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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우리가 재조명해야 할 역사 속 독립투사

▲ 3·1절을 맞아 전주신흥고등학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만세운동을 재연하며 독립정신을 함양하고 있다. 전북일보 자료사진

■ 주제 다가서기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5월이 가족 구성원들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며 이를 서로 표현하는 가정의 달이었다면, 6월은 확대된 범위의 가족과 가정 즉 국가를 생각하는 달이라고 볼 수 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본인의 목숨마저 아깝게 여기지 않았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일은 시대에 따라 형식과 절차가 변화할 뿐 존재의 근거는 여전히 중요하다. 이번 주에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독립투사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 주제 관련 신문기사

 

△ 한국일보 2016년 2월 29일 ‘이화학당 3·1운동 열정 뒤엔 그녀가 있었다’

 

△ 전남일보 2016년 2월 15일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

 

△ 조선일보 2016년 2월 3일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志士, 공군 임명장 복원

 

■ 신문 읽기

 

〈읽기 자료 1〉

 

이화학당 3·1운동 뒤엔 그녀가 있었다

 

여성 독립운동가 하란사(본명 김란사, 1872~1919)는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독립운동가’하면 총칼을 들고 일제에 맞서 싸우거나 옥고를 치른 인물을 떠올리기 쉬운 탓에 여성 독립운동가 역시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는 정도다. 하지만 하란사는 유관순 열사의 스승으로 3·1운동을 태동시킨 주역이었다. 고종이 1919년 파리국제강화회의에 파견할 밀사로 점찍는 등 독립의 숨은 공로자였으나 후손조차 그의 활약을 뒤늦게 알 만큼 잊혀 왔다.

 

구한말 평양에서 태어난 하란사(남편 성을 따름)는 일찌감치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스물한 살에 결혼한 뒤 이화학당의 문을 두드린 신여성이었다. 그러나 기혼자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하자 외국인 교장을 찾아가 등잔불을 끄고 “내 인생은 한밤중처럼 어둡다. 학문의 빛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설득해 기어이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졸업 후에는 미국 웨슬리안대로 유학해 한국 여성 최초로 문학사 학위를 따기도 했다.

 

그는 귀국 후 여성이 주도하는 비폭력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이화학당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 자치단체인 ‘이문회’를 이끌며 암울한 민족의 현실과 세계 정세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유관순 열사도 그 중 하나였다. 제자였던 유 열사에게 이문회 가입을 권유한 뒤 ‘조선을 밝히는 등불이 돼 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2011년 ‘최초의 여학사, 하란사의 생애와 활동’이라는 논문을 쓴 고혜령 전 국사편찬위원회 편사부장은 “이화학당 학생들이 3·1만세 운동을 주도한 데에는 하란사의 영향이 컸다”고 평가했다.

 

실패로 끝난 파리강화회의 밀사 파견 계획은 독립운동가 하란사의 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후세대가 그를 외면해 온 이유로 꼽힌다. 고종은 그가 유학 당시 의친왕과 웨슬리안대를 함께 다닌 인연을 알고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할 밀사로 선발했다. 자금으로 쓰라며 궁중 패물까지 손수 쥐어 줬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1919년 1월 고종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후 하란사는 그해 4월 중국 베이징에서 한 교민의 환영 만찬에 참석했다가 음식을 먹고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시신이 검게 변해 있었다”는 장례식 참석 선교사의 증언,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였던 배정자가 살해했다는 이야기 등 여러 독살설이 전해질 뿐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하란사가 무장투쟁을 하지 않았고, 뚜렷한 족적이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라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략〉

 

〈읽기 자료 2〉

 

안중근 의사와 어머니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식민지회를 주도한 원흉으로 꼽히는 이토 히로부미 일본 초대 내각총리 대신을 권총으로 사살하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일본 관헌에 넘겨진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직접 지은 수의와 함께 편지 한통을 보냈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네가 늙은 어미 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의연히 목숨을 버리거라. 너의 목숨은 너 한사람의 것이 아니다.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너의 의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리.”

 

편지글을 본 일본인조차 ‘시모시자(是母是子)’라는 표현으로 이들을 칭송했다고 한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일본 현병들이 몰려와 자식교육을 잘못시켜 두 나라에 큰 변란이 일어났다고 윽박질렀을 때도 두려움이나 주저함은 없었다. 조마리아 여사는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나 나라의 일로 죽는 것은 국민 된 의무다. 내 아들이 나라를 위해 죽는다면 나 역시 아들을 따라 죽을 따름이다”며 당당히 항변했다고 한다.

