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계백이 소리쳤다.
“서둘러라!”
서문 앞까지 밀어닥친 백제군에 밀린 신라군이 열려진 성문 밖으로 나간 것이다. 백제군을 앞뒤에서 협공한다는 말이 신라군에게 먹히기도 했다. 성문에 달라붙은 백제군이 성문을 닫았다. 요란한 소음이 울리면서 통나무 빗장까지 채워지자 그때서야 성문을 탈취한 실감이 났다.
“빼앗았다!”
장덕 안준이 칼을 치켜들고 소리치자 백제군이 함성을 질렀다.
“우왓!”
전장이 된 서문 안은 사상자가 즐비했고 아직도 이쪽저쪽에서는 칼 부딪치는 소리와 신음이 울렸다. 백제군 사상자도 수백명이 된다.
“안쪽을 지켜라!”
안준이 소리치며 지휘했다. 그때 계백이 화살 끝에 기름을 먹인 헝겊을 매달고는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북문 쪽 하늘을 향해 시위를 한껏 당겼다가 놓았다. 협반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리고는 계백이 소리쳤다.
“자, 가자!”
내성으로 잠입하려는 것이다.
“북문은 백제군한테 빼앗겼습니다!”
부장 김용하가 소리쳐 보고했는데 머리칼과 옷자락이 불에 타 그을렸다.
“백제군이 열린 성문으로 진입해와서 이미 진을 치고 있소!”
“이, 이런.”
당황한 김품석이 벌떡 일어섰다. 내성의 청에서도 북문 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인다. 어둠에 덮인 청 안팎은 어수선했다. 북문으로 달려간 무장들이 뛰어 들어왔고 일부는 뛰어 나간다. 이미 군사 배치는 끝냈지만 상황은 수시로 변하고 있다. 그때 김품석이 소리쳤다.
“북문을 빼앗아라! 보군 5천을 그쪽으로 보내고 대아찬 그대가 지휘하라!”
“예, 군주. 일길찬 한천과 사찬 박기문이 거느리고 있는 2개 부대가 그쪽에서 가깝습니다!”
“그대가 이끌고 가라!”
명을 받은 김용하가 한천과 박기문을 데리고 황급히 청을 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성문을 빼앗겼단 말인가?”
분한 표정이 된 김품석이 어깨를 부풀리면서 소리쳤다.
“성문 수비군은 자빠져 자고 있었단 말이냐!”
둘러선 무장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북문의 불길을 뚫고 온 수비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제군이 안에서 친 것을 모른다.
“군주, 백제 후속군이 있는지 정찰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장 하나가 묻자 김품석이 머리를 저으며 화를 내었다.
“밤이 깊어가는데 성 밖으로 정찰대를 보내란 말이냐? 정찰대를 보내려면 성문을 열어야 하는데 성 밖에서 백제군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김품석의 전장 경험이 없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둘러선 무장들은 대부분 전장을 겪은 터라 이런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김품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 내실에 들어가 있을테니까 전령이 오면 연락을 해라.”
무장들이 허리를 굽혀 김품석을 배웅했다. 김품석이 청을 나가자 주위가 어수선해졌다. 무장들이 둘씩 셋씩 모여서 두런거렸는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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