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끝이 없다. 그들은 우리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의 하나로 전락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중국이 명나라때의 만리장성 동쪽 기점을 하북성(河北省) 산해관(山海關)보다 훨씬 더 동쪽으로 떨어진 압록강 하류의 요녕성(遼寧省) 호산(虎山)산성이라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중국이 만리장성 동쪽 기점으로 선언한 호산산성(虎山山城)은 압록강 하구 단동(丹東)부근으로 기존의 기점인 산해관(山海關)에서 직선으로 400Km가량 떨어져 있다. 이렇게 되면 만리장성 길이는 기존의 6300 Km에서 8851.8km로 약 2500Km 가량 더 늘어나게 된다.
중국의 이런 의도는 고구려가 활약했던 요동지역을 중국 역사로 편입시려려는 것이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대표적 관광 브랜드이다. 서양 관광객들도 만리장성 앞에서는 동양 문화에 대한 자기들 우월감을 접게된다. 흔히 달에서도 만리장성이 보인다고 하는것은 만리장성의 웅장함에 대한 중국식 과장법이다.
만리장성의 기원은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제(齊)나라에서 비롯되어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연(燕)나라, 조(趙)나라, 위(魏)나라, 초(楚)나라등, 여러나라가 제(齊)나라를 모방하여 국경에 장성(長城)을 구축하였다. BC 221년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자 그때까지 산만하게 구축되었던 성을 증축(增築), 재축(再築)하여 북쪽의 흉노족(匈奴族)에 대한 방어선으로 구축했다.
그 후 다시 한무제(漢武帝)는 BC 2세기만에 더 크게 장성을 연장하였다. 만리장성이 산해관(山海關)에서 자위관(自衛關)에 이르는 현재 규모를 갖게된 것은 명(明)나라 때 부터이다. 축성(築城)의 재료는 햇볕에 잘 말린 벽돌과 돌 등이다.
만리장성은 그 당시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이집트 피라미트와 같은 인공물이다. 만리장성 부역(負役)에 안 끌려 가기위해 한반도로 피신해온 사람들이 엄청났다는 야사(野史)도 있다. 만리장성은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영역을 가르는 문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제 중국은 고구려 활동무대를 좁히기 위해 만리장성의 기점을 압록강까지로 확대하는 것이다.
/장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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