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은 수십만의 인물이 참여하였다. 혁명의 정신과 가치는 그들이 흘린 땀과 피의 산물이다. 그렇지만 행적이 잘 알려지고 조명된 인물은 전봉준, 김개남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과 사실들에 주목했다.
만약 손화중의 가담이 없었더라면 고부민란으로 끝났을 동학농민혁명이었다. 손화중은 동학농민혁명의 전반을 기획하고 연출했던 인물이지만 그는 전봉준 김개남 보다 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구수내와 개갑장터의 들꽃〉의 주인공으로 손화중을 선택했으며 주변인물의 행적을 탐색하여 조명했다. 그가 활약했던 지역을 중심무대로 삼았다.
비록 소설이지만 상상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역사가가 밝혀낸 사실을 바탕에 깔고 남아있는 여백을 상상으로 매웠으며 사실이 갖는 딱딱함을 미학적 감성으로 풀었다. 손화중 외에도 홍낙관, 송문수 등 실존인물을 200여명이나 등장시켰다.
그 동안 반란으로 매도되어 숨죽여 살아 왔던 참여자와 후손들의 억눌린 숨결이 유난하게 느껴져서 되도록 많은 인물의 행적과 숨겨진 사실을 끄집어냈다. 손화중을 통해 지식인의 고뇌와 역할을 그렸다. 손화중의 휘하에서 광대의 신분으로 천민부대를 이끌었던 홍낙관을 통해서는 신분사회의 모순을 파헤쳤다. 가공인물이지만 객주 이덕만과 일본인 가와모토를 등장시켜 자본의 힘과 외세의 영향을 살폈다.
또 무장구수내 기포와 의병의 배후지로 지목되어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된 개갑장터와 석교포구를 통해 민중들의 설움과 갈등을 재현했다.
아무리 중요한 사실과 인물이라도 기록되지 않으면 전설이나 풍문이 되고 만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모여 만들어낸 혁명이지만 따로 떨어지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기에 떨어져 나간 조각을 소설의 형식으로 찾아 맞춰 동학농민혁명을 그렸다.
조선의 후기사회는 극심한 혼돈의 시기였다. 유교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치와 규범에 균열이 생겨 일어난 현상이다.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자본이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돈이 끼어들자 모든 것이 변해 너도나도 돈을 쫓았다. 요즘으로 말하면 일당독재의 시기였다. 세력의 균형이 깨져서 권세가들의 횡포와 전횡이 극에 달했다. 그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매관매직을 공공연히 자행하였다. 그들에게서 관직을 산 자들은 탐관오리가 되었다. 학정과 수탈이 조직적으로 조장된 셈이다.
또 권세가들은 외세와 결탁하여 뱃속을 채우기에 바빴고 도처에 만석꾼이 생겨났다. 어떤 자본에서도 도덕과 윤리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돈에는 무지막지함만 있을 뿐 나라와 백성은 없었다. 오로지 약육강식의 논리만 작동하여 500년이나 유지되어 왔던 신분질서마저 흔들거렸다.
결국 그 여파의 피해는 정보에 어둡고 힘이 없는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민중들의 삶은 처참했고 탈출구가 없었다. 하소연 할 곳조차도 없었지만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눈에는 아무 일도 아니었기에 원성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억누르기에 바빴다.
이때 동학의 평등사상이 백성들 사이에 퍼져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정도령의 출현으로 이씨 조선이 망할 것이라는 정감록의 예언에 모두 솔깃했다. 그 당시 동학은 기댈 곳 없는 백성들에게 큰 어깨였다. 손화중은 호남지역에서 가장 신망이 높고 세력이 큰 동학지도자다. 정감록의 예언에 맞물려 그에게 거는 기대로 동학 교인들이 모여들었다. 전설의 선운사 석불비결록 탈취를 계기로는 일반 백성들의 기대와 요구마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갔다. 한편 전봉준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재임명에 반발하여 고부민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무장현으로 숨어들었다. 여러 차례의 설득으로 손화중과 함께 무장현 구수내 마을에서 동학농민군 4000여명을 이끌고 기포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1899년의 흥덕 영학당사건에서 끝을 맺었다. 동학농민군은 관군의 힘으로 진압되지 않았다. 막강한 일본군의 전략과 전술의 힘으로 진압되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요즘을 들어다 보면 120년 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자본의 윤리와 도덕이 점점 고약해져 간다. 권세가들은 진실을 왜곡하여 민중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권세를 이용해 재산을 모은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커녕 그러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아쉬워하는 지경이다. 고부민란도 조병갑의 재임명이 도화선이다. 친일파들이 도처에 발호하며 드러내놓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균형이 점점 깨지고 있어 조선후기사회와 닮은 구석이 너무 많다. 자칫하다가는 균형을 잡으러 국민들이 나서야 할지 모를 일이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동학농민혁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며 교양도서로 선정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의 정신과 가치로 무장한 균형 잡힌 국민들이 많아져 역사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설가 이성수 씨는 고창 출신으로, 장편소설 〈꼼수〉〈혼돈의 계절〉을 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