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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옥 씨〈판소리 깊이듣기 - 적벽가〉민중과 함께 한 예술 대중에 더 다가가야

소리판에서 좌상(座上)이 소리꾼에게 묻는다.

 

“적벽가를 부를 줄 아십니까?”

 

파격도 보통 파격이 아니다. 반상(班常)의 구분이 엄연히 살아있던 시대에 양반(兩班)이 상인(常人)인 소리꾼에게 경어를 쓴다는 것은 사회적 통념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소리꾼 중엔 어전광대(御前廣大)가 되어 당상관인 정삼품의 관직을 받은 이도 있다. 그러나 그 벼슬은 명예직에 불과했다. 계급적 신분 역시 면천(免賤)은 될지언정 양반이 경어를 쓸 정도의 신분상승은 기대할 수 없었다. 양반이나 중인 출신인 비가비라 할지라도 소리꾼 대다수가 하층민이었기에 함께 휩쓸려 천대받기 십상이다.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좌상의 어투가 달라지며 하대하기 시작한다. “그럼, 춘향가는 할 줄 아는가?”

 

“그것도 모릅니다.”

 

좌상은 이제 소리꾼을 아예 대놓고 무시한다. “심청가는 할 줄 아냐?”

 

판소리 전성기 때의 일화다. 필자가 박동진 명창(朴東鎭 1916~2003) 생전에 그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다. 적벽가가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는지를 강조할 때 박 명창은 이 얘기를 꺼내곤 했다.

 

이렇게 ‘높임’을 받던 적벽가가 판소리의 전반적인 퇴조 속에서 제일 먼저 절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지속되고 있는 소리판의 여성화 탓이다. 적벽가는 웅장하고 씩씩한 호령조의 가장 남성적인 판소리여서 여성화된 소리판에서 멀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적벽가 사설은 한문체나 한시 등으로 짜인 대목이 많아 판소리 전승자나 청중 모두 어렵게 여기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다. 그래서 자칫 전승을 소홀히 하면 적벽가는 박제되어 ‘소리박물관’에서나 찾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판소리의 세계화가 이루어진다면 적벽가가 첨병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적벽대전은 그 내용이 동양 3국뿐 아니라 서양까지 널리 알려진 얘기여서 적벽가라는 새로운 예술형태로 세계인의 가슴 속에 쉽게 파고들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가 쓴 소설을 뮤지컬로 만든 ‘레미제라블’이 세계무대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듯이 적벽가를 앞세워 세계 문화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누구는 적벽가가 중국 얘기가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적벽가는 〈삼국지연의〉를 단순히 판소리화한 것이 아니다. 적벽대전의 줄거리를 씨줄로, 우리민족의 정서를 날줄로 다시 짠 ‘우리의 예술’이다.

 

적벽대전의 얼개가 우리의 장단과 가락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으면서 전혀 다른 형태의 예술로 모습을 바꾸었다. ‘탈바꿈’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층 격조 높은 판소리 예술로 재탄생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적벽가를 들으면 시샘을 해도 단단히 할 일이다. 자기 나라 얘기를 가져다가 이웃 나라에서 독창적인 예술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졸저 〈판소리 깊이듣기 - 적벽가〉는 판소리의 전승 유형을 소개하고 이를 서로 비교 분석하면서 적벽가를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구상했다. 이를 위해 적벽가 중 가장 길고 짜임새가 있다는 평을 받는 박동진 명창의 ‘1974년판 적벽가 완창음반’ 사설을 중심 텍스트로 삼았으며 이를 23개 대목으로 나눴다. 그리고 대목 순서에 따라 사설을 소개하고 주석을 달았으며 각 대목마다 ‘소리풀이’란 항목을 따로 두었다.

 

적벽가의 사설은 박동진 명창이 녹음한 소리를 채록, 전라도말을 포함해 들리는 그대로 표기했으며 한자를 병기했다. 사설 가운데 의미가 통하지 않거나 불분명한 부분은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의 내용으로 보완했다. 그리고 주석을 달 때 특정 단어의 풀이보다는 사설 전체의 흐름과 이해에 중점을 뒀다. 간추려 소개한 고사도 그 같은 맥락을 따랐다.

 

‘소리풀이’는 앞서 소개한 대목의 판소리 유파 별 창법과 장단 등의 특성, 판소리 어법(語法)과 미감(美感) 등 판소리 고유의 예술성을 설명했다. 따라서 졸저는 특정 대목만 따로 떼어 읽어도 되게끔 구성했다. 또 통독하면 적벽가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판소리 전성기 때 귀한 대접을 받던 적벽가의 매력(魅力)은 과연 무엇일까? 졸저 〈판소리 깊이듣기 - 적벽가〉는 그 매력을 탐구하는 과정의 소산이랄 수 있다. 또 판소리 감상의 즐거움을 ‘쉰세대’가 ‘신세대’에 전하고 싶었다. 위대한 문화유산을 온전히 넘겨주는데 일조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판소리의 맛과 멋’을 조금이라도 접해 호기심이 인다면 소리판을 직접 찾지 않을까? 필자의 소박한 바람이다.

 

판소리가 본디 민중의 희로애락과 함께한 예술이었음을 되새긴다면 대중과 멀어지는 판소리는 더 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 판소리가 대중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뒤따라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저자 전성옥 씨는 연합뉴스 로 활동하며 판소리에 대한 애정을 쏟았다. 〈역주본 춘향가〉 〈판소리 기행〉 등의 저서를 냈다. 연합뉴스 방콕특파원과 전북취재본부장을 거쳐 현재 기획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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