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앗! 부선(副船)이 넘어가오!”
부사 김문생이 소리쳤지만, 김춘추는 숨을 죽인 채 대선(大船)인 부선이 화염에 휩싸인 채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았다. 백제 전함은 화전뿐만이 아니라 포차까지 싣고 있어서 날아온 어른 머리통만 한 돌덩이들이 배를 부쉈기 때문이다. 공격을 받은 지 한식경밖에 지나지 않았다. 백제 전선(戰船) 2척은 교활한 범이었다. 5백보 거리에서 더이상 좁혀 오지 않은채 화전과 돌덩이를 날려 불을 지른 배를 가차 없이 부쉈다. 이쪽은 궁수가 대기하고 있었지만 속수무책이다. 김춘추가 탑승한 정선(正船)이 기를 쓰고 백제선에 접근했지만, 그쪽은 대선에도 노가 12개나 있어서 이쪽을 가볍게 떼어놓았다. 발을 굴렀지만 맨 처음에 병사들을 태운 중선(中船)이 먼저 침몰했고 이어서 쾌선 2척이 차례로 부서지더니 바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서 대선 중 한척인 부선(副船)이 침몰한 것이다. 부선에는 정사(正使)와 부사(副使)를 제외한 사신단 관리들이 다 타고 있었다.
“대감!”
다급해진 김문생이 김춘추를 불렀다.
“놈들이 다가옵니다!”
김문생의 얼굴이 누렇게 굳어져 있다. 배 안은 금방 공포 분위기에 휩싸였다. 부선은 2백보쯤 앞에서 옆으로 잔뜩 기운 채 불덩이가 되어있다. 바다 위에는 뛰어내린 수군, 병사, 관리들이 가득차 있었지만, 이쪽은 구해낼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 김춘추는 2척의 백제 전함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거리가 처음으로 4백보 정도까지 좁혀졌다. 지금까지 김춘추가 탄 정사선(正使船), 즉 정선은 단 한대의 화살도 맞지 않았다. 백제선은 다른 4척만 공격했던 것이다.
“대감!”
김문생이 다시 소리쳐 불렀을 때 김춘추가 머리를 돌려 노려보았다.
“잡찬,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에?”
“너도 3품 고관이며 부사 아닌가? 이때 어떻게 하는 것이 낫겠는가?”
“대감, 그, 그것은….”
“말해보라!”
이제 김춘추 옆으로 김인문과 유해성, 경호장 김배선까지 모여들었다. 그때 백제 대선 2척은 2백보 거리까지 다가왔다. 이쪽에서 활을 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도 대적하려고 하지 않는다.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는 상황이다. 모두 김춘추와 김문생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다. 김춘추의 시선이 경호장 김배선에게 옮겨졌다.
“경호장, 배에 군사가 얼마 남았느냐?”
“예, 50여명입니다.”
“백제선은?”
“예, 1백인은 넘을 것이오.”
“네 의견을 듣자, 싸워야겠느냐?”
“모,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니! 이놈!”
“소인은 싸우라면 싸웁니다!”
그때 화전 하나가 날아왔다. 가까운 거리여서 배에서 외침 소리가 나자마자 화전이 돛대 옆에 박히면서 기름이 사방으로 번졌다. 김춘추는 숨을 들이켰다. 백제군은 화전에 불을 붙이지 않고 기름만 매달고 쏜 것이다. 시위를 했다. 그때 백제 대선 한척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앞쪽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선미에서 외치는 소리가 울렸다.
“신라선은 멈춰라! 불에 태워 수장시키기 전에 멈추는 것이 나을 것이다!”
목소리가 커서 배 안의 신라인은 다 들었다. 다시 백제인이 외쳤다.
“신라 사신선(使臣船)의 정사(正使)에게 말한다! 개죽음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돛을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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