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제 다가서기
올해는 8·15 해방으로 맞은 광복 70주년인 해입니다. 광복절은 5대 국경일(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중 하나로,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돼 우리나라가 36년 동안의 일본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데 이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을 공포한 날입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행사계획과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지만 여전히 우리가 해결하고 기억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진정으로 대한민국의 친일문제가 청산되었는지와 진정한 광복과 해방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주제를 통해서 우리는 왜 역사 학습이 필요하고, 역사의 심판이 필요한지 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고자 하며, 우리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인물뿐만 아니라 친일파 인물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 그리고 한때 국민의 존경을 받았던 지식인이 왜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지 학생들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고자 합니다.
■ 주제 관련 교과 단원
△고등학교 한국사 Ⅴ. 일제의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
△중학교 역사(하) Ⅲ. 민족운동의 전개.
■ 신문 읽기
〈읽기자료 1〉
- 광복 70년, 숫자놀이보다 더 중요한 것
어떤 인연인지 독일에 와 뉘른베르크의 전범재판소를 찾았다. 법학을 업으로 삼은 처지라 안 가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그리 내키지 않았던 그곳. 한국인인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사 청산 작업의 원형이 실물로 목도되는 곳이기에 후진국민의 자의식이 사진 몇 장만 담은 채 서둘러 이 방문을 끝내게 만들었다.
뉘른베르크는 나치당이 횡행했던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치 전범들을 처단하는 국제군사재판이 열린 것은 그 점보다는 이 재판소 건물에 사무실과 법정이 많이 있다는 정말 하찮은 이유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이 재판소의 600호 법정은 1945년 11월부터 약 11개월간 괴링과 헤스, 리벤트로프 등 19명의 전범자들을 교수형이나 무기징역에 처한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 600호 법정은 그 재판의 공간을 모든 세상으로 확장하였다. 곧이어 177명의 전범들이 법정에서 처단되었고,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과 뒤셀도르프 마이다네크 재판 또한 그 뒤를 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전범에 대한 추적은 진행 중이다.
이 재판의 의미는 심대하다. 전쟁이든 학살이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유린하는 행위는 비록 국가의 이름을 빌리고 합법을 가장하였다 하더라도 인류는 그것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임을 국제사회가 확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600호 법정은 우리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 되어 있다. 우리에게 과거사란 청산되기는커녕 여전히 살아남아 지금의 우리를 괴롭히는 현재사이기 때문이다. 〈중략〉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 같은 대국민담화는 그래서 유감스럽다. 오로지 경제만 무한반복될 뿐 일본 정부를 향한 어떠한 일침도, 주의성 메시지도 담아내지 않았다. 물론 광복절 성명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일제 과거사 청산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면, 그것은 국민들의 합의에 터 잡은 강력한 요구가 되어야 한다. 사전에 정부가 국민적 의사결집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 채 정부 단독으로 내놓는 광복절 성명은, 어쩌면 아베 정부의 종전 70주년 메시지와 이에 대한 중국의 태도 여하의 길항관계 속에서 또 한 번의 무의미한 의례사로 끝날지도 모를 판이다.
여기에 한일협정 50주년이라는 숫자에 함몰된 박근혜 정부가 너무도 졸속이었던 한일협정의 과오를 반복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겹친다. 여권 일각에서 과거사의 청산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정은 이를 더욱 가중시킨다.
침략전쟁이나 전쟁범죄, 인도(人道)에 대한 죄 등과 같은 “국제법상의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를 한 모든 사람은 이에 대해 책임을 지고 또한 처벌된다”라는 것이 뉘른베르크 원칙 제1조이다. 이 원칙은 분명 일제가 식민지배 과정에서 저지른 잔혹행위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기에 현 정부는 현재의 일본에 대해 그 책임을 명확하게 추궁하고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과와 피해자에 대한 공식적 구제조치의 확약을 받아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광복 70주년은 동북아의 평화뿐 아니라 우리의 과거사 청산에도 가장 뚜렷한 지침이 되어 살아 있을 것이다. 〈출처 : 2015.8.10/경향신문 27면/오피니언/한상희〉
〈읽기 자료2〉
- 광복 70년, 일제 청산 현주소, 기억하라! 치욕의 유산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 앞 세종로광장. 일제 강점기 한반도 수탈의 본거지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이뤄졌다. 당시까지 ‘중앙청’으로 불리던 경복궁 앞 건물 꼭대기에서 무게 10.5t짜리 첨탑 상부가 크레인에 의해 땅으로 끌려내려왔다. 70년 동안 서울 한복판을 억누르던 식민정책의 상징물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지금도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남아 있다면 서울을 찾은 일본인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 모른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2015년 8월 민주화의 도시 광주 사직동의 광주공원. 시민들의 쉼터인 이 공원 모퉁이에는 친일 인사들의 ‘선정비(善政碑)’ 5개가 1593년 임진왜란 당시 행주대첩에서 왜군을 격퇴한 권율(1537∼1599) 장군의 공적비를 포위하듯 에워싸고 있다. 의향 호남의 맥이 집결하는 장소에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이자 일제 귀족 작위를 받은 이근호(1861∼1823) 등의 선정비가 굳건히 서 있는 것이다. 광주공원 친일 인사 선정비는 100년 가까이 흐른 뒤에야 최근 한 대학교수가 우연히 탁본을 뜨다 존재를 확인했다.
