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나 사회, 경제가 아니라 인간의 구체적인 삶의 양식에서 역사를 서술했던 독일의 역사가 에두아르드 푹스의 '풍속의 역사'는 역사학과 풍속학의 고전적 저작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절대주의 시대, 부르주아 시대까지 서양사를 다룬 '풍속의 역사'는 풍속사에서는 문헌보다 그림과 같은 미술작품이 더 풍부한 자료가 돼주기도 한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완간된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의 '조선풍속사'(전3권. 푸른역사 펴냄)는 명실 공히 조선판 '풍속의 역사'라 할 만하다.
이 책은 강 교수가 2001년 혜원 신윤복의 화첩인 '혜원전신첩'을 풍속의 관점으로 읽어내 출간한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에다 단원 김홍도와 기산 김준근 등이 그린 풍속화 내용을 추가해 3권 분량의 두툼한 책으로 완성한 것이다.
책의 1권은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25점의 풍속화를, 3권은 신윤복의 풍속화를, 그리고 2권은 김홍도와 신윤복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던 기산 김준근과 다른 화가들이 그린 풍속화를 서술했다.
풍속화를 읽었다고 해서 단순히 '조선시대 백성의 삶을 묘사한 작품에서 흥과 해학을 느낄 수 있다'는 감상으로 가득 찬 책으로 본다면 큰 착각이다.
저자는 기와집을 짓는 모습을 그린 그림 '기와 이기'에서 밑에서 던진 기와를 맨손으로 받아내고 흙 반죽 덩어리를 달아 올리는 모습부터 목공이 기둥의 쏠림을 점검하기 위해 한눈을 감은 모습과 목수가 대패질하는 모습까지 하나하나의 부분을 자세히 읽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림에서 보이는 대패에 지금의 대패와는 달리 좌우 손잡이 역할을 한 '대패손'을 볼 수 있다거나 목공이 기둥의 쏠림을 측정하기 위해 추로 쓰는 물건은 '먹통'이라 불리는 것으로 원래는 줄을 곧게 치는 데 쓰는 물건이라거나, 그림 오른쪽 아래에 톱이 보이는데 옛날에는 이렇게 생긴 톱만 '톱'이라 부르고 지금 흔히 보는 칼 모양의 톱은 '거도(鋸刀)'라고 불렀다는 설명 등을 덧붙인다.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시 그는 그림 오른쪽 위에 있는 사람은 이 기와집의 주인으로 머리에 사방관을 쓴 것으로 보아 양반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하고, 태종 때 서울의 크고 작은 집이 모두 띠로 지붕을 덮은 초가집이라 중국 사신이 보기에 아름답지 못하고 화재의 염려도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는 사실과 시골에서는 기와집에 사는 사람이 백에 한둘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민중적 시각도 드러낸다.
널리 알려진 김홍도의 '타작'에서도 저자는 모두가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데 혼자 시무룩한 왼쪽 위의 납작코 사내와 혼자 한가로이 누워 있는 지주를 대비해 "경작하는 사람만이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는데 양반은 경작하지 않고 땅을 차지하고 있으니 해괴하다"고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내세우며 "인류를 지금껏 살려온 농민과 농촌은 지금 어떻게 됐는가"하고 묻는다.
김홍도와 신윤복에만 관심을 둬온 지금까지의 풍속화 연구 경향에서 벗어난 2권도 주목된다.
기산 김준근의 '엿 파는 아이'에서는 엿장수의 가위가 적어도 19세기 말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하고 같은 작가의 '개백정'에서는 지금 흔히 '보신탕'이라 불리는 개장국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신윤복의 작품을 다룬 3권도 내용과 도판을 추가해 깊이를 더했다.
저자는 "나는 '그림'이 아닌 '풍속'을 읽고 싶다"며 "혜원의 그림이 달성한 미학적 성취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것이지만, 나는 '그려진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 어떤 사회적 배경하에서 그림의 제재가 됐으며 어떤 사회적 변화가 그 속에 함축돼 있는지 묻고 싶다"고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각권 432ㆍ344ㆍ288쪽. 각권 2만1천원ㆍ1만9천원ㆍ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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