡인 적벽가도 나오니 일행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 남성적인 의리와 기개, 야망과 좌절의 비장한 아름다움이 담긴 적벽가는 그들과 함께 입산한 일반 유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는 큰 이유가 되었고 본격적인 판이 깊어질 무렵 어느새 임방울의 소리는 많은 청중의 무릎장단과 추임새로 통도사를 크게 울렸다고 전한다. 임방울 명창은 생전에 녹음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그런 그의 고집으로 많은 자료가 남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판'을 좋아하여 더불어 어울림과 흥을 즐겼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소리를 진정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너그러울 수 없는 분이었다고 방일영 사장은 회고를 통해 전했다. 진정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녹음기를 놓으면 언제 어디서라도 흔쾌히 응해주었다는 것이다. 임방울과 방일영이 지났던 통도사의 길과 터는 남아 있는데 이제 그러한 '판'의 순수성와 소중함은 안타깝게 기억력을 잃고 있다. 전정한 소리꾼으로, 애호가로서 우리는 우리 시대 소리와 멋 그리고 감흥을 간직하며 계승하고 있을까? 다시금 그분들의 일화를 생각하며 우리의 ‘판'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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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3.03 17:02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지난 16일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정인삼)는 차기 대사습이사장 선거 후보자 등록에 단독 입후한 송재영(62) 현 이사장을 알리고 보존회 규정에 따라 향후 이사회를 거쳐 당선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는 소식을 알렸다. 코로나19 상황 속 이사회는 서면 결의를 통해 의견을 모으기로 했으며,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송 이사장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송재영이사장은 전북 임실 출생으로 이일주 명창으로부터 동초제 판소리 다섯바탕을 학습한 실기인이자 전북도립국악원 교수, 창극단장을 역임하기도 한 교육자, 예술경영의 전문가이다. 2003년 제29회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 명창부 장원인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명창의 반열에 올랐으며, 2020년 그의 계보와 공력을 인정해 전라북도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대사습놀이는 반세기 이상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전주 덕진공원에 새겨진 비문을 살펴보면 5백여 년 전 덕진공원 자리에는 큰 늪이 있었고 취향정醉香亭이 세워져 해마다 단오절이면 전주성 내 사람은 물론 각처 수천수만의 인파가 밀려와 덕진호에 머리를 감고 즐기며 노는 유서 깊은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각 고을의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성업을 이루었는데 그 시기에 남사당男寺黨, 창무단唱舞團의 굿놀이도 함께 성행하였다. 특히 단오절에는 소리광대가 인기가 있었는데 단오절 무대에 오르는 광대는 상당한 보수와 함께 본인의 실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대사습 이전의 역대 명창은 전주의 단오절 무대를 거쳐 간 명창이 많았다. 정식 대사습이란 명칭은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1661~1720) 시절 마상 궁술대회와 영조(1694~1776)대 통인 물놀이 등 민속 무예 놀이를 종합하여 시행하여 온 대회와 놀이를 뜻한다. 특히 영조 8년(1784) 지방 재인청(神廳)과 가무 대사습청을 설치해 전주에 군자정, 읍양정, 다가정, 진북정 등 4개 정을 신축하여 최초의 대사습 대회를 연 뒤 민중의 연례행사로 개최했으며 철종(1831~1863)대의 백일장, 판소리 등이 더해지면서 대사습놀이란 명칭이 광범위하게 된다. 철종 14년(1863)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의 둘째 아들이 왕위를 오르게 되는데 바로 조선 후기 고종이며 흥선군은 대원군의 자리에 오르며 섭정攝政하게 된다. 그 당시 흥선대원군은 판소리에 매료되어 많은 애정을 품었는데 그는 하명下命을 내려 “단오절 시기에 관官의 주관을 통해 판소리 경창대회를 해마다 개최하고 장원한 명창을 궁궐로 부르게 하라”고 명命 했다. 이후 조정朝廷은 전주부 통인청 대사습이라는 명칭으로 1864년부터 1905년까지 35회에 걸쳐 대회를 개최했다. 