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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태건 시인 - 김완준 장편소설 ‘더 풀문파티’

"떠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

봄날 저녁이다. 호치민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나눠줄 때 옆에 앉은 베트남 여자는 편의점에서 샀을 법한 도시락을 꺼냈다.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은 할인티켓을 샀으리라. 그녀는 엄마나 아빠에게 드릴 용돈과 아이에게 줄 선물을 장만하느라 스스로에게 인색했을 것이다. 가족들은 저녁을 먹었을 시간. 나는 맵고 아린 봄동을 갓 지은 밥 위에 얹어 먹을 생각만으로 입맛을 다셨다.

저녁식사를 마친 승객들은 수면모드에 들어갔다. 이성이 잠들고 감성은 깨어나는 시간.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 떠난 여행이다. <더 풀문파티> 의 주인공처럼, ‘겉으로는 바빴지만 실상은 건조하고 무료한 날들의 반복’같은 직장생활이었다.

어디쯤 왔을까? <더 풀문파티> 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온 소금인형처럼’ 바쁘고 복잡한 일상을 접고 운명의 시간에 전부를 건 사람의 이야기다. 떠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비루함을 견딜 수 없을 때, 우리는 ‘저곳’을 상상하고 여행을 떠난다.

얼마나 됐을까? ‘직장을 그만두면 복귀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휴가도 마음대로 못 쓰고 살았다. 직장에서 버틴다는 것은 조금씩 비겁함을 견디는 일.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겉과 속을 열두 번이라도 뒤바꿀 수 있는 사람들’과 적당히 거짓을 교환하는 일. 어쩌면 여행은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떠나는 것일까? 이렇게 버티다가는 돌처럼 굳어버릴 자신을 견딜 수 없을 때 여행은 떠나는 것이다. 벗어나는 것이다.

옆 좌석의 그녀는 도시락을 말끔히 비우고 신발을 벗는다. 비좁은 이코노미석 아래에서 원초적인 냄새가 올라왔다. 감상을 깨울 만큼 적나라하다. 실내등이 꺼진 시간. 밤 비행기의 안과 밖은 캄캄하다. 객실 안은 깊은 바다 속처럼 조용해졌다. <더 풀문파티> 를 읽을 때 혼자였으나 외롭지 않았다. 따뜻한 밤바다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 것 같았다.

이윽고 나도 신발을 벗는다. 그녀와 나의 냄새는 어둠과 섞여 객실을 떠돌 것이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흐르는 것 같다. 아픔을 가진 것들이 비로소 깨어나는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 놓고 울 곳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아래, 지상의 불빛들이 열도처럼 늘어서서 빛나고 있었다. 풀문파티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박태건 시인
박태건 시인

* 박태건 시인은 1995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시와반시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스토리텔링과 관련한 글쓰기와 강의를 한다. 올 봄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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