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고 외로우면 노인 / 주변 친구 많으면 어르신 / 나잇값 못한 반성문 쓰기
난데없이 사타구니(思他救泥)·함몰자지(緘沒自志)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순수하게 우리 말 발음으로만 들으면 망칙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 아닌가. 그래서 전혀 예상치 않았던 망신살이 뻗힌 것이다. 지난 일요일 평소 함께 다니는 등산 멤버들이 학산에 오르던중 중간 쉼터에서 나온 얘기가 예의 사타구니·함몰자지다.
일행중 한 명이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요즘 폰에서 유행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점괘라면서 들려준 내용은 이렇다. 먼저 ‘사타구니’란 “항상 타인을 생각하고 진흙탕처럼 어려운 상황에 빠졌을 때 구해 주는데 힘 쓸 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선행을 베풀 수라는 것이다. ‘함몰자지’ 또한 그렇다. “자신의 깊은 뜻을 감추고 때로 굽힐 줄 아는 것은 커다란 용기”라는 뜻이란다. 한자의 뜻 풀이대로라면 그저 가볍게 웃고 넘길 개그성 농담들이었는데 장소가 문제였다. 주변에 다른 등산객들도 있었고 개중에는 나이 지긋한 중년여성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잇살이나 먹은(?) 노인네들이 지나치게 떠드는 꼴이 별로 곱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나가던 장년의 등산객이 한마디를 독하게 내뱉는다. “에이 그런 소리 그만좀 하시오. 사람들도 많은데…” 뒷 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노인네들이 점잖지 못하게시리…”했을 것이다. 순간 일행은 모두 입을 닫았다. 틀린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친구 말대로 70줄 넘어 어르신 소리 들어야 할 노인네들이 품위없이 ‘와이담’이나 주절대는 꼴을 보인 셈이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된게 아닌가. 돌아오는 길에 일행은 ‘아무리 그래도 손 아래 젊은 사람이…’라거나 ‘세상에 노인 공경이 어쩌구…’하면서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지만 나잇값 못한 반성문은 마음속에 꼼꼼히 써 둬야 했다.
어르신은 원래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옛날 말로는 춘부장(春府丈) 또는 춘당(春堂)이라고 하지만 요즘엔 노인의 높임말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꼬장꼬장 하다거나 고집불통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 노인이고 어르신이라고 하면 웬지 인자하고 점잖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노인과 어르신은 잘 가려 써야 한다는게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다. 한번 구분해 보자. 주는것 없이 받기만 좋아하면 노인이고 댓가없이 베풀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라고 한다. 더 이상 배울게 없다고 생각하면 노인이고 아직도 배울게 많다고 생각하면 어르신이란 말도 있다. 매사 간섭하기 좋아하면 노인이고 인내하며 지켜보면 어르신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노인과 어르신을 구분하는 주안점은 입과 귀다.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노인이고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면 어르신이다. 자기가 항상 옳다고 우기면서 말로써 상대를 가르치려 들면 노인이고 상대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이해하려고 애쓰면 어르신이다. 무엇보다도 노인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고 어르신은 주변에 좋은 친구를 많이 두고 활달한 모습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는 그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인생을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행복한 노인은 인생의 위대한 예술품이다. 눈에는 자비가 빛나고 입술에는 미소가 서리고 얼굴에는 지혜가 풍기고 인격에는 향기가 넘치는 노인을 보라. 그것은 곧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을 바로 어르신이라고 생각한다. 위고가 예찬한 그런 정도에 이르는 어르신이 우리 주변에는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다. 그런 사람을 헤아려 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두레박의 끈이 짧으면 깊은 샘의 물을 길을수 없고 마중물이 없으면 작두 물을 품을수 없다’고 했다. 내 스스로를 갈고 다듬어 스스로의 품격을 높이는 일에 게으르지 않아야한다. ‘지혜는 자신의 수양과 경험에서 우러나는 도덕적 자질이고 노인의 가치’라고 한 사람은 몽테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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