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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벙어리 장갑 - 조상진

이희호 여사를 가까이서 뵌 적이 있다. 2005년 1월 완주군 동상면에 있는 한농예능학교 졸업식에서다. 이날 새벽, 흰 눈이 설핏 내렸다. 전국 5대 오지(奧地)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 대안학교로 향하는 길에는 제설용 모래가 뿌려졌다.

 

조용한 산골학교가 모처럼 크게 북적였다. 30여 명이 졸업하는 이 학교에 김대중(DJ) 대통령 영부인인 이 여사를 비롯 최규호 교육감, 인재근씨(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부인), 박선숙씨(강현욱 지사부인) 등 내노라하는 내빈들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날 이 여사는 손녀뻘되는 학생들의 전통춤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뒤늦게 알려졌지만 이 여사는 학교의 보이지 않는 후원자였다. 본인의 손때 묻은 피아노를 선뜻 내주었고 컴퓨터 등 기자재도 기증한 바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여사는 관심있게 학교를 둘러 보고, 축사후 점심식사도 함께 했다.

 

행사가 끝나고 서울로 떠나려는 이 여사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지며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여사는 조근조근 대답한후 웃으며 "좋으세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DJ의 건강이 좋지 않다. 폐렴으로 연세대 병원에 입원한지 한달이 넘었다. 합병증인데다 86세(1924년생)의 고령이어서 병원이 비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그레그 전 주미대사 등 국내외 인사들의 병문안이 발길을 잇는다.

 

이런 가운데 가장 힘든 이는 이 여사가 아닐까 싶다. 간병뿐 아니라 그 많은 손님을 맞아야 하니 이만저만 고역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척에 있는 동교동 자택에서 하루도 잔 일이 없다고 한다. 특히 88세(1922년생)의 고령에도 틈틈이 뜨개질을 해 짠 벙어리 장갑과 덧신을 차가워진 남편의 손과 발에 씌워준 것이 인상적이다.

 

하긴 이 여사의 감옥 뒷수발은 유명하다. DJ가 1977년 진주교도소와 1980년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이 여사는 겨울인데도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지냈다. 또 매일 써보낸 편지가 604통에 이른다. 갈때마다 속옷과 양말까지 다림질하고 향수를 뿌려 독방에 넣어주었다.

 

그러한 지극정성이 오늘의 DJ를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DJ도 그만큼 잘 했을테고. 벙어리 장갑의 온기가 DJ의 병마를 녹였으면 한다.

 

조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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