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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범칼럼]연암에게서 배운다

 

뉘가 처음 한 말이었던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버튼을 누르는 동물'(push button animal)로 야유한 바 있다. 기계조작에 어두운 나는 기껏해야 텔레비전의 원격조정기에 진하지 않지만 때로 그 단추를 누르면서 이 말을 떠 올리곤 한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편리하기야 오죽 편리한 세상인가. 그러나 무엇인가 '이것만이 아닌데'의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사물의 주인이라기 보다도 사물의 일부이거나 종속물이 아닌가의 상념이 일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삶에 대한 아쉬움이 일 때면 고전을 챙겨보게 된다. 고전에는 참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삶의 의의도 발견하게 되고 스스로를 성찰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세상살이의 슬기를 배우게 된다.

 

요즘에야 뒤늦게 읽은 고전의 하나에 박종채(朴宗采)의 <과정록> (過庭錄)이 있다. 저자는 <열하일기> 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의 둘째 아들이다. 그 아버지 연암의 일생에 대한 생생한 전기적인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여운에서 되짚어 보는 낱말이 있다. <구차> (苟且)라는 한자어가 곧 그것이다. 사전적인 풀이는 '①몹시 가난하고 군색함. ②임시적으로 미봉함'을 일컫는 말이라 했다. <구차투안> (苟且偸安)이라면 '①구차하게 일시적인 안일만을 탐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연암은 뒤늦게야 벼슬길에 올랐다. 52세로 처음 평시서(平市署)에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연말의 근무성적을 평가 받는데 승진에 필요한 날짜에서 6일이 모자랐다. 인사를 담당한 전조(銓曹)에서는 날짜가 찼음을 보고토록 하여 그대로 승진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연암은 이를 거절하였다.

 

'나는 평소의 마음가짐에 <구차> 라는 두 글자를 지닌 적이 없다'는 이유였다. 연암이 평시서 주부(注簿·종6품)로 승진한 것은 해를 넘겨 다음해의 6월이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성품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후 연암은 안의(安義) 현감을 비롯하여 면천(沔川)군수, 양양(襄陽)부사등 외직을 맡은 바 있다. 하루는 그 아들 종채에게 병풍서로 <인순고식 구차미봉> (因循姑息 苟且彌縫)의 여덟자를 써서 보이며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고 한다.

 

'천하 만사가 모두 이 여덟 글자로 부터 떨어지고 무너진다'여덟 글자의 뜻은 구습을 버리지 못한채 눈앞의 안일만을 취하고, 구차하게 일시적인 그때그때의 미봉만을 꾀한다는 내용이다.

 

이 여덟 글자를 어찌 지방의 수령이나 경국(經國)의 지도자에게만 교훈이 된다고 하랴. 한 개인의 삶과 일의 경영에 있어서도 이 여덟 글자의 뜻을 새겨 좇지 않는다면 끝내는 타락과 괴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과정록> 에서는 연암의 자손에 대한 훈계도 볼 수 있다. '우리 집안은 청빈을 대대로 전해 왔다. 청빈은 바로 본분이다'고 하여 <청빈본분> (淸貧本分)을 타일렀는가 하면, 다음의 당부이기도 했다.

 

'내 비록 너희들이 따스하게 입고 배부르게 먹기를 바라지만, 부귀와 영락(榮樂)을 얻어서는 안된다. 내 바라는 것은 내 집안에서 독서하는 후손(讀書種子)이 끊어지지 않는 것일 뿐이다.'

 

요즘엔 텔레비전의 체널을 찾아 버튼을 누르다가도 불현듯 <과정록> 의 구절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때마다 원격조정기를 밀쳐 놓는다. 연암에게서 오늘을 사는 삶의 슬기를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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