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울들의 정확한 명칭은 다뉴세문경, 우리말로는 잔무늬거울이다. 작은 손잡이가 여러 개 달려있고 문양이 세밀하여 붙은 이름이다.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이다. 구리와 주석의 합금품이기 때문에 지금의 빛깔은 거무튀튀하지만, 제작 직후엔 은이나 놋쇠처럼 밝고 맑은 색을 냈을 것이다.
거울이 발굴된 곳은 갈동유적의 5호 무덤과 7호 무덤인데, 이 중에서 보다 밀집된 무늬를 자랑하는 5호 무덤 출토품의 지름은 14.6cm, 무게는 447g이다. 둥글고 납작한 거울의 한쪽 면은 아무런 문양이 없이 매끄러워 무언가를 비추어 보기에 적당하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개성 넘치는 문양들이 촘촘하게 자리잡고 있다. 문양이 있는 뒷면을 '경배'(鏡背)라고 한다. 단면이 반원형인 경연(鏡緣)이 거울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고, 경배의 안쪽에는 두 개의 고리가 달려있다.
경배를 장식한 문양들에 주목하자. 얇은 선으로 빽빽하게 채운 톱니무늬가 어지럽게 베풀어져 있지만, 천천히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2개의 톱니무늬가 서로 마주보며 결합하여 하나의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무늬의 조합이 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3개 구역 각각의 문양 구성은 동일하고, 다만 톱니의 날카로운 부분이 향한 방향이 다를 뿐이다. 7호 무덤 출토품은 4개의 영역으로 구별되지만, 톱니무늬의 조합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후기 청동기시대인들이 이토록 정교하게 새긴 무늬에 관한 미감과 정확하게 표현해낸 기술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그 제작기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복잡하지 않은 무늬일 때에는 돌을, 갈동 출토품과 같이 복잡한 무늬를 새길 때에는 밀랍(蜜蠟)을 소재로 삼았을 것이라고 한다. 새길 때에는 컴퍼스의 원리를 이용하여 반듯한 원을 그리고 여러 차례 구획하여 그 안을 짧은 선으로 채웠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돌에 문양을 새겨 넣는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거푸집이니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밀랍이라면 그 공정이 더 복잡하다. 우선 굳힌 밀랍으로 거울 모양을 만든다. 무늬를 꼼꼼히 새겨 넣는 것은 물론이다. 다음에는 밀랍을 점토로 두툼하게 감싼다. 이것을 불에 달구면 미리 뚫어놓은 구멍을 따라 녹은 밀랍이 흘러나오고, 남는 것은 단단하게 구워진 점토 거푸집이다. 다시 한쪽 구멍을 막고 남은 구멍으로 청동 녹인 물을 부은 후 충분히 식힌다. 이제 거푸집을 제거하고 숫돌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으면 우리 눈에 익숙한 잔무늬거울이 완성된다. 이러다보니 밀랍 주형(鑄型)은 일회용이 되며, 점토 거푸집은 거울을 꺼내는 과정에서 부서지고 만다. 잔무늬거울 중 똑같은 무늬를 가진 게 한 쌍도 없으며, 그 거푸집도 발견되지 않는 이유를 제작방법에서 찾고 있다.
청동거울은 그 시절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였고, 제작을 위해 들어가는 자원과 공력을 감안했을 때 최고의 지배자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명품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많은 연구자들은 거울을 목에 걸고 의식을 주관하는 시베리아 샤먼(주술사)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삼아 미래를 점치고 영혼을 들여다보았던 청동기시대 제사장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곤 한다. /최경환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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