 

본명은 조성녀로 천주교 세례명을 쓰던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의 처형 후에도 중국 상하이에서 당시 임시정부 인사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면서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불렸다. 황해도 해주의 덕망 있는 부잣집 현감의 며느리이자 진사 태훈의 아내였던 그는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26년에는 직접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또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창립총회에서 안창호, 조상섭 등과 함께 정위원으로 선출돼 활동했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 속에서도 독립운동가의 어머니였을 뿐 아니라 스스로 독립운동가 이길 자처한 의연함과 강인함에 숙연해지는 2월이다.〈출처 : 전남일보 2016년 2월 15일〉

 

〈읽기 자료 3〉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임명장 복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였던 권기옥(1901~1988) 애국지사의 활동을 입증하는 주요 기록물들이 복원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2일 권 지사가 중국 항공학교에서 받았던 필업증서(졸업장)와 중국 국민정부군 공군 임명장, 한국 국군 수첩 등 관련 기록물 7건(24매)을 복원했다고 밝혔다.

 

권 지사는 독립운동과 한국 공군 창설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1901년 평양에서 태어나 숭의여고 재학 중이던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평남도청 폭파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쫓기던 1920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항저우에서 미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여학교를 졸업한 건 지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추천을 받아 1923년 4월 중국 윈난 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했다. 1925년 2월 졸업하면서 한국여성으로는 첫 비행사가 됐다.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 나라를 되찾겠다”는 뜻을 품었던 권 지사는 1926년부터 10여 년간 중국 공군으로 활약하면서 일본군을 공격하는 등 7000여 시간을 비행했다.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충칭에 있는 국민정부 육군참모학교 교관으로 임명됐다.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오자 한국 애국부인회를 재건했다. 1945년 3월엔 한국광복군 비행대 편성과 공습 작전 계획을 임시정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하면서 실행하지 못했다.

 

권 지사는 1948년 귀국 후 국방위 전문위원을 맡아 한국 공군 창설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권 지사의 남편은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인 이상정이다. 이상정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지은 민족시인 이상화의 형이다.〈출처 : 조선일보 2016. 2. 3.〉

 

■ 생각 열기

 

기본활동 1) 〈읽기자료 1〉을 읽고, 하란사가 이화학당 입학을 거부당한 이유를 찾아 쓰시오.

 

기본활동 2) 〈읽기자료 1〉을 읽고 ‘이문회’에 대해 설명하시오.

 

기본활동 3) 〈읽기자료 2〉를 읽고,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이유를 찾아 쓰시오.

 

기본활동 4) 〈읽기자료 2〉를 읽고, 조마리아 여사의 독립운동 활동 내용을 찾아 쓰시오.

 

기본활동 5) 〈읽기자료 3〉을 읽고, 복원된 권기옥 지사의 애국활동 입증 자료를 찾아 쓰시오.

 

■ 심화활동

 

△ 〈읽기 자료2〉에서 안중근과 조마리아를 시모시자(是母是子)라고 표현한 이유를 쓰고, 일본인들이 이를 높이 평가한 까닭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200자 내외로 서술해보자.

 

△ 역사는 ‘영웅’만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역사 속에 기억되는 인물들은 극적인 삶을 살다간 걸출한 영웅호걸이 대다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애국심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이런 소박한(?) 애국심을 보인 다수 민중은 역사에 기록될 수 없다. 알 수 없고, 알려질 수 없는 이들의 숭고한 애국심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200자 내외로 서술해보자.

 

■ 생각 더하기

 

△ 세계는 점차 국가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과거 국가는 자신이 선택하기보다는 숙명적인 선택받음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다문화 사회, 글로벌 사회가 되면서 이제 국가는 언제라도 선택 가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때에 애국심을 강조하고, 호국보훈 의식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부족해 보인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각 영역에서 국경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국가를 강조하는 애국정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400자 내외로 정리하시오.

 

△ 애국자는 개인의 삶만 놓고 봤을 때 행복하기보다는 불행한 삶을 산 경우가 많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시킨 애국지사를 그래서 우리는 존경하고, 기리고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의 삶은 공동체 속에 파편화되기보다 개개인의 권리를 찾고 행복을 추구하려는 개인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개인의 행복과 사회정의실현 혹은 정의구현이라는 가치 갈등 사이의 답은 고정불변의 것일까?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4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 생각키우기

 

△ 호국보훈 기념일

■ 참고자료

 

△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정운현 지음/ 인문서원/ 2016.3.

 

‘대갓집 마님에서 신여성까지, 일제와 맞서 싸운 24인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이 책은 유관순 열사 이외에 수많은 여성이 남성 못지않게 헌신적으로 평생을 바쳐 투쟁했음을 일깨워준다. 신채호 선생의 아내였던 박자혜,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임신한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엘리트 ‘신여성’ 출신 항일투사 김마리아 등 24명의 일대기가 담겼다.

 

△ 동주

 

개요 : 드라마, 한국, 110분, 2016.02.17 개봉

 

감독 : 이준익

 

출연 : 강하늘(윤동주) 박정민(송몽규) 김인우(고등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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