통인청 대사습이라 부른 것은 대사습때 각처에서 모여든 명창들이 통인청이라는 곳에서 기숙하고 보신 보양시켜 대사습에 임하게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통인이란 이서, 공천 출신의 연소자로 관장의 심부름을 하는 이속吏屬인데 오늘날 비서와 같은 직업군이다. 이후 전주대사습놀이는 일제강점기 단절斷絶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고 1975년 애호가들과 국악인들에 의해 다시금 복원하기에 이른다. 2022년 2월 새롭게 시작되는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의 기대와 역할은 크다. 앞으로 수백, 수천 년을 이어 나아가야 할 소중한 우리의 전라북도 전주 전통문화를 잘 이끌어주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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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24 17:0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그해 우리는

"그해 우리는 사랑을 했나?", "그냥 지나갈까? 여기 있을까? " 어느 드라마 대사는 이렇게 대중에게 다가와서 젊은 감성을 표현하고 시대의 사랑을 표현했다.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은 사랑이란 애틋한 두 글자. 아주 오래된 춘향이가 잊지 못했던 몽룡처럼 그렇게 사랑은 추억되고 잊히지 않는 아련한 익숙함에 서로를 위로한다. 사랑은 친숙함에 오는 그리움처럼 다가오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아픔으로 그들 앞에 서 있다. 그렇지만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한 행복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세상이 아무리 무관심과 잊힘의 혼돈 시대라 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사랑이란 두 글자. 그렇게 사랑은 위로받고 안기고 싶은 우리들의 자화상 속 그림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인 웅이와 국연수의 사랑 그리고 그들의 아련한 가족 사랑은 소중한 마음이자 변함없는 애틋함이다. 판소리 다섯바탕 중 춘향가의 사랑가처럼 그들의 대사는 애절하게 다가왔으며, 심청이의 눈먼 아버지를 향한 사랑처럼 할머니를 홀로 모시는 주인공 연수의 품행은 우리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또한, 주인공 웅이와 친구 지웅 사이의 꿋꿋함은 적벽가 속 혈육보다 진했던 우정과 의리. 이제 그들의 모습은 지난날 우리의 자화상이 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의 아픈 고리로 남는다. 과거란 현재의 성숙을 위해 아픔으로 채워지는 기억의 언저리. 옛 선인의 사랑과 현대인이 교감하는 사랑의 차이는 무엇일까? 전통의 편향적 사랑을 지양한 교감은 모더니즘을 넘어 포스트모더니즘 속 자유로움이 더해져 포용의 자유로움으로 남았다. 짝사랑은 시대를 넘어 만감의 기류로 나타나 허물지 못한 전유물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무소유의 행복. 그리고 자유로운 자아의 만족으로 치유를 바라는 우리들의 또 다른 자화상으로 남는다. 우리 한민족은 사랑과 포용으로 많은 고비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서로를 확인하며 견디어 왔다. 진정 바라는 우리의 그 시절 그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드라마 속 꾸며진 웅이와 연수의 다큐멘터리처럼 과거를 넘나드는 모습으로 나타난 추억은 지난날의 과오와 미련을 확인하며 새로운 행복을 지향하는 계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돌아보되 아프지 않고 새것을 이루되 후회하지 않게." 드라마의 공감대를 이룬 사랑은 또 다른 자아의 모습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매개가 되어 포용과 이해 그리고 희생이란 수용성으로 사회에 다가선다. "그해 우리는"이란 드라마 속 웅이와 국연수의 사랑 이야기는 팬데믹의 쓰라린 세상에 그렇게 숨겨진 감성을 찾아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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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17 18:11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2022 동계올림픽 문화공정

