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어떻게 죽었느냐?”
김춘추가 묻자 무관이 엎드렸다.
“백제 장수 계백이 베었다고 합니다.”
무관은 15품 대오 벼슬의 하급 무장으로 가야성 내궁 경비를 맡았다가 성이 함락되자 성벽을 넘어 탈출했다는 것이다. 성이 함락되거나 아군이 참패했을 때, 특히 궤멸 상태가 되었을 때 현장 보고를 받기는 어렵다. 그것은 보고를 다 듣고 나서 ‘너는 왜 도망쳤느냐’는 심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춘추는 대야성이 함락된 지 엿새 후에야 지금 보고를 받고 있다. 동경성(東京城) 안 김춘추의 저택은 웅장하다. 청 아래쪽의 마당은 넓어서 마술 시합을 할 수도 있다. 청의 기둥 옆에 선 김춘추가 무관을 내려다보았다. 주위에 둘러선 가솔, 이찬 김춘추를 만나러 온 문무관원들까지 수십 명이 숨을 죽이고 있다. 그 때 김춘추의 목소리가 마당으로 울렸다.
“계백이라고?”
“예,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무관이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김춘추를 보았다.
“백제 나솔 계백이 대야군주 김품석을 베었다라고 외침이 일어났습니다.”
“…….”
“저는 분이 나서 내성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지만 백제군 수천 명이 진입한 상황이었습니다.”
“…….”
“그래도 칼을 들고 싸웠다가 곧 성주의 목이 창끝에 꿰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
“그래서 죽기보다 보고를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내궁 마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김춘추의 목소리가 바짝 마른 느낌이 들었다. 다시 마당과 청에는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그 때 무관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춘추를 올려다보았다.
“뒤늦게 도망쳐 나온 군사들한테서 들었습니다만 내궁 마님은 칼로 가슴을 찔러 자결하셨다고 합니다.”
“…….”
“내궁을 점령한 계백이 마님의 목까지 베고 내궁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으음.”
김춘추가 갑자기 기둥에 어깨를 붙이면서 신음을 했다. 놀란 집사가 그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가 멈췄다.
“이놈들.”
김춘추가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앞쪽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이 한(恨)을 꼭 풀 것이다.”
그러더니 기둥에 등을 붙이고 서서 손을 저었다.
“모두 물러가라.”
그 때 마당 뒤쪽 문 앞에서 말굽소리가 들리더니 곧 서너 명의 무장이 들어섰다. 햇볕을 받은 갑옷이 번쩍였다. 앞장 선 무장은 김유신이다. 김유신의 어깨와 머리에도 먼지가 내려 앉아있다. 달려온 증거다.
“대감, 들으셨습니까?”
청에 선 김춘추를 보자 김유신이 소리쳐 묻는다. 마당에 서 있던 가솔, 관리들이 황급히 좌우로 갈라서서 길을 터준다. 김춘추가 눈의 초점을 잡고 김유신을 보더니 주르르 눈물을 쏟았다.
“그렇소, 방금 듣고 있었소.”
“모두 내 불찰입니다.”
청 앞에 선 김유신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춘추를 보았다.
“의자의 간계에 속았기 때문이오!”
김유신의 목소리가 마당과 청을 울렸다. 이때 김유신은 49세, 김춘추는 43세이니 장년이다. 김춘추가 손등으로 눈물을 닦더니 기둥에서 등을 떼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김춘추가 휘청거리다가 김유신에게 말했다.
“대감, 들어오시오. 상의 드릴일이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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