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읍면 단위까지 설치된 집강소 중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김제 금산면 소재의 원평집강소 건물이다. 이 건물이 집강소로 사용된 뒤 오늘의 모습으로 있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이 건물은 혁명이 일어나기 12년 전인 1882년 건립됐으며, 혁명 이후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30년대 원불교에서 활용했다. 1950년대 이후 개인 소유 건물로 남아 한동안 폐가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혁명 2주갑을 맞아 보존대책 촉구에 나서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문화재청이 원평집강소의 가치를 인정해 매입을 결정하고 2015년 4칸의 초가로 복원했다.
집강소 건물이 감동을 주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천것 취급을 받던 이 고장 백정 출신의 ‘동록개’라는 분이 집강소로 사용하도록 농민군에게 헌납한 것이다. 동록개는 이지역 농민군 지도자이며 동학의 대접주였던 김덕명을 찾아가“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소망했단다. 김제 출신의 김종진 문화재청장도 이런 내용의 주변 증언을 본보에 소개하기도 했다.
집강소가 추구한 첫 번째 목표가 적폐청산이었다. 탐관오리의 척결과 사회신분제도 폐지가 그 그간이다. 동록개가 이런 가치를 건 집강소 설치에 기꺼이 전 재산을 바친 셈이다. 그 뜻을 이어 복원된 집강소 공간에 시민들의 손길이 많이 닿고 있다. 마당에 널브러진 야생화 정원이 시민들의 기증으로 만들어졌다. 집강소 내 2개의 장승도 전북문형문화재 목조각장인 임성안씨의 기증 작품이다.
며칠 전 집강소 장승작품에 ‘동록개의 꿈’이 새겨졌다고 한다. 그간 여러 사정으로 ‘동록개’의 이름이 장승에 들어가지 못했다. ‘사람이 하늘이다’의 장승이 ‘동록개의 꿈’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을 염원했던 ‘동록개’의 꿈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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