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관리비만 총12조원 / 근절 안되는 아파트 비리 입주민 관심이 부정 막아
사례1: 최근 아파트 입주자대표를 맡았다가 몸을 망치고 친한 후배마저 잃어버린 김모씨(63). 광주시 북구의 모 아파트에 사는 김씨는 주변의 권유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됐다. 하지만 김씨가 회장이 된 후 친하게 지내던 전(前) 회장 박모씨(56)와 갈등이 생겼다. 박씨가 뒤늦게 선거 서류를 제 때 내지 않았다며 자신이 회장직을 계속 맡겠다고 했다. 서로 시비가 붙었고 박씨가 김씨의 멱살을 잡았다가 고소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박씨의 비리가 드러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박씨가 방수공사를 하면서 업체에서 돈을 받은 것이다. 마침내 박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대표자회의 임원들에게 시인서를 쓰는 모욕을 당했다. 그런데 박씨가 시인서를 쓰다말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더니 흉기를 들고 들어와 김씨와 감사 정모씨(60)를 마구 찔러 중상을 입혔다. 박씨는 범행후 흥분한 상태에서 차를 몰고 나갔다가 사고를 내 목숨을 잃었다.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사례2: 서울 노원구의 모 아파트 주민들은 2개의 입주자대표회의를 만들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법정다툼을 벌였다. 이 바람에 아파트 주민들은 지난해 겨울 난방도 못한채 벌벌 떨어야 했다. 이 모 회장과 정 모 회장이 서로 밀고있는 관리업체 문제로 소송을 벌이면서 아파트관리비 통장의 지급이 정지됐기 때문이다. 관리비를 통장에서 꺼내 쓰지 못하자 아파트 관리가 부실해졌고 겨울에 난방기 부품이 고장이 났는데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참다 못한 주민들이 아파트 관리업체를 쫓아내고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결국 이 아파트단지는 비상대책위까지 포함해 세개의 입주자대표회의가 다툼을 벌이며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이어가고 있다.
사례3 : 최근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관리업체 선정을 둘러싸고 입주자대표회의가 내홍을 겪었다. 회장을 비롯한 몇몇 대표들은 8년간이나 위탁관리를 해온 기존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관리를 연장하려 했고 다른 2명의 대표들은 입주자 이익을 위해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입찰을 주장했으나 다수결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주택법 시행령에 따라 입주민 10분의1 이상의 동의를 받아 완산구청에 이의민원을 제기했고 수의계약은 물건너 갔다.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전국의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를 새로 구성하거나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흑색선전이 난무하고 전·현직 회장간, 입주민간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이런 갈등은 결과적으로 고스란히 입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아파트의 예산을 다루는 실세다. 이들은 아파트 규모에 따라 1년에 3000만원~1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심의하고 관리소장을 통해 집행한다. 사실상 아파트 살림살이를 쥐락펴락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 관리업체와 관리소장, 회장간 삼각먹이사슬이 형성되고 각종 비리·부정행위가 저질러 지는 것이다. 각종 공사입찰을 둘러싼 리베이트 챙기기, 관리비·보험료 등의 횡령, 청소·소독·오물수거 등 용역 독점은 물론 장기수선충당금을 불법 전용하거나 전기·수도료 등의 과다 산정 등 입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전국적으로 연간 1만2000여건의 각종 민원과 고발이 국토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되고 있다는 당국의 발표만 봐도 비리의 사슬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입증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민의 절반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연간 관리비만 12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아파트 살림살이에 주민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너무 무책임하다. 관리비 비리는 ‘입주자 대표들이 멍청하면 관리소장이 해먹고 회장이 똑똑하게 밝히면(?) 직접 해먹는다’는 말이 있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가장 청렴한 체(?) 하면서 입발림으로 봉사를 운운하는 대표는 절대 믿을 바가 못된다. “내가 내는 관리비가 얼마나 된다고…” 하면서 뒷짐만 지지말고 입주민들이 적극 나서 감시견(監視犬 ; watch-dog)이 돼 지켜야 한다. 그래야 도둑놈들이 무서워 도둑질을 함부로 못한다. 참고로 나도 내가 사는 아파트 대표인데 제 구실을 다 못하는 것 같아 항상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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