지난주 중국 북경에서는 2022년 동계 올림픽 개막식이 있었다. 개최국 국기를 56개 중국 소수민족 대표자들에 의해 옮겨지는 모습이 방송되었는데 무리 중 한 여성의 복식은 한복이었다. 또한, 중국 관영매체인 CCTV에서는 농악 상모를 돌리는 영상과 단체로 장구를 연주하는 모습 등 많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중국 전통문화인 양 송출되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중국의 문화공정이란 화두로 많은 논란이 되었고 정치계는 물론 학계와 예술계에서도 문화공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러 문제의 논란 중 필자가 피력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 소수민족 중 조선족도 있으니 한복과 농악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질문의 반박反駁이며 그러한 편견偏見에 대한 불합리한 억측臆測을 알리고 바르게 세우기 위함이다. 우선 "동북공정"이란 의미를 돌아보자. 동북공정은 2002년 중국 사회과학원의 중국변방사연구센터가 동북의 3성 즉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과 연합해 시작한 지리, 역사, 민족 연구 프로젝트이다. 중국은 그러한 연구를 통해 과거 자국의 영토 내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어가는 것으로 우리 선대의 고구려, 발해까지도 거론하며 주장과 논리를 펴고 있다. 중국은 대한민국의 아리랑, 농악, 판소리, 한복 등 전통예술과 복식을 자국의 전통문화라 주장하며 논란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족 정서가 가장 잘 내재한 민요 ‘아리랑’은 지난 2011년 중국이 조선족 문화유산임을 내세우며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우리 전통예술계로선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정부는 이미 2009년 ‘정선아리랑’의 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낸 상황이었지만 국가당 신청 건수 제한을 받아 순위에 밀려 심사대상에 오르지 못한 시점이었다. 그러던 중 중국은 ‘조선족 아리랑’을 자신들의 전통예술이라 표방하며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발표하게 되었고, 우리 정부는 다시금 2012년 아리랑을 우선 등재 대상으로 수정, 신청하여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으로 세계에 공포한 과거가 있다. 농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라북도 정읍농악, 이리농악, 남원농악, 임실필봉농악, 고창농악, 김제농악 등 많은 지역 무형문화재를 가진 우리의 특화된 농악도 2009년 ‘중국 조선족 농악무’라는 이름으로 한국보다 중국은 먼저 동북공정을 통해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바 있다. 또한, 우리의 전통 한복도 2020년 중국 옷을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중국 SNS 웨이보에 돌기도 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중국을 이룬 다양한 소수민족의 문화는 당연히 인정하며 분류되어야 한다. 하지만 소수민족이 아닌 동아시아 한민족이란 큰 역사와 문화의 모체를 가진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그러한 편향적 논리와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그들만의 동북공정으로 남아 세계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다시금 지난날 적었던 필자의 기고를 돌이켜 적으며 "문화공정"을 국민에게 알리고자 하는 이유는 한민족으로서 명예, 전통문화의 자존심 그리고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으로서의 국격國格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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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10 16:55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호랑이의 기운으로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묵은해의 모든 역경과 시련 그리고 추억은 이제 뒤로 하고 새로운 디딤을 위한 호랑이의 기상을 준비해야 하겠다. 전통문화계는 참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 질병으로 공연과 전시, 교육 등 친숙하고 가까웠던 만남이 멀어졌으며 마음 또한 자연스레 거리를 두어야만 했다. 물론 전통문화 측면만은 아니겠지만 문화예술계의 어려운 현실은 더욱 절실하며 혹독하게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새로이 시작된 2022년. 팬데믹의 전염병 또한 마지막일 것이라는 소원을 빌며 전통문화계에도 힘찬 호랑이의 기운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우리 전통문화란 한민족 정신의 교감에서 나온 결정체이다. 이해와 관심을 통해 성숙되며 그러한 공감으로 이룬 유, 무형의 유산은 세계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우리만의 가치로 창출되어 이어지고 있다. 전통문화 중 전통예술 분야는 더욱 그렇다. 모든 문화예술이 그렇듯 만드는 주체와 품어주는 모체가 중요한데 필자는 모체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모체는 즉 관객. 