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고노 영지의 거성(居城)은 둘레가 8리(4km) 정도에 높이는 10자(3m) 남짓의 석벽이 세워진 소성(小城)이다. 그런데 이 소성이 남북으로 두동강으로 나뉘어져서 북쪽은 중신(重臣) 타노(田野)가, 남쪽은 역시 중신 타마나(玉名)가 차지했다. 이 소성을 빼앗으려고 두 중신이 제각기 군사 2백여명을 끌고 들어와 진을 쳤기 때문이다. 서문 안쪽에는 고노의 처자인 아스나, 히지 모자(母子)가 내몰려 있었으니 보기에도 안타깝고 흉했다. 아스나는 끝까지 충성하는 가신(家臣) 10여명에 시녀, 군사 1백여명과 함께 저택에서 기거하고 있었으니 하루가 10년같은 세월일 것이다. 거기에다 성밖의 영지에도 중신 2명이 호시탐탐 영지를 노리는 상황이다. 아스나가 진즉 히지를 데리고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죽은 남편 고노의 유지를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남았다. 자신마저 도망치면 영지는 사분오열이 되어 내란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전 진시(8시) 무렵, 북문 안에 주둔하고 있던 타노는 말구소리에 눈을 떴다. 처음에는 지진이 난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가 그것이 말굽소리인 줄 알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문을 박차고 나간 타노가 마루에 서서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그때 마당으로 군사 하나가 뛰어들었다.
“기마군이요!”
“누구냐! 어느 기마군이야?”
말발굽소리는 1,2백기가 아니다. 엄청나다. 42세의 타노가 처음 듣는 말굽소리다.
그때 군사가 소리쳐 대답했다.
“모릅니다!”
“몰라?”
“벌써 북문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때 말굽소리가 더 가까워지더니 비명과 함성, 외침이 일어났다. 놀란 타노가 방에 있는 검을 집으려고 몸을 돌렸을 때 마당으로 10여필의 기마군이 들이닥쳤다.
“이놈! 멈춰서라!”
뒤쪽에서 벽력같은 외침이 일어나자 타노의 오금이 얼어붙었다. 머리만 돌린 타노는 경장 차림의 기마군들을 보았다.
“내려와라!”
앞에 선 기마군이 소리쳤다. 장수같다.
“누, 누구요!”
타노가 기를 쓰고 겨우 소리쳤을 때 장수가 달려왔다.
“아앗!”
놀란 타노가 외침을 뱉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방으로도 도망치지 못한 타노는 장수가 내려친 칼등에 머리통을 맞고 뒤로 벌떡 넘어졌다. 기절을 한 것이다.
아스나는 땅이 울리는 말굽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계백군의 진입을 알고 있었다. 계백군은 북문 수문장인 우에노가 열어놓은 북문으로 몰려들어올 것이다.
작은 성이다. 곧 말굽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비명과 외침이 일어났다. 모두 성 안의 군사, 장수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소리다. 담장너머 성 안이 온통 말굽소리, 외침으로 가득찬 것 같았다. 그러더니 곧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밥 한그릇 먹을 시간도 안되었다. 어느덧 놀라 지르는 외침이 뚝 끊긴 것이다. 말굽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때 내궁으로 쓰는 저택 대문으로 기마군 대여섯이 들어섰다. 앞에 선 기마군은 장수다. 황소뿔 투구를 썼지만 어깨와 허리 갑옷만 걸쳤고 손에는 피가 묻은 장검을 쥐었다.
아스나는 마루에 나와 서있었는데 황소뿔 장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 장수가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아스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는 계백령 영주 계백대감의 기마군 대장 슈토요, 아스나님이시오?”
목소리가 우렁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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