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랑물 시엄치던 꾀복쟁이 친구 같은 방언들
▲ 추억을 끌어올리는 벼리 같은 어휘
어떤 어휘는 떠올리는 순간, 우리의 인식을 과거의 한 장면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생활에 묻혀 잊고 지냈던 '꾀복쟁이' 같은, 그래서 듣는 순간 꽃불 같은 추억이 되살아나는 어휘가 있다.
'깨금박질', '빠꾸매기', '둥게', '삔따먹기', '땅개비', '깨구락지', '칼시엄' 등 '탯자리, 쌈터'에서 나고 자라며 써왔던 코 묻은 말, 고단한 삶의 찌꺼기 때문에 가슴이 답답할 때, 팔을 휘두를 때마다 고개를 함께 젖혀가며 '칼시엄' 치던 그 '또랑물'을 떠올려 보라. 거기 '꾀복쟁이' 친구 같은 방언들이 망각의 강물을 거슬러 아름다운 시절을 되돌려 주리니…….
▲ 작가가 따로 없는 감각적 표현
날이 새는 순간을 보면 어둠이 빼곡한 밤하늘 어느 한 귀퉁이에서부터 하얀 기운이 피어오르다가 어느 순간 천지가 그런 기운으로 가득 찰 때가 있다.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희부윰허게'라는 어휘가 있다. 색감과 질감이 한꺼번에 담겨 듣는 순간 그렇겠다 싶은 그러나 컴퓨터 자판이 한글 입력을 거부할 정도로 낯선 이 어휘의 정체는 전북 방언 몇몇 어휘에서 접미사 '-옴/움허-'의 조어 방식으로 통해 명백히 확인된다.
포리-+-옴허다 = 포룜허다, 반들-+-옴허다 = 반도롬허다
쌉쌀-+-옴허다 = 쌉쏘롬허다, 맨들-+-옴허다 = 맨도롬허다
'포리-'는 '푸르다'와는 '작거나 옅은 어감'으로 짝을 하는 '포르-'에서 '르>리'가 변화한 다음에 여기에 '-옴'이 붙어서 보기도 민망한 '포룜헌'이란 글자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 괴상한 말 역시 '포룜헌' 색깔을 만나면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대원사 무제치기 폭포수로 모은 계곡물이 저렇듯 '포룜헌' 것은 '물이 참말로 포료오옴허다'하고 표현해 본 사람만 아는 느낌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들을 만들었을까. 포마드 말라서 반들반들한 몰골에 대고 '생긴 것은 반도롬허게 생깄는디 허는 짓은 꼭 부사리(고삐 안 꿴 망아지)맹이네잉'라든가, '어띃게 문댔는가 손잽이가 맨도로옴허드랑게'하는 등에서 싱싱하게 제 성정대로 살아 숨쉰다. 철들어서야 알게 되는 들꽃의 '작살나는' 매력만큼이나 현란한 이 표현 장치 덕분에 배웠다고 껍죽대는 치들의 자존심은 그저 '옴시래기' 담아다가 개나 줘야 할 일이다.
▲ '홍엇속맹이로' 속을 화하게 만드는 어휘
"'아이고매, 사랑잠 한 번 지대로 못 히보고 평생을 늙어 버맀으니…….' 말이 그렇지 평생을 '어심어심허니 살다 봉게' 참말로 그 꼬순내 나는 사랑잠 한 번을 지대로 못 자 보고 늙어버린 저 바람 빠진 삭신을 어찌야 쓰꺼나."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이 그냥 느끼기만 해도 좋은 말 '사랑잠'이란 말도 구이 평촌 사는 할머니한테서 들은 말이다. 소설가 최명희씨가 찾아서 꽃피운 '꽃심' 역시 '사랑잠'만큼이나 그냥 들어도 이미지가 홍어 뱃속 같이 화하게 달려드는 어휘이다.
재래시장, 들녘, 산골짜기, 갯벌 전라도 산야 어디를 가든 잠시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보시라. 전라도의 혼이 '봉울봉울' 피어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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