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산(高德山/603.2m)
▶개요
호남정맥이 모래재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뻗어가며 만덕산(761.8m), 슬치, 갈미봉(539.9m), 쑥재(380m)를 지나 2km지점의 옥녀봉 근처에서 분기되어 북쪽으로 5km를 줄다름 치다가 고덕산을 솟구쳐 놓았다.
산줄기는 정상에서 전주천과 삼천천을 품으며 서쪽으로 뻗어 가면서 우측에는 완주군 신리와 전주시가지를 감싸않고 달려가며 남고산을 일구어 놓는다.
좌측에는 완주군 구이면 광곡, 평촌을 타원형으로 감싸며 산줄기를 뻗어가다가 모악산과 경각산을 사이에 두고 평야지에서 지능선을 잠재운다.
행정구역상 전북 완주군 구이면과 상관면에 경계해있고, 전주의 남쪽방향에 우뚝 솟아있다. 전주시내와 구이면 광곡과 평촌, 신리방향 등 어느 곳에서도 조망된 산이다. 육산인 듯하면서도 사면이 깍아지른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정상은 평평한 분지로 헬기장과 삼각점이 있다.
전주시민들이 문화유적의 보고인 남고산성과 남고사, 삼경사, 관성묘 등을 구경하면서 가족나들이 산행코스를 즐길 수 있다.
▶고덕산과 남고산 유래
고덕산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고대산(孤大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고덕산(高德山)' 또는 '고달산(高達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달(高達)'이란 최고에 도달한다는 뜻이어서 '높다라기'로 불리었다. '하늘높이 달아매기'란 뜻이겠으니 여기에 산(山)자를 말미에 붙여서 '높닭산'으로 줄임말이 되었다. 이 '높닭산'이 다시 '높달산'과 '높달산'은 '고달산'이 되었고, '높닥산'은 고덕산(高德山)으로 차음된 것이다.
남고산이란 개념은 남고사를 중심한 그 일대를 지칭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남고산 줄기의 주봉(主峰)인 고덕산(高德山) 기슭에서 이루어진 사적이다.
따라서 고덕산에 펼쳐졌던 문화유적을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전주권에서 남고산 만큼 자연경관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 흔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남고산의 수려한 자연경관에 배경된 역사, 인물, 유적지 등의 중요성을 고찰해보자. 전주 10경중에서 남고산을 배경으로 한 자연경관은 4경이다.
[제1경]은 한벽청연(寒碧晴煙)이며, [제2경]은 남고모종(南固暮鐘), [제3경]은 곤지망월(坤止望月), [제4경]은 남천표모(南川漂母)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쉽게도 전주10경중 [제1. 2. 4. 6. 7경]인 기린토월, 남고모종, 다가사후, 덕진채련, 위봉폭포의 풍경을을 제외하고는 도시개발과 풍속의 변화에 따라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비래방장과 경복사, 보광사, 남고사 유래
비래방장은 옛날 보덕대사(普德大師)가 고구려 반룡산(盤龍山)에서 고달산 중턱에 내려놓은 집이다.
보덕은 일찍이 고구려 반룡산 연복사(延福寺)에 주석하면서 고구려가 도교(道敎) 숭상하고, 불교를 업신여겨 오래지 않아 망할 것을 걱정하며 안전한 거쳐를 찾던중 제자 명덕(明德)의 의견에 따라, 667년(고구려 보장왕 26년) 3월3일에 전주 고달산에 옮겨졌다.
반룡산에서 천리(당시의 거리 계산)였다. 또한 제자 명덕을 따라오게 하여 비래암 동쪽 골짜기에 가서 주방자(柱방子)를 땅에 꽂으니 삼대(麻幹)같은 물이 솟아올랐다는 것이다.
현재 비래암 유지에는 암자로 섰던 고가 한채가 남아 있어 비래방장의 옛터였음을 추정케 한다. 옛날 번성했던 시절을 연상케하는 정교한 석성과 수문이 남아 있으며, 절터로 추정되는 밭에서는 기와와 고려자기 등 파편이 출토되고 있다.
현재 이지역을 璞成洞(박성동)이라 부르고 있다. '璞'자는 숨어있는 왕이란 글자가 아담한 성이 숨어있는 뜻이라 한다.
또한 경복사와 보광사 등 대사찰이 있었던 遺址(유지)로서 고려때 이규보(李奎報)가 전주목사록(全州牧司錄)겸 掌書記(장서기)로 전주에 와 있을 때 (1199-1200년) 지은 남행일월기(南行日月記)에 소상히 실려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평촌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재의 이름을 '보광재'라고 하는데 이는 보광사(普光寺)에서 유래되었다. 평촌 아래에 있는 마을을 '상척(上尺)' 하척(下尺)이라한다. 척(尺)자는 '자'라는 말로 성(城)을 뜻한다.