관객을 무시한 창조, 전승, 중흥, 진흥은 있을 수 없다. 즉 엄밀한 관계라는 뜻이다. 관객은 창조 행위의 동인動因을 만들고 함께하는 애호가로서 문화예술의 존재적 가치를 찾는다. 더불어 예술가는 애호가의 문화 욕구와 수준 높은 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예술적 동질의 교감으로 소속감을 만들며 더불어 공급자로서의 순환을 자극하여 민족의 이질감을 없앤다. 그렇다면 전통예술의 원초적 공급자인 예술가에 의해 전승과 발전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또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으로 시대의 흐름을 바르게 전달하며 내포된 정서를 잘 인지시키고 있는가? 이러한 보편적 질문이 거론될 때 항상 나오는 답변은 전통예술에 대한 대중성 부족이란 문구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강점기 시절 가슴 아픈 민족문화 수난의 역사를 보냈고, 해방 이후 서양음악 편향적 교육 정책으로 전통음악의 설 자리가 부족했다. 하지만 우리는 변화를 시도하였고 성찰하여 많은 부분이 바뀌고 현재에는 적극적인 전통예술의 전승, 진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2년 새해 새날. 나 자신과 수급자이자 전승자인 전통예술가에게 또 다른 자아 성찰의 질문을 던진다. "열악한 조건의 극복에만 급급한 나머지 진정한 예술 창조의 수요자인 애호가와의 유대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가? 우리만의 잔치는 아니었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잘 꾸며진 무대가 아닌 옥외 광장이라도 과감히 뛰쳐나가 국민과 호흡할 수 있는 공감대가 더욱 필요하며 많은 애호가를 보유한 대중예술의 비결도 함께 논의되어 지나간 옛것이란 전통문화 단면의 탈을 벗어야 하겠다. 밝아온 2022년 임인년에는 국민의 예술적 시야에 맞추어 나아가는 원칙을 갖되 국민의 예술적 관점을 높이 끌어올리는 중흥, 즉 전통예술의 중흥과 진흥을 함께 마련하는 힘찬 호랑이 기운의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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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03 19:2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전라북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명예(Noblesse)만큼 의무(Oblige)를 다해야 한다'는 뜻으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거주한 '경주 최부자댁'이 널리 알려져 있다. 가문의 전통을 살펴보면 권력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진사 이상의 벼슬은 금지했으며 만석 이상의 재산은 모으지 말게 했고 찾아오는 과객에게는 후한 대접을 원칙으로 정하고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못하게 유의시켰다. 또한, 며느리는 3년 동안 무명옷을 입게 했으며 집 안팎으론 100리 안에 굶어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문중에 주의를 당부했으니 진정 한민족을 대표할만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하겠다. 과거 전라북도 정읍 태인에도 경주 최부자의 행적을 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계셨는데 그가 바로 모은慕隱 박잉걸朴仍傑이다. 모은공은 1676년 태인현에 태어나 중추부사를 제수받은 태인의 갑부였다. 그는 불치의 피부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는데 노승의 도움으로 비방을 얻고 병이 나아 노승과의 약조였던 '자신보다 타인을 위한 삶'인 신조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모은 박잉은 한 예로 주민들을 위해 정읍 산내면 매죽리 오가는 길인 굴치라는 곳을 정비하였는데 버선발로 재를 넘어도 흙이 묻지 않을 정도로 납작한 돌을 수없이 놓았다고 한다. 또한, 길가에 초막을 짖고 옷과 짚신을 구비해 누구든지 옷이 얇거나 신이 헤진 사람이 있으면 이곳에서 바꾸어 가라 했으며, 매일 한 말의 밥과 반찬을 지으라 하여 어렵고 허기진 행인의 배를 불렸다. 그 외에도 모은공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선행을 베풀었는데 특히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석탄사를 중건하여 마을의 단합을 꾀했으며 태인 곳곳 덕을 베풀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일이 많았다고 전한다. 모은공의 많은 선과 덕행은 그렇게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조정에서도 그가 사망한 다음 해인 1767년(영조32) 명을 내려 태인군 남촌굴재 중간 큰 암벽에 박잉걸의 초상화와 비문을 새겨 그의 공덕을 치하했다. 