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선두에 서서 마당으로 뛰어든 기마군은 조장(組長) 조무다. 이미 대문 앞에서 신라군 둘을 베고 달려온 터라 장검에는 피가 묻었고 피가 튄 갑옷에 말도 흥분한 상태다. 그때는 마당에 서있던 박경이 마루 위로 뛰어올라가 소리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놈!”
말을 내달리면서 조무가 소리쳤다. 조무는 칠봉산성 아래의 개울가가 고향이다.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여서 군사로 뽑혔다가 계백이 칠봉성주가 되었을 때부터 전장(戰場)에 따라나왔다. 계백과 함께 대야성 싸움, 수군항, 안시성까지 종군을 했다가 지금은 왜국에 와있다. 그 짧은 순간에 조무는 마루 위에 선 박경을 보았고 다음 순간 들고 있던 장검을 번쩍 치켜들었다가 내던졌다. 말이 마루 위로 뛰어오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급했다. 전장에서는 임기응변이 가장 중요하다. 수십 번 아수라장 같은 전장을 겪은 터라 조무는 땅바닥에 누워 죽은 척을 한 적도 있다. 손에 쥔 장검이 날아갔다. 손잡이 무게가 더 나갔지만 박경과의 거리는 10보, 거기에다 말이 두 걸음을 더 딛는 바람에 5보로 가까워졌다. 순식간에 판단한 것이다. 그 사이에 장검이 날아갔다. 손잡이 무게로 금방 한 바퀴 돈 장검의 끝이 박경의 가슴에 박힌 것은 눈 깜빡할 시간도 안되었다. 박경은 비명도 못 지르고 장검이 가슴 깊숙하게 박힌 채 뒤로 벌떡 넘어졌을 때다. 조무가 탄 말이 달리는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마루 끝에 걸려 앞으로 넘어졌다. 그 서슬에 조무도 마루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때 조무의 조원 서너명이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적장을 죽였다!”
다음 순간 선봉군이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화청이 이끈 선봉군이다. 그 다음부터는 도살이다. 쫓고 쫓기는 자들만 있을 뿐 대항해서 싸우는 광경은 보기 힘들었다. 전장(戰場)이 그렇다. 기세를 타면 일당백이 되고 사기가 떨어지면 1백명이 1명을 못 당한다. 수십명을 한명이 쫓기도 한다. 겁에 질리면 적이 거인으로 보이고 사기가 오르면 적이 좁쌀 만하게 보이는 것이다. 순식간이다. 화랑 석촌은 분전하다가 백제군 셋을 죽였지만 창에 찔려 분사했다. 화랑 하광은 도망치다가 백제군에게 난도질을 당했는데 머리통을 베어든 백제군사는 장수를 베었다고 소리치지도 않고 내동댕이쳐 버렸다. 왜군 장수 아리타는 신라소로 들어오려다가 백제군을 맞자 그대로 도주했는데 방향이 틀렸다. 그래서 백제 본군(本軍)과 마주쳐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 마사시는 싸우려고 허둥대다가 창에 찔려 죽었으며 신라소를 지키는 일을 맡은 이또는 마루 밑에 숨었다가 다리부터 잡혀 끌려나와 목이 잘렸다.
“김부성이 없습니다.”
밥 한 그릇 먹을 시간을 한식경이라고 한다. 밥 한 그릇하고 다시 절반쯤 먹었을 시간이 지난 후에 화청이 계백에게 보고했다. 화청의 흰 수염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져 있다. 피가 튀었고 피 묻은 손으로 수염을 쓸었기 때문이다. 신라소의 마당 안이다. 사방은 시체로 뒤덮여 있었는데 신라인은 전멸했다. 그런데 신라소의 수장(首長) 김부성의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이다. 그때 하도리가 왜인 하나의 뒷덜미를 잡고 끌고 왔다.
“장군, 김부성이 화랑 아성과 함께 아스카항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하도리가 소리쳐 보고했다.
“이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잡혔답니다.”
그때 계백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누가 가서 잡겠느냐?”
마치 사냥꾼을 찾는 것 같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