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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5 to 7]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소중히 여길게요

인생이란 매 순간의 모음입니다. 그러니 가능한 한 무엇이든 많이 모아야 해요.

 

미국 뉴욕을 가장 잘 표현하는 글은 책이나 영화, 연극에서가 아니라 센트럴 파크 벤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일정액을 공원 측에 기부하면 원하는 글을 벤치에 써 붙이도록 해 주는 프로그램 때문이다. 그곳에는 미래·사랑·추억 등에 관한 글이 많이 게시된다고 한다. ‘루드와 테드 50년째 연애 중’, ‘매일 당신을 기억해요’, ‘전쟁영웅·복싱협회 회장 머리부터 발끝까지 뉴요커’ 이런 식으로 등받이에 새기는 것이다.

 

「5 to 7」이란 영화가 여기 적힌 글에 천착한다. ‘모든 삶에는 엄청난 사건이 있어요’라며. 영화는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소중하게 여길게요’라는 글을 클로즈업하며 사연의 주인을 찾아간다.

 

암호 같기도 하고 게임 같기도 한 영화 제목 「5 to 7」은 시간을 가리키는 숫자다. 5시에서 7시까지 2시간을 뜻한다. 영화는 프랑스에서는 배우자가 있어도 이 시간만큼은 간섭 없이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다.

 

33살 파리 여인 ‘아리엘’(베레니스 말로에 분)은 영사관에 근무하는 남편 따라 뉴욕에 왔는데 하루하루가 낯설고 외롭다. 유일한 취미는 길가에 서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사람을 구경하는 일이다. 24살 뉴요커 작가지망생 ‘브라이언’(안톤 옐친 분)은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는 편지를 받아 방벽에 붙이는 게 일이다. 언젠가는 ‘크로퍼드 도일’ 서점에 자기 책이 전시될 것이라는 꿈을 가지고 산다.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난다. 담배 피우는 자리에서다. 여인은 남자가 시간의 주인공임을 직감하고 눈을 떼지 않는다. 힘차게 빨아들이면 찌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담뱃불처럼 둘은 순식간에 불덩이가 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들이 사랑을 나누면 불륜이 되는 것이다. 아리엘은 두 아이의 사진까지 보여주고 남편도 정부가 있다며 허락된 시간에만 사랑을 나누자고 제안한다.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브라이언은 3주간을 고심하다 다시 나타난다. 아리엘이 아른거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 아리엘은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볼 줄도 알아야 한다며 호텔 방 키를 건네준다. 하루 또 하루, 두 시간짜리 데이트가 이어진다. 어느 때는 방, 어느 때는 센트럴 파크, 구겐하임 미술관, 쉐리-르만 와인샵 등에서 불을 지핀다.

 

이들에게 사달이 난 것은 브라이언이 반지를 사면서 부터다. 청혼하기 위해서다. 여인은 고민해 보겠다며 돌아가고 얼마 후에 그의 남편이 나타난다. “확실하고, 명예롭고, 합의된 경계가 있다고요.” 규칙을 지켜달라는 이야기다. 요지부동인 브라이언. 남편은 수표(25만 달러)를 건네주며 말한다. “아리엘을 부탁해요.”

 

그러나 아리엘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인생이란 매 순간의 모음입니다. 그러니 가능한 한 무엇이든 많이 모아야 해요. 내 윤리를 존중받으려면 당신 윤리를 존중해야 하겠지요. 남편과 나는 결혼 전에 센트럴파크 벤치에서 언약했어요.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소중하게 여길게요 라고요.’ 편지를 보며 브라이언이 흐느낀다.

 

세월이 흘러 브라이언도 결혼한다. 아이도 태어난다. 그토록 원하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작품명은 <인어> 다. 디즈니 영화 「인어공주」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 아리엘…. 서점 진열대에 선 그의 눈에서 광채가 난다. 독백이 이어진다. ‘그녀는 나를 남자로 만들었고, 작가로 만들었다. 언제 또 그녀를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옳았다. 추억이 영원하지 않다고 해서 그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추억을 믿기로 했다.’

 

남의 여자의 남자, 남의 남자의 아내…. 독약 같은 사랑으로 일본 열도를 울렸던 영화 「실락원」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는데, 그 깊은 사랑이 불륜밖에 안 되네요.” 사랑이 식으면 여자는 옛날로 돌아가고,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간다는데 정녕 그런가.

 

영화 「파니 핑크」에 이런 대사가 있다. “미래가 네 앞에 있어. 과거와 미래가 함께하면서 가끔 너랑 대화할 거야. 좀 쉬라고. 휴식을 취하라고. 하지만 그 말 듣지 마. 그리고 시계는 차지 마. 항상 몇 시인지만 알리려 하니까. 항상 지금이라는 시간만 가져!”

 

시간, 사랑, 추억을 문장 하나에 묶어놓고 합성하려 드는 이 영화, 욕심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확실한 게 있다. 이들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소중함을 간직하고 싶다면, 과정에 여백을 남기라는 것이다. 아리엘의 두 시간처럼 말이다.

 

사랑의 여백을 논함에 있어 한 가지 참고할 게 있다. 1994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연구결과에 의하면 여자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에서 슬픔을 알아차리는데 90%의 성공률을 보였다고 한다. 반면에 남자는 같은 남자의 얼굴에서 슬픔을 읽는데 90%의 성공률을 보인 반면, 여자의 슬픈 표정은 70%밖에 읽어내지 못했다. 남자는 여자보다 경쟁 상대인 남자의 얼굴에 더 큰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 전북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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