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객원 논설위원)
컵라면 두 개와 소주 한 병, 초코파이 몇 개를 배낭에 담고 지리산 종주에 도전했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전문 산악인이나 등산에 취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딱 한마디, 미친 놈(?)이 따로 없다는 핀잔이었을 것이다. 맞다. 등산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40km의 지리산 종주 코스에 그런 식의 무모한 도전은 아예 불가능 할 뿐 아니라 산에 대한 무례(無禮)다. 그런데 그 걸 해냈다. 비록 피아골에서 시작하여 벽소령 대피소에서 멈추긴 했지만 2박3일간 그 만용의 산행이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산행이 가능했을까. 저 지난주 목요일 당초 계획은 피아골 대피소에서 하룻밤 묵고 이튿날 노고단을 거쳐 하산하는 단순한 코스였다. 그런데 숨이 턱에 차 피아골 삼거리에 올랐을 때 노고단에서 출발해 천왕봉으로 향하는 젊은 부부와 두 남매, 멀리 청주에서 왔다는 40대 기업인 임조연씨와 그 아들을 만났다. 등산을 취미로 한지 40년이나 됐지만 아직 한번도 종주 코스를 밟아보지 못했던 터라 객기가 발동했다. 앞 뒤 안 가리고 그들과 합류했다. 아직은 체력에 자신이 있다는 믿음 탓이었다.
피아골 삼거리~임걸령~노루목~삼도봉~토끼봉~명선봉~연하봉~연하천 대피소까지 장장 9시간의 종주길은 고난이었다. 푹푹 찌는 폭염속에 소나기를 뒤집어 쓰며 걷는 산행은 그러나 힘들어도 즐겁고 행복했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나누는 정담속에는 첫 만남이지만 친절·위로·격려·인애·화합의 하모니가 가득했다. 비록 예약없이 도착한 연하천 대피소에서 잠자리를 구하지 못해 다시 벽소령 대피소까지 3시간 종주를 더 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등반객들 또한 지리산의 정취를 잊지 못할 추억으로 새김질 하는데 충분했다.
지리산은 넓고 깊고 웅장하다. 천왕봉을 비롯해 1천m가 넘는 수많은 봉우리들이 운해(雲海)를 거느리며 우뚝우뚝 솟아나 있고 온갖 화초와 무성한 숲이 태고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종주 코스 곳곳에 반달곰의 흔적을 쫓는 CCTV가 설치돼 있고 곰 출현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서 있지만 두려움보다는 반가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일행 중 임사장의 부상으로 천왕봉 등정을 포기하고 벽소령 대피소에서 하산길을 택하기 했지만 절반의 지리산 종주 성공은 내겐 더 없는 행운이었다.
이원규 시인의 시(詩)가 떠오른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충동적으로 종주길에 나섰던 지리산, 그곳에 지리산은 여전히 내 마음과 함께 있었다.
/ 김승일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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