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사(南史)에 보면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관리가 정년퇴직을 대비하여 자신이 노후에 살 집을 보러 다니다가 1100만금을 주고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하게 되었다.
100만금 밖에 안 되는 그 집값을 1100만금이나 주고 샀다는 말에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물었다. 송계아는 대답하기를 “100만금은 매택(집값)이요, 1000만금은 매린(이웃 값)이라”고 하였다. 좋은 집을 구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이웃을 구하려고 1000만금의 프리미엄을 지불한 것이다.
좋은 이웃과 함께 살려고 집값의 10배를 더 지불한 송계아에게 여승진은 감동하여 이미 설치된 담을 헐어 버리고 형제간 이상으로 사이좋게 평생을 함께 하였다. 예로부터 좋은 이웃과 좋은 친구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것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향교(옛날 학교)가 있는 동네와 고결한 선비가 사는 이웃은 집값이 유달리 비싼 것이었다.
품격이 있고 격조가 있는 명사들은 가급적이면 고관대작들이나 부호들이 사는 근처는 멀리했다. 어린 청소년들이 그들의 행동거지를 보고 자신과 비유하면서 열등감에 빠져 인생의 낙오자가 될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적인 민족이기에 으레 마을을 이루고 집단으로 살면서 이웃에 애·경사가 있을 경우에는 남녀노소가 자기의 일을 접고 그 집에 가서 끝날 때까지 완수할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무남독녀의 딸 하나를 시집보내게 되면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까 싶어서 그 댁에 가서 함께 잠을 자면서 위로를 했다.
부모님의 상을 당할 경우에도 허탈한 상주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하여 안정을 찾을 때까지 저녁마다 잠을 함께 자주곤 했다.
광복 후에 산업화 사회로 바뀌면서 인심은 180도로 바뀌어 이웃사촌이 아니라 원수가 되는 예가 있다. 이를테면 도시의 경우 APT는 층간 소음, 주차관계로 시비가 되어 극단의 행동까지 야기되는가 하면 농·어촌에서는 마을 이장선거로 파가 갈리게 되는데 이장파와 비이장파 그리고 구이장파 등 두 세파로 찢어져서 그 이장 임기 동안은 물론 평생 같은 마을에 살면서 조석으로 만나지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원수같이 살고 있으니 피차간에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지난 80년대에는 ‘반상회’가 있었다. 정부의 권유로 만들어진 ‘반상회’는 한 달에 한차례씩 모여서 반민들의 숙원사업을 건의하고, 국정의 홍보한 것이라지만 반민간의 친화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집단촌을 이루고 살자면 상대방으로 인하여 불편한 것이 없지 않지만 모든 것을 법부터 머리에 떠올리지 말고, 법 이전에 도덕적인 것부터 생각하여 참고 인내하면서 이웃을 원수가 아닌 사촌보다도 더욱 가깝게 살아야 본인의 마음이 평안할 것이다.
갈수록 황폐화돼가는 요즘의 세태에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며 사는 것은 나로부터 비롯됨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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