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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대의 거꾸로 쓰는 식탐일기] ⑬설익은 블로거들이 만든 비극

정터 문화를 맛집과 비교 '난센스'

할머니해장국'의 시래깃국(밥 나온 사진)과 '고창집'의 시래깃국 (desk@jjan.kr)

2008년 6월 조선일보 박은주 엔터테인먼트 부장이 쓴 칼럼이 당시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사진기 든 식도락가 비평에 놀아나는 맛집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초심을 잃은 맛집이 도처에 넘쳐나는 현실은 관록과 경험이 미천한 신세대 식도락가의 사진과 비평 탓"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맛이 달라지는 건 할머니들이 '비밀'을 무덤으로 갖고 가서가 아니고, 며느리(2, 3세)가 몰라서도 아니다. 결국 '며느리가 하기 싫어서'이며 한정된 맛집의 숫자에 비해 신문, 잡지, 방송, 개인 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을 가진 우리 요식업계의 환경 때문"이라 꼬집었다. 그는 "우리의 비극은 아마추어들이 떠들기 시작하면 '이 집은 더 이상 맛집이 아니야'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는 '고수'들이 입을 닫아버린다는 것이다. 누구나 맛을 평가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이건 식당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게 더 큰 비극일지도 모르겠다"고 결론지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보다 훨씬 원론적이고 직관적인 글이어서 지금 봐도 놀랍다.

 

옛 군산역전 광장에서 새벽마다 열리는 도깨비장에는 여전히 싸고 질 좋은 물건을 고르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갓 잡은 생선이 장터 바닥에서 파닥거리고, 국내산 농산물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 수 없다. 이런 장터에 쓸만한 국밥집이 없을 리 없다. '할머니해장국'과 '고창집'이 대표적. 두 군데 모두 시래기국밥으로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곳이다.

 

'할머니해장국'은 10여 평 남짓한 공간에 기다란 테이블 하나가 고작이다. 고등어조림·울외장아찌·무생채김치 등 예닐곱 가지 곁 음식이 시장 음식치곤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

 

맛집으로도 매스컴을 탄 이력이 있다. 그러나 2008년 말까지 2000원이었던 시래기국밥이 500원씩 오르더니 이제는 4000원으로 평범(?)해진 가격이 문제라면 문제. 1년에 한 번쯤 올까 말까한 사람들 기억 속엔 항상 2000원~2500원짜리 해장국으로 기억될 터이니 말이다.

 

선술집인 '고창집'은 부뚜막을 겸하는 테이블과 벽 쪽에 붙은 허름한 테이블 두 개가 전부. 새벽 장을 준비하느라 아침을 거른 손님들에게 술 한 잔(소주 혹은 막걸리 반 병)과 밥 몇 술을 만 시래깃국을 단돈 1000원에 판다. 구수한 시래기국밥을 따로 주문하면, 2000원을 받는다. 좁은 공간에서 빤히 마주 보며 밥 먹고 술 마시는 게 부담스럽지만, 시골 장터 선술집이란 원래 분위기가 이렇다.

 

'할머니해장국'의 밥값은 더 이상 매스컴이 떠들었던 '기절할 정도로' 싸지 않다. '고창집'도 단돈 1000원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을 뿐 객관적으로 맛집이라고 부르기엔 겸연쩍다. 두 곳 모두 장터 사람들의 공간이자 장터 문화의 일부다. 애초 맛집을 기대하고 방문했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런 맥락을 무시한 채 일부 '설익은' 블로거들이 장터 식당은 '맛이 없다', '불결하다', '상식 밖이다'라고 평하는 것은 비극이다.

 

◆ 할머니해장국

 

▲ 메뉴: 시래기국밥 4000원 라면·국수 각 3000원

 

▲ 영업시간: 오전 5시△~오후 2시

 

▲ 위치: 군산시 대명동 188-2(전북약국 옆 2차선 쪽)

 

▲ 전화: 063-442-4777

 

◆ 고창집

 

▲ 메뉴: 시래기국밥 2000원, 잔술 1000원(술 반 병 분량, 술국 포함) 병술 2000원

 

▲ 영업시간: 오전 4시~오후 손님이 뜸할 때까지

 

▲ 위치: 군산 구역전종합시장 입구 왼쪽 골목 5m

 

김병대(블로그 '쉐비체어'(blog.naver.com/4kf)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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