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2-15 17:54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김승일 칼럼
일반기사

평생을 분노속에 보낼 것인가

마음속에서 불어난 화병, 분노만으로는 못 다스려…기대되는 賢者의 판단력

▲ 객원 논설위원

화(火)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이다. 사람들은 마음의 불을 어떻게 다룰것인가. 그 근원부터 한번 찾아 올라 가보면 고대 로마의 철하자 세네카(BC 4~AD 65)에 다다른다. 그의 심화(心火)에 대한 처방은 그 울림이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2000년이란 긴 세월을 뛰어 넘어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비슷한 증상으로 우울증이라는 병증도 있다. 모든 일에 의욕이 없고 불안하거나 짜증이 난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장래 희망이 보이지 않고 죽고 싶은 생각만 든다. 이런 증상이 바로 의학계에서 흔히 진단하는 우울증이다. 어느날 잘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으로 쫓겨난 실업자, 개혁이라는 칼바람에 눌려 명예퇴직 당한 공무원, 적격심사라는 고답적 판단으로 희생된 기관 단체 종사자, 갱년기 전업주부 같은 약자층에서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젊은 직장인이나 수능시험을 코앞에 둔 고교생들, 집안에서조사 숨돌릴 틈 없이 따돌림 당하는 노인들에게도 우울증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자신의 무력감이나 심리적 변화와 함께 찾아오는 신체적 증상으로 느낄뿐 폭발력은 그리 크지 않다. 정작 참을 수 없는 것은 한방(韓方)에서 말하는 ‘울화병’이다. ‘울화증’ ‘울화통’이라고도 하는 이 병은 한마디로 화병(火病)을 말한다. 심리적인 갈등으로 몸속에 흐르는 기(氣)가 막혀 화병이 생긴다는 것이 한의학적 설명이다. 흔히 ‘기가 막힌다’든지 ‘열 받는다’ ‘울화통 터진다’는 말들ㅇ느 바로 이 화병의 초기 단계가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많은 이 화병은 인내와 절제, 양보와 관용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의 문화적 전통과 사회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웬만하면 참고 넘기려는 심리적 갈등이 우울증을 넘어 울화통을 키우고 이것이 누적되면서 화병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사실 사적이건 공적이건 사회생활을 하면서 ‘욱’하고 격하게 올라오는 경험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는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일상적 다반사에 대해 세네카는 적당히 감정을 조절하라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말라고 제안한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고 이성의 동의 없이는 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 이성으로 화를 제어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언뜻 현실적으로 동의하기 힘든 듯한 세네카의 제안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연상하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그는 역대 최악의 폭군으로 불리는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와 보좌관까지 13년간을 지내다가 끝내 네로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세네카의 철학적 이상형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현자(賢者)로 표현된다. 아무리 현자라도 눈 앞의 비열한 행동엔 화가 나지 않을까? 아슬아슬 하지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책망해야 할 일이 현자의 눈에 띄지않는 순간이 단 한순간이라도 있을까? 집을 나설때마다 그는 죄짓는 자들, 탐욕스러운 자들, 방탕아들, 파렴치한들, 그리고 그런 악덕에 편승하여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야 할 것이다”. 도처에 범죄와 악덕이 득실득실한 세상에서 그 모두에 화를 내지 않으려면 아예 처음부터 그 모두를 한꺼번에 용서해야 한다는 게 세네카의 생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을 당하고 대선도 눈앞에 닥친 요즘 우리 정가(政街)나 사회현상을 보면 그런 울화통 터질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경선을 앞둔 각 당의 대선 주자들끼리의 치고 받기는 그렇다 치자. 선거때마다 불거지는 각종 부정·비리도 도토리 키재기 식으로 거기서 거기다. 정(政)자에 근접하지도 못하는 포의(布衣)들은 그저 떡도 못얻어 먹고 굿장단이나 쳐야 할 신세다. 이래저래 한심할 뿐이다. 더군다난 저 민족과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의 처량한 신세는 무슨 말로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세네카가 볼때 ‘화’는 솔직함이 아닌 분별없음의 표현이다. 그의 책에 쓴 마지막 말이 되새길만 하다.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