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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중의 문학편지] '싸리꽃'인가 '조팝나무'인가

 

이병초 시인의 새 시집 '밤비'를 읽다가 '싸리꽃'이라는 제목의 시에 눈이 번쩍 뜨였다. "잡초 무성한 밭뙤기 오목한 곳에 / 싸리꽃이 피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 수의처럼 하얀 꽃무더기에 햇살이 / 잠잠히 흩어진다 / (중략) / 치성드리는 할머니 뒷모습 같은 꽃을 / 오목 가슴 쓸어내리며 바라본다”

한 식물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데 치중한 소박하고도 잔잔한 소품이다. 시인은 싸리꽃 무더기를 "수의처럼 하얗다”고 했고, "치성드리는 할머니 뒷모습 같다”고도 했다. 나도 그런 하얀 꽃을 본 적이 있고, 또 이 시인처럼 좋아한다.

나는 15년 동안 이 하얀 꽃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싸리나무 또는 싸리꽃이라는 이름과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물에 대한 사람들의 고집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을 싸리꽃에 관한 신념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싸리나무를 모르는 부류, 둘째, 싸리나무를 작고 하얀 꽃이 많이 달리는 관목으로 알고 있는 부류, 셋째, 싸리나무는 그보다 좀 큰 연한 붉은 색 꽃이 달리는 나무로 알고 있는 부류, 이렇게 셋이다. 둘째와 셋째 부류의 싸움에는 양보가 없다.

1980년대 후반 나는 늦봄 산자락이나 들에 무더기로 하얗게 피어서 은은한 향으로 눈길을 끄는 꽃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모르겠다는 사람이 절반을 넘었고, 싸리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좀 있었다.

그래서 그게 싸리나무라고 말하면서 한동안 지냈는데, 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항의를 받았다. 싸리꽃은 저보다 더 크고 붉다고 했다. 나아가 그건 조팝이고 싸리는 이거라며 식물도감을 들고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식물도감도 갖가지였다.

헛갈리던 중, 어떤 카페 마당에 그 꽃이 피어 있어 여주인께 물었더니, 바로 저놈이 싸리이고 조팝나무라고 했다. 이쯤에서 정리하고 싶었던 나는 시를 지어 문예지에 발표했다. 그 마무리가 이렇다.

"이름을 알면 무엇이 달라지나 / 이미 나는 그 나무, 그 꽃을 깊이 사랑하는데 / 십 년의 궁금증은 이제 풀렸으나 / 이름 없이도 나무는 혼자 늘 꽃을 피웠는데 / (중략) 이름 불러주지 않아도 / 사람과 상관없이 봄마다 꽃을 피울 터 / 다시 누가 그 꽃이 싸리꽃이 아니라 한들"

결국 나는 이 시를 시집에서 뺐다. 어느 시낭송회에서 이 시를 읽었더니, 어느 선배 시인이 귓속말로 꾸짖으셨다. "그건 조팝나무야."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싸리는 이 어느 마을에서나 쓰는 말인데, 그 말이 가리키는 실물은 다를 수 있다. 사람들은 어릴 때 자연스럽게 배운 것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식물학자들이 조팝으로 통일했다고 해도, 적지 않은 마을에서 싸리로 부르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없어진, 홍지서림 지하 북카페에서, 박남준 시인이 기증한 지리산 사진첩을 넘기다가 그 꽃을 또 보았고, "역광을 받은 싸리꽃" 운운하는 설명을 옮겨 적은 적도 있다. 이 글을 읽고 또 셋째 부류의 사람들이 항의할 것 같다. 나는 대답하리라. "진리가 여러 가지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이희중(전주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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