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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 꽃 켜는 아저씨(백상웅)

"음, 보자……. 산수유 3월 15일, 매화 3월 17일, 목련 4월 10일, 자목련 4월 12일……"

 

 봉씨 아저씨가 수첩을 뒤적이며 중얼거립니다. 수첩에는 봄꽃이 피는 순서가 날짜 별로 차례차례 적혀 있습니다.

 

 아저씨는 허공에 리모컨을 대고 빨간색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러자 이름표가 붙은 새끼줄들이 하늘에서 빼곡하게 내려왔습니다. '목련나무'라고 적힌 이름표를 찾은 아저씨는 형광등을 켜는 것처럼 힘껏 줄을 당겼습니다.

 

 방금 전까지 입을 꼭 다물고 있던 목련 꽃망울이 금세 입술을 활짝 열었습니다. 아저씨도 목련꽃처럼 크게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아, 이런 늦었네? 이젠 옆 마을로 가볼까?"

 

 봉씨 아저씨는 서둘러 자전거를 페달을 밟으며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아무도 아저씨를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저씨의 직업은 '꽃 켜는 사람'입니다. 기어도 없는 구식 자전거를 몰고 이 동네, 저 동네를 떠돌며 하늘에 연결 된 새끼줄을 당깁니다. 그러면 봉오리는 꽃잎 열고 봄소식을 전합니다. 요즘은 주로 목련꽃을 켜는 일을 합니다. 아저씨가 지나간 동네는 어김없이 전구처럼 환한 목련꽃이 피어납니다.

 

 아저씨의 자전거가 막 옆 마을로 들어설 무렵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으앙, 엄마! 엄마!"

 

 아이는 애타게 엄마를 찾았습니다. 봉씨 아저씨는 꽃 켜는 일을 젖혀두고 아이에게 달려갔습니다.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렸어요. 아무 것도 기억이 안나요. 집 주소도, 학교도, 전화번호도 기억이 안나요."

 

 "그것참 큰일이구나. 이름은 뭐니?"

 

 "정호에요. 정호. 으앙. 엄마!"

 

 정호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얘야. 그만 울고 이것 좀 보렴. 목련나무를 잘 보렴. 네 주먹같이 생긴 목련 봉오리 말이야."

 

 아저씨는 리모컨으로 하늘 속의 새끼줄을 끌어내렸습니다. 그리고 '목련꽃'이라고 적힌 새끼줄을 당겨 마을의 목련나무의 꽃을 활짝 피게 했습니다.

 

 정호는 신기한 광경에 울음을 뚝 그치고 방긋 웃으며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와! 그게 뭐에요 아저씨는 천사죠?"

 

 "아니란다. 아저씨는 '꽃 켜는 사람'이란다."

 

 "에이. 거짓말 말아요. 꽃은 그냥 피는 것이에요."

 

 "아니란다. 사람들은 그냥 비가 오고, 그냥 꽃이 피고, 그냥 열매가 여는 줄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니란다. '비 내리는 사람'이 먹구름을 짜내서 비를 뿌리고, '꽃 켜는 사람'이 새끼줄을 당겨 꽃을 피워내고, '열매 맺는 사람'이 나무에 씨앗을 풍선처럼 불어서 나무에 매다는 것이란다."

 

 정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저씨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활짝 벌어진 목련꽃을 바라보다가 꽃잎을 벌리지 못한 봉오리를 발견했습니다.

 

 "저 꽃은 이상해요. 아직 안 폈는데요?"

 

 "아이고. 또 고장이 났구나. 요즘에는 나무가 고장이 자주 나거든."

 

 아저씨는 가방에서 사다리를 꺼냈습니다. 정호는 아저씨가 작은 가방에서 기다란 사다리를 꺼내는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저씨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고장 난 봉오리를 빼고 다른 봉오리로 바꿔 끼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꽃을 갈아 끼운다고 말한단다. 옛날에는 꽃을 갈아 끼우는 일이 거의 없었어. 요즘은 자동차가 많아지고,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끊임없이 나오고, 나무에 못을 박거나 끈을 묶고, 그래서 나무가 고장이 나는 거야."

 

 봉씨 아저씨는 슬픈 표정을 짓더니 정호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네가 살던 마을에 어떤 꽃이 많이 폈는지 생각해낼 수 있겠니?"

 

 "음……. 마을 입구의 커다란 벚나무가 생각나요."

 

 "그래? 벚꽃 켜는 일도 곧 해야 하니까. 아저씨랑 같이 찾아보자."

 

 봉씨 아저씨는 정호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길을 떠났습니다. 정호는 아저씨 등을 꼭 안았습니다.

