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가 주최하고 김제문화원과 (사)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이 주관한 ‘임진왜란,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 학술대회가 지난 27일 김제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첫 발표자로 나선 하태규 교수(전북대학교)는 “임진왜란 초기 웅치전투와 이치전투에서 3개월간 버티어 줌으로서 호남에서 군량미와 물자를 공급하려던 일본군의 전략을 와해시켰다”며 “웅치전투, 이치전투, 안덕원전투를 하나로 묶어서 기념사업을 전개하는게 옳은 방식”이라고 밝혔다.
노영구 교수(국방대학교)는 “웅치전투에서 험한 산악지대에서 목책과 장애물을 설치하고 활과 화살로 일본군의 조총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전술을 김제군수 정담이 창안하고 실제 웅치전투에서 전술적으로 사용하므로서 일본군과 웅치전투에서 화차 등 화기 사격과 궁시의 근접 사격으로 일본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욱 교수(국립순천대학교)는 “난중잡록에 정담군수가 밝힌 ‘나의 뜻은 결정되었으니 그대들은 내가 하는 것을 보라’는 각오를 인용하면서 정담군수가 관군 징병과 의병 규합을 위하여 앞장 섰고 김제사족들의 지원을 받아 의병모집이 가능했다”고 했다.
송화섭교수(중앙대학교)는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방어선인 웅치전투에서 가장 큰 전공과 전술 성과는 김제군수 정담과 김제의 의병들이었음이 이번 학술대회에서 밝혀졌다”며 “앞으로 김제시와 김제문화원이 적극적으로 정담군수와 김제의병의 공적으로 김제시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유산청은 2023년 12월 30일 임진왜란 웅치전투 전적지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고시했다. 웅치전투는 1592년 6월 말경부터 3개월간 진안 곰티재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서 전라도 관군과 의병들이 벌인 전투로 초기 호남방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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