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일상, 예술적 단단함 구축
그에 비해 박수근의 부상은 조금 늦었다. 그는 처음부터 가난해서 초등교육만 받았을 뿐이다. 그의 이야기가 문학에서 언급된 것도 박완서의 첫 장편소설에 가서다. 소설 ‘나목’은 잎도 없이 한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나무, 그렇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싹을 틔우는 강한 생명의 나무, 박수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작품은 조용하다. 요동치는 감정이 드러나는 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내뱉지도 않는다. 선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이 그려졌을 뿐이다. 깊고 오랜 세월 속에 옛 흔적이 암각화로 드러나듯 화강암 같은 화면에 ‘새겨’졌을 뿐이다. 그것이 예술적인 단단함이 되었다. 호당 몇 억 원을 호가하는 무엇도 능가할 수 없는 한국 최고가 작품들이 되었다.
전북도립미술관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열정의 시대, 피카소부터 천경자까지는’ 한국미술사도 담고 있다. 인상파시대 서양 미술만이 아니라 우리 미술과 더불어 살피는 의미의 중요성을 생각해서였다. 물론 그 때문에 2년 전의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 같은 블록버스터 전시의 느낌은 덜하다. 그렇지만 우리 미술을 빼놓고 얘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여전히 소중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박수근의 ‘빈 수레’는 두터운 질감으로 처리한 화면과는 다르게 나이프로 얇게 긁어 질감을 냈다. 박수근 작품에서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예의 화강암 같지 않게 긴 무늬가 있는 편마암 질감 같은 화면이다. 견고한 화면 완성도는 다르지 않다. 우리 옛그림 ‘책가도’가 그렇듯 앞이 작고 뒤가 커지는 역 원근법은 수레를 따라 가로놓인 세 선의 연장선을 그어볼 때 확연해진다. 연장선들은 뒤로 갈수록 소실점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부챗살처럼 펼쳐지게 된다. 박수근 특유의 소박한 표현이 잘 녹아있다. 컬렉터로 유명한 영창 조재진 회장이 소장하고 있다가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 가진 것 없이도 따뜻했던 박수근을 닮은 아름다운 ‘빈 수레’로 의미가 더해졌다. 도내에서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다시없을 기회다.
최형순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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