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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인턴] 집안에 어른이 없으면 빌려라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 나는 그저 내 삶에 난 구멍을 채우고 싶어요

 

1980년대 미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무기력증을 앓았던 시기로 전해진다. 1970년대 오일 쇼크 후유증과 일본 기업들의 급성장 등으로 인한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 ‘올리버 스톤’ 감독 영화 <월 스트리트> 는 이 시기를 탐욕의 시기라고 말한다. 금융가 ‘고든 게코’의 입을 통해 정의되는 요체는 돈이다. ‘돈은 잠들지 않아. 한쪽 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지. 질투도 심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 아침에 사라지고 없어.’

 

시대의 무력증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도 잘 나타난다. 나이 든 보안관 ‘에드 톰 벨’은 돈을 두고 살인을 서슴지 않는 젊은 광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보안관이면서 살인마 앞에 서지 못하고 계속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 배경음악도 사용하지 않고 둔탁한 음향효과로 대체하는 영화의 주 무대는 사막이다. 총 맞고 숨져가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연신 물, 물이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노인의 피부, 무기력함, 사막, 물…. 윤기 없는 경제 상황과 노인이 어쩌면 그리 잘 대비 되는지. 영화의 원제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라고 하는데, ‘아니다’를 ‘없다’로 바꾼 감독 마음도 건조해 보인다.

 

30여 년이 흘렀다. 2015년에는 <인턴> 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70세 노인이 미국 기업의 경영에 깊이 참여한다. 놀랍게도 노인의 몸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다.

 

‘벤 휘테커’(로버트 드니로 분)는 전화번호부 만드는 회사 임원을 지낸 사람이다. 정년퇴임을 하고 아내와 사별한 후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던 중 잘 나가는 신생 인터넷 쇼핑몰 회사인 ‘어바웃 더 핏’의 시니어프로그램인 ‘시니어 인턴’에 참여한다. 정장 차림의 말쑥한 노신사는 자신의 노하우를 충분히 발휘해 나이 어린 여사장의 역량을 배가시킨다.

 

30세 여사장 ‘줄스 오스틴’(앤 해서웨이 분)은 열심히 일해 200여 명이 일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체제를 전면 정비해야 할 상황이다. 가장 큰 현안은 전문 경영인 영입 건이다. 주변에서 강권하지만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그녀가 풀어야 할 난제는 이 뿐이 아니다. 잘 나가던 남편이 아내를 돕는다며 워킹아빠가 되었는데, 살림도 엉망으로 하면서 바람까지 피운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은 엄마의 빈자리를 싫어하며 공부를 마다한다. 직원 인사관리 또한 종래의 일대일 방식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벤은 줄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하나하나 조언한다.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지원하며, 있어야 할 곳과 있지 않아도 될 곳을 짚어준다. 사장과 함께 LA로 출장을 가는데, 비행기 1등 석에 앉아서도 노트북과 씨름하는 사장에게 순간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사장 집에 뛰어 들어가 남편과 아이를 직접 만나 문제와 직면한다. 회의 시간에 늦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장을 태우고 지름길로 달려가 시간을 맞춰낸다. 그 길을 몰랐더라면…? 지름길은 연륜의 은유이지 싶다.

 

UCLA대학의 일본인 학자 ‘윌리엄 오우치’는 Z이론을 고안했다. 종신 고용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경제는 70년대 이후 눈부시게 성장했는데, 중심에 있는 일본기업이 취한 경영방식을 미국기업이 강조하는 개인 책임과 결합한 이론이다. 일본기업이 강조하는 집단적 의사 결정, 장기적 평가와 승진, 종업원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을 결합해 포드, 지엠, 인텔 등이 성공을 이뤘다고 전해진다.

 

우리사회 시스템과 어르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반퇴(半退)시대(퇴직하고도 은퇴하지 못하고 일을 계속하는 시대)란 말과 더불어. 이분들 과연 어디에 서야 할까. 우리 영화 <잉투기> 의 말대로 계속 싸우게(ING + 鬪)해야 할까? 상대도 목적도 분명하지 않은 싸움을 자행하는 이들을 가리켜 영화는 잉여라 부른다. 그리스에 ‘집안에 노인이 없으면 빌려라’라는 격언이 있다고 한다. 지식 못지않게 지혜를 강조하는 말로 들린다.

 

시사회에 나온 ‘로버트 드니로’의 주름이 깊다. “내 나이에 주연은 어려워요.”라고 말하던 그다. 캐릭터에 취하다 보니 주인공이 미소년처럼 보인다. 그는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노인들을 청년으로 만들었다. 올해 초 뉴욕예술대학 졸업식에서 그는 이렇게 연설한 바 있다. ‘여러분은 이제 졸업을 하고, 맞춤 티셔츠를 입게 될 것입니다. 뒷면에 거절이라는 단어가 적힌 티셔츠를…. 하지만 그 티셔츠 앞에는 다음(Next)이라는 말이 적혀있습니다. 원하는 배역을 얻지 못했다고요? 다음, 다음, 그래도 안 되면요? 그래도 다음입니다. 잊지 마세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 나이 든 보안관 에드는 꿈 이야기를 한다. 꿈에서 아버지가 나타나 춥고 눈 쌓인 길을 자기를 지나쳐 달리더니 저 멀리서 불을 지피고 있더라’라고. 춥고 눈 쌓인 길은 험난한 세상을, 불 피운 저 곳은 아버지가 먼저 가신 곳을 뜻하는 것이려니 싶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어요.” “나는 그저 내 삶에 난 구멍을 채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그 구멍의 크기가 어떻든 채우는 시도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시대 이 땅에서 시니어 인턴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 어르신들 몸에서 윤기 흐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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