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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섭 〈해모수 이야기〉"건국 신화, 진정성 가진 역사"

역사의 이념에는 2가지 의미가 결합돼 있습니다. 하나는 사실, 다른 하나는 기록입니다. 전자는 레오폴트의 폰 랑케의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밝히겠다는 역사가의 사명 제시로 나타납니다. 후자는 칸트의 현상계, 슐라이에르마허의 텍스트 해석학, 알튀세르의 인식의 대상처럼 기록을 통로로만 이용하고 사실로 나간다는 역사가의 사명 의식으로 나타납니다.

 

<해모수 이야기> (전남대학교출판부)는 후자의 관점에서 건국 신화를 ‘술이부작(述而不作)한 논리역사학’으로 분석했습니다. 이것은 전자의 관점 가운데 ‘극단적 고고학의 이념’과 극적으로 대비됩니다. 이 방법은 텍스트 해석학, 현상학, 계보학 등과 가깝습니다.

 

이어 여기서 과학적 방법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 역사 연구란 이야기를 통해 연속된 사건들을 검증·분석하며 종종 인과 관계를 연구합니다. 과학은 물질적 관계, 수학적 정식 그리고 경험적 확인을 필요로 하고 가설연역적 방법으로 A-E-I-O 진술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분석합니다.

 

<해모수 이야기> 는 논리적 방법과 자연과학적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 전통은 논리실증주의, 포퍼의 허위가능성 이론,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햄펠의 가설연역적 방법의 전통을 따릅니다. 진리론에서는 정합설과 대응설을 지지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신화는 적어도 3종류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신화이자 역사, 둘째 조작된 신화이면서 역사, 셋째 과장된 성공이야기로서 신화입니다.

 

첫째는 현재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14세의 경우처럼 ‘당대의 인식으로서 신화’가 있습니다.

 

둘째는 역사 속에 후대 지배자의 이익을 반영해 조작된 선조 이야기가 추가된 것입니다. 고려 왕건의 역사에 그 직계 선조이야기가 추가된 식입니다.

 

셋째는 단재선생의 풍찬노숙 독립운동의 신화처럼 대일항쟁기 독립운동 동안 단 한 번도 일제의 방향을 향해서 고개를 숙여본 적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무용담이나 그 선조를 다룬 용비어천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해모수 이야기> 는 ‘환인-환웅-단군-해모수-동명-주몽/박혁거세’의 건국 신화가 첫째의 경우인 ‘신화이면서 역사’일 수 있는 후보라고 간주합니다.

 

역사관에서 ‘사실 역사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고려 이후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양자 사이의 차이는 건국신화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극적으로 다릅니다. 건국 신화에 대한 기존의 관점으로 역사학자와 신화학자의 문제설정 혹은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학자는 건국 신화가 후대 지배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주몽의 경우 기록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증명할 수 없는 패러다임을 가정합니다. 신화학자는 ‘부여에서 흉년이 들면 왕을 갈아야 한다’는 <삼국지> 의 부여조 기록이 당대 권력의 역학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만큼 부여 왕권의 약화라는 상징 속에서 현실을 반영한다는 문제 설정을 가정합니다.

 

<해모수 이야기> 는 주어진 기록에 대해 어떤 선험적 가정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가설은 버리는 ‘오컴의 면도날(Ockham ‘s Razor)’을 선호합니다. 역사 기록은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고 믿는 자가 남긴 기억에 대한 전승입니다. 우리가 가진 기록이 실제 있었던 과거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해도 누군가 그런 내용을 믿어서 그런 기록의 역사책을 남겼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즉, 역사책을 통해 건국이야기의 기억으로서 의식적인 역사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역사책의 건국 신화는 누군가가 건국자의 신성한 건국과정을 믿고 서술한 것입니다. 우리는 건국자가 ‘자칭 신인(神人)’이라고 주장했을 때 진정성을 가지고 말했는지 사기 치는 기분으로 말했는지를 평가하고, 또 전승자가 그것을 신뢰하는 차원에서 전승하였는지 ‘허구적 거짓을 창작하는 기분’으로 전승했는지 평가해야 합니다. <해모수 이야기> 는 건국 신화에서 환인-환웅-해모수-동명-주몽 등은 진정성을 가진 신인 전승이라고 봤습니다.

 

이 책은 한국고대사의 계통을 환인의 대동사회, 환웅의 대인국, 단군의 고조선의 삼경 연맹체, 해모수의 북부여, 동명의 졸본부여, 주몽의 고구려의 계보로 이어진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걱정하는 과도한 국가주의의 해악이 발생할 여지는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 의 사료에 대한 술이부작(述而不作) 으로 해소했습니다. 식민 사학도 논리역사학을 통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빠질 수 있는 우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박병섭 씨는 전북대 철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해 전남대 강사로 근무하고 있다. 2008~2013년 캐나다 퀸즈대에서 다문화주의 등을 연구했다. 단군학회의 편집이사, 철학연구회의 감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는 <고조선을 딛고서 포스트고조선으로> (2008), <이주민과 다문화가정과 함께 하는 다문화주의 철학> (2008) 등이 있고, 역서는 <다문화주의 개론-자기언어의 정치-(윌 킴리카)> (20 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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