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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작가 - 시시 벨 저, 고정아 역 '엘 데포'

언제인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믿었다. 어느 날은 학교의 지붕이 열리고 로봇을 조종하며 세계를 구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표지가 귀여워 집어 든 『엘 데포』에서 어린 시절 나의 ‘슈퍼 파워’를 다시 찾아냈다.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를 얻은 시시는 학교에 가기 위해 고성능 보청기를 착용해야 했다. 가슴께가 불룩 튀어나오는 기계를 매달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선생님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건네야 했다. 종일 마이크를 목에 걸고 다니는 담임 선생님 덕에 시시는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게 됐다. 시시는 남몰래 이걸 슈퍼 파워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이들과의 관계를 쌓는데도 이 보청기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엘 데포(시시의 영웅 이름)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슈퍼 파워를 사용했습니다. 보청기를 들고 싱클맨 선생님이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알아내는 일이었지요.”(엘 데포 中)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자습시간, 반 아이들이 모두 떠들 때도 시시는 선생님이 교실로 돌아오는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아마 아이들에게는 영웅이나 다름없는 재능처럼 보이기도 했을 테다.

나는 오래도록 아토피를 앓고 있다. 어릴 때는 팔과 다리에만 일어나던 피부 습진이 성장기를 지나면서 손과 발에 자리 잡았다. 손에 힘을 주는 대부분의 일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도록 양손의 악력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머물렀다. 덕분에 나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 많았다. 특히 혼자서는 캔이나 페트병 음료를 열 수 없는 상황을 자주 마주쳐야 했다. 집에 혼자 남아 생수병을 열기 위해 시도하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소리를 지르며 잔뜩 성을 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매번 혼자 남을 때마다 물을 마시지 않을 수도, 계속 화를 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지렛대의 원리’를 정확하게 활용하는 아이가 되었다. 지렛대는 어디에서든, 무엇으로든 재료만 있다면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영수증도, 작게 찢은 조각도, 여러 번 덧댄 실도, 가위도!

“남들과 다른 것?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 되었습니다. 약간의 창의력과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 어떤 ‘다름’도 놀라운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과 다른 것이 우리의 ‘슈퍼 파워’ 입니다.”(엘 데포 中)

손이 불편해 별수 없이 무엇이든 지렛대로 만들던 상상력은 나의 특별한 능력이자 ‘슈퍼 파워’가 됐다. 이제는 손에 힘이 없는 것은 큰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수많은 도구가 있으니 말이다. 몇 달 사이 10년이 넘도록 유일하게 멀쩡하던 엄지손가락에도 피부염이 번졌다. 엄지손가락이 편안하지 않은 삶에 또다시 적응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엘 데포』를 만나 꽤 많은 불안이 정돈됐다. ‘나는 도구를 무척이나 잘 쓰는 사람이니까 또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상상력이 있잖아!’ 하고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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