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설치레·득음·너름새 갖춰야
판소리를 잘하는 사람을 우리는 명창이라고 부른다. '잘한다'고 할 때는 무언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기준에 비추어 잘한다든지 못한다든지, 혹은 부족하다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명창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을까? 어떤 사람을 명창으로 부를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또는 판소리를 하는 집단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집단에서는 성음을 중요시하는데, 어떤 집단에서는 너름새를 중요시할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사설을 중요시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무슨 명창이 될 수 있겠냐고까지 말한다.
그러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명창을 가려내기 위한 기준을 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이미 130여 년 전에 신재효는 명창의 구비요건을 네 가지로 제시하였다. 신재효가 들고 있는 구비 요건은 인물치레,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네 가지가 명창이 구비해야할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다.
'인물 치레'는 인물이 잘나야 한다는 것이다. '인물이 잘나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우선 생김새가 잘 생겨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다. 판소리는 공연 예술이기 때문에 창자의 용모가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판소리사에는 용모가 기형적으로 생긴 소리꾼들도 얼마든지 등장한다. 서편제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박유전은 애꾸눈이었다고 하며, 동편 소리의 대가였던 박기홍은 명창은 한 쪽 눈이 기형적으로 튀어나왔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명창이 되었다. 그러므로 인물은 잘 생기면 좋지만, 인물이 못생겼다고 해서 명창이 못되는 것은 아니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설 치레'란 사설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좋다'는 것은 '적절하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판소리는 성악이다. 따라서 어떤 가사(사설)를 노래로 부르는 양식이다. 그리고 판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사설이 먼저 있고, 거기에 곡을 붙인다고 보아야 한다. 판소리의 사설은 판소리에서 노래하고자 하는 내용을 잘 표현하는 것이어야 하며, 판소리적 표현 양식에 적절해야 한다. 판소리 사설은 또 문학적으로도 훌륭한 것이어야 한다. 사설이 판소리로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다거나, 내용이 훌륭하지 못하다면, 거기에다가 아무리 훌륭한 음악을 붙인다고 해도 결코 좋은 판소리가 될 수 없다. 판소리에서 유명한 대목들은 모두 사설의 문학성도 뛰어나다. 흔히 '문장 나고 명창 난다'고 하는데, 이는 바로 사설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득음(得音)'은 판소리에서 필요로 하는 음색과 여러 가지 발성의 기교를 습득하는 것을 가리킨다. 득음을 위해서 소리꾼이 택하는 방법은 '독공'이다. 독공이란 판소리를 어느 정도 배운 사람이 혼자 깊은 산 속이나 절에 들어가 수련하는 것을 가리킨다. 독공과 비슷한 것으로 '백일 공부'라는 것이 있는데, 소리꾼이 100일을 기약하고 외딴 곳에 가서 수련하는 것을 가리킨다. 독공이니, 100일 공부니 하는 것이 모두 득음을 위한 피나는 수련 과정의 일부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득음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너름새'는 판소리 창자가 소리하는 도중에 하는 춤이나 몸짓을 가리킨다. '발림'이란 말도 있어 '너름새'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너름새가 소리꾼이 하는 모든 육체적 동작을 가리키는 데 반해서, 발림은 춤동작에 한정하여 쓰이는 일이 많다. 신재효는 너름새에는 구수한 맛이 깃들고, 맵시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변화무쌍한 판소리적 상황에 따라 신선도 되고, 귀신도 되는 수많은 변화를 통해서 청중들을 울게 하고 웃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너름새는 연기에 접근한다. 신재효가 너름새를 강조한 것은 판소리가 연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현대에 오면 너름새는 더욱 더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상의 네 가지를 다 갖추면 명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득음이다. 나머지는 혹 좀 부족해도 괜찮지만 득음을 하지 못하고서 명창이 될 수는 없다. 판소리는 일단 음악이기 때문이다.
/최동현(군산대학교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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