 

 한참을 달려가는데 낯선 아줌마가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그 아줌마는 봄인데도 하얀 털옷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봉씨 아저씨는 낯선 아줌마의 등을 떠밀며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 다투는 동안에 하늘에서는 싸락눈이 내렸습니다.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고 있던 꿀벌들과 나비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별처럼 핀 별꽃이 덜덜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못살아. 저 여자는 일을 끝낼 줄을 모른다니까!"

 

 "저 아줌마가 누군데요?"

 

 "응. '눈 내리는 사람'이거든. 겨울이 지났는데도 돌아다니면서 눈을 내리게 한다니까. 내가 애써 피운 꽃들이 다 얼어 죽게 생겼네. 어서 여기를 떠나는 게 상책이야."

 

 봉씨 아저씨는 다시 자전거를 몰고 꽃을 피우러 출발했습니다. 몇 시간을 달렸을까요? 자전거는 튼튼한 목련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안 돼! 정호야! 뭐하는 거야?"

 

 봉씨 아저씨가 한 눈 판 사이에 정호가 일을 저질렀습니다. 아저씨가 하는 일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정호가 아저씨 몰래 새끼줄을 당겼던 것입니다. 이름표도 확인하지 않고 새끼줄을 내려 엉뚱한 꽃이 피어버렸습니다.

 

 다음 날 뉴스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가 봄날에 피어나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며, 기상학자와 식물학자가 나와 환경오염 때문에 이상기후가 생긴 것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라디오를 듣던 아저씨와 정호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깔깔깔 웃었습니다.

 

 봉씨 아저씨와 정호는 쉬지 않고 길을 재촉했습니다. 아저씨가 정호를 만나 쉬엄쉬엄 일을 하면서 꽃 피우는 일이 밀렸기 때문입니다.

 

 정호는 아저씨의 일을 도왔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아저씨의 수첩을 함께 보며 꽃 이름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 마을인 것 같은데? 네가 말한 커다란 벚나무가 저게 맞니?"

 

 정호는 그제야 자전거 앞에 버티고 있는 아름드리 벚나무를 발견했습니다. 벚나무에는 꽃 피지 않은 작은 눈들이 수없이 달려 있었습니다.

 

 "정호야. 기억나니? 잠깐만 기다려. 아저씨가 마을 좀 다녀올게."

 

 정호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봄날이면 화사하게 핀 벚나무 밑에서 일 나간 엄마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쏴아 벚꽃이 흩날리면 벚꽃을 잡으려고 뜀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엄마 이름도 집 주소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호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아저씨가 돌아왔습니다.

 

 "정호야. 이 마을도 아닌 것 같아."

 

 아저씨의 말에 정호는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저 아랫집에서 며칠 전에 아이가 한 명 죽었다는데……. 너는 살아 있는 것 맞지?"

 

 "당연하죠. 엄마가 저를 애타게 찾고 있을 거예요."

 

 "그래 가자. 네가 말한 벚나무는 이것보다 훨씬 커다랄 거야."

 

 봉씨 아저씨와 정호는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동안 두 사람은 입을 떼지 않았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저씨였습니다.

 

 "정호야. 다음에는 네가 새끼줄 당겨볼래?"

 

 "네? 정말요?"

 

 "응. 정호 너도 공부 많이 했으니까."

 

 "알았어요! 대신에 실수해도 화내면 안 돼요!"

 

 "녀석도 참. 그래 알았다!"

 

 다시 침묵이 오갔습니다. 마을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호야."

 

 "네?"

 

 "아저씨도 너 만할 무렵부터 이 일을 시작했단다."

 

 "정말요? 우와. 그럼 정말 오랫동안 꽃을 켰겠네요."

 

 "응……. 그런데 정호야."

 

 "아, 왜요!"

 

 "실수하면 절대로 안 돼!"

 

 정호는 아저씨의 옆구리를 간질이며 장난을 쳤습니다. 자전거도 간지러운지 비틀비틀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어느새 일 년이 흘렀습니다.

 

 자전거가 다시 아름드리 벚나무가 자라던 마을에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정호 혼자 찾아왔습니다. 봉씨 아저씨가 몰던 자전거를 벚나무 밑에 세운 정호는 불 꺼진 마을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능숙하게 하늘에서 새끼줄을 끌어내려 '벚꽃' 이름표가 붙은 새끼줄을 잡아 당겼습니다.

 

 순식간에 벚꽃이 켜졌습니다. 수천, 수만 개의 꼬마전구가 한꺼번에 켜진 것 같습니다. 캄캄한 밤이었는데도 환하게 빛났습니다.

 

 일을 마친 정호는 자전거를 돌려 세우고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때마침 아이를 잃었다는 아주머니가 대문을 열고 마을 바깥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정호의 뒷모습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그저 방긋 웃고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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