절을 둘러 주었던 성이란 뜻이다. 완주군지에 "경복사(景福寺)는 고달산에 있고, 고구려 보덕화상(普德和尙)이 백제말에 열반종의 근본도량으로서 절안의 비래방장(飛來方丈, 堂)에 보덕화상의 화상(畵像)이 봉안돼있고, 고려시대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이곳에 와서 보덕화상의 행장과 비래방장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였고, 지금의 구이면 평촌리에 그 유지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보광사(寶光寺)는 고덕산에 있으며, 백제시대로부터 대가람으로서 신라시대에는 10대찰중의 하나였고, 1337-1347년에 전주출신으로 당시 원(元)의 자정사(資政使)이던 고룡봉(高龍鳳)의 후원으로 굉장하게 중창되었던 사실이 고려말 이곡(李穀)의 기문(記文)에 적혀 있다"고 적혀 있다.
남고사(南固寺)는 668년(신라 문무왕 8년) 무진년에 개산조(開山祖)인 명덕화상(明德和尙)이 창건했다.
명덕화상은 열반종조 보덕대사(涅槃宗祖 報德大師)의 상제라서 보덕대사를 따라 고달산에 와서 경복사를 창건하여 열반종의 근본도장을 정하고 나서 남고사를 개창하여 산내 말사(山內 末寺)로 자격을 유지토록 했다. 남고사는 당초에 남고연국사(南高燕國寺)라 했다. 燕國(연국)은 안국(安國)이란 말로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이어서 산성사찰로 이용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뒷날에 '연국' 두 글자는 자연적으로 없어지고 남고사로서 조선조 동국여지승람을 편집할 때 까지 불리웠으니. 고달산(高達山)의 '고(高)자를 버릴 수 없었던 미련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후 남고사(南固寺)로 글자 한자가 바뀌게 된 사정은 미상하나 전주 주변에 세워진 진북사(鎭北寺), 동고사(東固寺), 서고사(西固寺) 등 전주부중의 터를 진압하고 굳힌(固)다는 뜻과 남고진(南固鎭)이란 명칭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남고산성은 효종때 신설한 중영진(中營鎭), 숙종때 신설한 위봉산성과 더불어 전주 삼진의 하나로 손꼽혔다.
1811년(순조11년) 견훤 고성지(古城址)에 따라 성을 증축하고, 남고진을 창설한 다음 임진왜란 당시 전주부의 남쪽 40리 지점인 용암리에 있었던 요새지 자리에 만마관(萬馬關)을 구축했다.
남고산성 서문지(현 남고사 입구)에는 이삼만(李三萬) 글씨인 남고진사적비가 서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전주 수성장 이정경(李廷경)의 사적등을 담아 놓고 있다.
남고진의 규모와 시설물의 위치 등은 여지도서(輿地圖書) 도면(생략)의 남고진 사례에서 다음과 같이 많은 건물이 있었음을 밝혀내게 된다.
또 하나의 유적지로는 고려 왕건에게 강화(935년)하고, 견훤의 아들 신검(神劍)은 왕건에게 패망했으니(936년), 견훤이 세운 후백제(892-936년)는 45년의 단명으로 끝났으나, 전주는 한때 후백제의 왕도였다.
견훤의 왕궁터는 동고산성으로 전하고 있는데, 후백제 패망후 그 유적은 고려에 의해 여지없이 파괴되어 형태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유일한 유적인 견훤성이다.
▶산행과 조망
고덕산은 해발 603.2m로서 정상에서 조망은 사방이 툭트여 아주 좋다. 북서쪽으로 전주와 익산시가지, 기린봉과 치명자산이 다가오고, 북쪽으로 연석산과 주줄산의 연봉, 숫마이봉, 부귀산이 보인다. 동쪽으로 만덕산과 그 너머로 덕유산과 지리산 연봉들이 연이어 있어 그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남으로는 구이 저수지와 경각산, 서쪽으로 모악산이 조망된다.
[제1코스]
임업시험장 앞-삼경사- 관성묘-우측능선-393봉-정상-삼거리-남능-임도-평촌(8.5km/3시간30분)
[제2코스]
평화동-5봉-학산-북능-정상-동능-좌측안부-어두저수지-한일신학교-신리(12km/4시간30분)
[제3코스]
좁은목-풍남정-대승사-암릉-남고산성터-삼거리-393봉-정상-1.2암봉-안부(문씨묘)북능-대성자동차학원-영동고덕아파트앞 국도(13km/5시간)
고덕산은 능선이 완만해서 가족산행에 가장 알맞은 산이다. 남고사에 휴식한 뒤 고덕산을 향하면 낮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데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한시간 쯤이면 다다른다.
고덕산에는 샘터가 없기 때문에 삼경사나 남고사, 아니면 산행전에 필히 식수를 준비해야 한다. 고덕산의 산행은 전주시내의 임업시험장 앞과, 평화동 흑석골, 좁은목의 활터인 풍남정, 그리고 대성동에서 고덕산장 방면, 구이 평촌, 신리 쌍다리와 한일장신대학, 방면이 등기점이 된다.