또한, 전해오는 특별한 소문 중 하나는 모은공이 사망한 날, 중국 청나라 고종의 황태자가 태어났는데 6개월 동안 왼손을 주먹쥐고 펴지 않아 강제로 펴고 보니 <조선국 태인 박잉걸 환생>이라 쓰여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 같은 이야기는 과거 그의 명성을 가히 짐작할 만한 사실들이라 하겠다. 현재 모은 박잉걸이 정비했던 굴치란 길은 1971년 행정분리 개편되어 순창군으로 편입되어 있다. 그 옛날 정읍 태인지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함께 순창의 맥으로 이어진 이 고개는 이제 다른 많은 길이 생기고 인적이 끊겨 다시 험한 길이 되었지만, 역사를 품고 지켜온 전라북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체이자 근간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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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0 18:47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의  전통문화바라보기] 백범의 글

2022년의 임인년 호랑이해가 밝았다. 나라 안팎으로 코로나19라는 몹쓸 전염병이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주고 있지만, 우리 민족은 지난 승리의 역사 한 모습처럼 굳건하게 서로를 위로하며 위기를 잘 이겨내고 있다. 역사의 흐름과 교훈은 항상 반복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돌아보며 지난날의 과오와 교훈을 얻고 보다 나은 생활과 안정된 현실을 꿈꿔왔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견제, 억압과 탄압, 갖은 병마에도 언제나 우리 민족은 마음을 함께 모았으며 우리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인 아들, 딸들의 낙원을 위해 노력하고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고 쓰러진 서로를 안고 고통스럽게 아파할 때도 있었다. 순간마다 우리에게 다가온 목소리 "이겨낼 수 있어", "우리는 하나", "우린 할 수 있어", "우리니까". 역사는 또 흐르고 시대는 다시 반복한다. 모진 삶의 현실과 몹쓸 전염병은 총, 칼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고 또 다른 삶의 변종 회오리는 불안과 초조를 낳고 있지만, 과거 우리 민족이 그랬듯이 우리는 서로를 위하고 뜻을 함께하며 저마다 의지를 다질 것이다. 힘든 현실과 어려운 정국政局, 병마가 휘도는 세상 속 우리가 원하는 삶으로써의 방향은 바로 "굳은 의지"란 시작점이며 "사랑과 포용"의 변곡점이다. 백범 김구의 글이다. "어릴 때는 나보다 중요한 사람이 없고, 나이 들면 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으며, 늙고 나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 없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칭찬에 익숙하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하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에 도전하지 않으면, 내 힘으로 갈 수 없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사실 나를 넘어서야 이곳을 떠나고, 나를 이겨내야 그곳에 이른다. 갈 만큼 갔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얼마나 더 참을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것이 다 가까이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또 상처를 키울 것인지 말 것인지도 내가 결정한다. 그 사람 행동은 어쩔 수 없지만, 반응은 언제나 내 몫이다. 산고를 겪어야 새 생명이 태어나고, 꽃샘추위를 겪어야 봄이 오며, 어둠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 거칠게 말할수록 거칠어지고, 음란하게 말할수록 음란해지며, 사납게 말할수록 사나워진다. 결국,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를 다스려야 뜻을 이룬다. 모든 것은 내 자신에 달려있다." 백범의 글처럼 오래전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고 견고히 올곧게 다져진 우리 민족의 의지는 어지러운 세상을 이겼다. 모든 것은 스스로 마음에 달려있다. 힘을 내자. 그리고 하늘을 보며 가끔은 호탕하게 웃자. 주어진 현실은 어렵지만, 주먹을 쥐고 마음을 다스려보자. 이 세상이 우리를 반기며 안아줄 그 날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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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희
  • 2022.01.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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