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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의 명창이야기] (36)명창 박초월② - 서민정서의 대변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정신…슬픈 대목에서 최고의 광채 발휘…서민 지켜내기 위한 저항 형식 표현

박초월 복원 생가(남원 운봉) (desk@jjan.kr)

 

우리나라에 처음 무형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지고 무형문화재가 지정되던 1964년에는 판소리의 경우 무형문화재 지정의 기준이 지금과는 달랐다. 처음 무형문화재를 지정할 때는 <춘향가> 의 '광한루 나가는 데'는 김연수, '적성의 아침날'은 김소희, '신연맞이'는 김여란, '기생점고'는 박녹주, '방자 편지 가져가는 데'는 정광수, '박석고개'는 박초월 등 6명의 명창들의 소리 대목들을 모아 교합본 <춘향가> 를 만들어 보고한 뒤, 이들을 모두 판소리 보유자들로 인정했다. 그러니까 판소리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은 <춘향가> 하나였고, 보유자들은 <춘향가> 의 특정 대목 때문에 지정이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판소리는 전승 계보별로 재지정을 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판소리에서는 소위 완창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유파 혹은 바디의 개념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결과로 김소희와 김연수는 <춘향가> , 박초월과 정광수는 <수궁가> , 박록주는 <흥보가> 의 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박초월이 평생 장기로 삼았던 <춘향가> 의 '박석고개'부터 '옥중상봉'까지나 <흥보가> 의 '박타령'은 잊혀지고, 잘 부르지도 않았던 <수궁가> 만 박초월의 장기로 남았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우리나라 판소리는 부분창이 대세였다. 이 시기 판소리의 주된 공연 방식은 협률사 공연이었다. 협률사 공연이란 가설극장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서, 판소리, 기악, 무용, 창극 등 전통예술의 여러 장르를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에 걸쳐 공연하는 양식을 말한다. 협률사 공연 방식에서 판소리는 당연히 여러 장르 중의 한 부분으로만 수용되었다. 그래서 판소리를 부를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내외, 길어봤자 30분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적응하면서 판소리 소리꾼들은 어느 한 대목을 잘 익혀 부르게 되었는데, 이런 소리들을 '토막소리'라고 한다. 우리가 박초월 하면 떠올리는 '박타령'이나 '어사와 장모', '옥중상봉' 등은 바로 박초월의 협률사 공연을 통해 유명해진 '토막소리'들이다. 그러니까 박초월을 대표하는 소리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수궁가> 라기보다는 이 '토막소리'인 것이다. 박초월은 이 소리들을 통해 서민적인 소리꾼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내가 판소리 연구를 시작하던 1980년대 초에 전주 부근의 판소리 애호가들은 박초월의 소리를 최고로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초월, 김소희, 박록주는 우리나라 현대 판소리를 이끌어온 여창들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박록주와 김소희는 주로 서울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전라도에서는 박초월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박초월의 소리는 뭐니뭐니 해도 슬픈 대목에서 최고의 광채를 발휘했다. 앞에 든 대목들이 바로 그런 대목들이다. 게다가 박초월의 소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고음이다. 같이 활동했던 김소희에 비해서도 청이 훨씬 높다. 아마 고음에 있어서는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박초월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슬픔을 전력을 다해서 고음으로 노래할 때 박초월의 소리에서는 정수리를 치는 듯한 전율이 느껴지고, 소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이 때 느끼는 긴장감을 판소리에서는 '서슬'이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서슬'은 주체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여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하려 할 때 생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굴복 당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의 다짐이며 몸부림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서슬'은 절규에 가장 가깝다. 이렇게 본다면 '서슬'은 약자, 곧 서민이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박초월의 소리에 '서슬이 있다'고 하면, 이는 박초월의 소리가 약자이면서도 최소한 쉽게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담고 있다는 말이 된다. 박초월이 전라도 판소리 청중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박초월을 '서민정서의 대변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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