[제1코스]는 전주교육대학에서 남원쪽으로 조금 가다가 대로변에 있는 남고사 안내판을 따라 3m쯤 가면 충경사가 나온다. 여기에서 약수를 마시고, 관리인에게 임진왜란 때 충경공의 충정과 공훈담을 들어 보면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서 골짜기를 따라 8백여m를 올라가면 관성묘가 나오고, 왼쪽 구불진 산길을 한참 오르면 남고산성 성문이 나온다.
성문에서 오르막길을 50여m 오르면 7천평쯤 되는 분지가 나오고 윗편에 신라 문무왕 6년(664년)에 명덕화상이 창건한 남고사(南固寺)가 자리잡고 있다.
남고사에서 시계가 툭 터진 전주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보면 후백제의 천년고도 예향(禮鄕)고장을 엿 볼 수 있다. 또 산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산행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시원하게 해 준다.
또 고덕산 초입에 산자락에 자리잡은 남고사에서 노을진 석양에 들려오는 저녁종을 들으면 마음속 있에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게 된다. 정상에서의 하산길은 여러 코스가 있다.
남쪽은 구이 광곡과 평촌이고, 동쪽은 가장 먼길인 관촌 슬티재코스다. 동쪽으로는 신리의 한일신학대학코스이고, 북쪽 능선을 타고 암능을 타고 내려가면 왼쪽 대성동 영동고덕아파트 앞 국도로 빠지는 길과 신리 쌍다리 앞으로 가는 코스도 있다. 또 하나는 되돌아 오는 원점회귀 코스이다.
고덕산 산행시간은 왕복 5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정상에서 남쪽능선을 타고 호남정맥의 산줄기를 따라서 북쪽의 슬티재나, 남쪽의 경각산과 불재로 빠지면 하루종일 산행이 되며 가장 긴 코스가 된다 구이 평촌마을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고덕산의 정상이 삼각형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마을 뒷편의 임도를 따라 편하게 오르는 코스와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왼쪽의 과수원 사이로 접어들어 북능을 따라 오르면 소나무 숲속에 낙엽을 밟으며 오르면 제법 된비알을 치는 코스에서 산행의 스릴을 맛보게되며, 송전탑 아래의 주능선을 만나게 된다.
평촌에서 주능선까지 50분, 정상까지는 1시간10분이 소요된다. 또 평촌에서 마을안으로 접어들어 감나무단지 농장길을 따라 오르면 고덕산의 남쪽방향으로 오르는 길도 있다.
[제2코스] 전주에서 구이방향으로 가다가 우미아파트 건너편 현대아파트 뒤길인 제일방앗간 옆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삼거리가 있고, 오른쪽 신성리 맛나골 마을로 들어가면 저수지 아래 학소암 입구에 이른다.(12분 소요) 여기서 북쪽의 시멘트길을 10분쯤 걸어 올라가면 약수터를 지나 학소암에 이르고, 등산로는 오른쪽 돌탑이 있는 곳으로 이어진다.
7분쯤 오르면, 삼거리이다. 왼쪽은 흑석골, 또는 코오롱아파트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동남쪽으로 소나무숲과 바위지대를 8분쯤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학산이다.
휴식후 소나무숲을 13분쯤 가노라면 평촌과 전주를 이어주는 보광재 사거리인데 옛날 평촌에 보광사라는 큰사찰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으로 왼쪽은 전주시가지, 오른쪽 평촌을 바라보며 5분쯤 된비알을 치고 나면 그만그만한 봉우리를 지나서 묘가 있는 삼거리길이다.
왼쪽은 남고산성이나 임업시험장 방향에서 오르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8분쯤가면 다시 삼거리고 조그마한 봉우리 3개를 지나 15분이면 헬기장이다. 정상이 보이고 3분쯤이면, 삼거리이고 왼쪽은 고덕산장으로 빠지는 길이다.
잠시후면 오른쪽에 평촌으로 빠지는 길을 지나고, 다시 5분쯤 오르면 흉물스런 철탑이고, 잠시 평탄한 길을 지나 정상을 향해 땀을 흘리며 바위길을 오르면 헬기장과 삼각점이 잇는 정상이다.
정상에서 조망을 즐긴 후, 하산은 북쪽으로 2분쯤 내려가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20여분을 양측이 깍아지른 절벽위 능선을 내려가면 초라한 묘를 지나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호남정맥 옥녀봉 방향길이다. 왼쪽의 급경사길을 지나면 감나무, 낙엽송군락, 잡목과 덩굴이 어우러진 너덜컹지대이고, 10분이면 메말라 버린 계류를 건너면 천주교묘지이다.
내어두 마을로 들어서서 마을앞으로 내려가면 신리-구이간 도로개설로 산림이 훼손되고 있다.
잠시후, 저수지가 나오고 다시 시멘트길을 따라가면 외어두 유스호스텔 시내버스승강장에 이른다.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약1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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