굴욕적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조약을 맺은 지 110년,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친일 청산 작업은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20년 전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와 2009년 11월 친일반민족행위자 704명 명단을 담은 친일인명사전 발간 등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친일인명사전은 2012년 8월 젊은이들을 위한 ‘모바일 앱’(스마트 친일인명사전)으로 시판되기도 했다. 2003년 말 국회에서 친일인명사전 편찬 예산이 삭감되자 이듬해 모금운동을 통해 11일 만에 3만여명이 5억원을 삽시간에 모아준 국민적 열망이 담겨 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매년 3·1절과 8·15광복절 전후로 친일 흔적 지우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각종 공공기관에 남아 있는 일본향나무(가이즈카) 교체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충북 청주 향교에서는 일제 강점기 친일파 김동훈과 이해용을 찬양하는 존성비가 발견돼 철거 논의가 진행 중이다. 강원도에선 친일파인 이범익 전 강원도지사의 악행을 알리는 단죄문이 설치됐다.
그럼에도 한반도 곳곳에 일제 잔재가 버젓이 남아 있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혐의자만 무려 80명이 넘는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중략〉〈출처 : 2015.8.1/국민일보 1면/종합/광주=장선욱〉
〈읽기자료3〉
- 조국은 大韓國人을 잊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덜렁한다. 이등을 총살한 이는 안응칠 씨(안중근의 어릴 적 이름)라 한다. 아! 위대하다. 우리에게도 사람이 있구나!’
독립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1920년대 초 시베리아 설원에서 백마를 타고 독립군 부대를 지휘한 김경천 장군은 1909년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유학하던 중 안중근 의사의 의거 소식을 듣고 일기에 그 감격을 이렇게 적었다. 10년 뒤 장군은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을 보고 잠시 귀국했다 곧장 독립군 양성을 위해 만주로 망명해 다시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그는 1923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에 독립군 가담 계기와 일본군 섬멸 과정 등 생생한 경험담을 기고했다.
제70주년 광복절을 열흘 앞둔 5일 김경천 장군의 후손 7명 등 특별귀화 대상자로 선정된 외국 국적의 독립유공자 후손 11명이 서울 중구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찾았다. 법무부는 2006년부터 독립유공자의 후손 932명에게 선조들의 ‘국적’을 선물했다. 이번에 입국한 11명의 후손은 12일 대한민국 국적을 얻는다.
김경천 장군의 손녀 옐레나(54)·갈리나 씨(52) 자매는 자녀들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의사였던 아버지 김기범 씨(85)를 따라 자매도 모스크바에서 의사가 됐다. 생활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할머니가 들려준 카자흐스탄 집단농장에서의 시련과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잊을 수 없었다. 〈중략〉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잊어가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경천 장군의 손녀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했던 말로 짧게 답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출처 : 2015.8.6/동아일보A5면/종합/신동진, 김재명〉
■ 생각 열기
△〈읽기자료 1〉을 통해 광복절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해 봅시다.
△〈읽기자료 2〉와 〈읽기자료 3〉을 읽어보고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과 친일파 인물들의 행동을 비교하여 각각 후손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친구들과 의견을 나눠봅시다.
△일제강점기동안 우리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어떠한 상처들이 남아있는지 생각해보세요.
■ 생각 키우기
△활동1 : 모둠별 리서치(1)
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감추어진 영웅들은 누가 있을까? 모둠별로 감추어진 영웅들을 찾아보고 그 이유에 대해서 정리해보세요.
② 교과서 또는 인터넷을 통해 찾아봐도 좋습니다.
△활동2 : 모둠별 리서치 (2)
① 일제강점기동안 나라를 지키기 위한 감추어진 영웅들도 있었지만 협박과 회유에 굴복해 일제의 앞잡이인 친일파로 변절해 민족을 배반하는 행위를 일삼았던 주요 인물에 대해 알아보세요.
② 교과서 또는 인터넷을 통해 찾아봐도 좋습니다.
△활동3 : 모둠별 빙고게임하기
2번의 빙고게임을 하는데 한번은 감추어진 영웅들로 게임을 진행해보고, 또 한번은 친일파 사람들로 게임을 진행해봅니다.
△활동 4 : 발표 및 소감나누기
① 감추어진 영웅들과 친일파 사람들에 대해 각 모둠별로 소개하고 토론해보세요.
② 생각 키우기 활동 전과 활동 후 여러분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 보고 간단하게 느낀점을 이야기해주세요.
■ 생각 더하기
△이번 8월 15일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우리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바로 〈암살〉이라는 영화입니다.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당시 일제 강점기와 독립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당시에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셨던 일본군 ‘위안부’할머니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고, 많은 피해자분들이 아직 제대로 된 보상과 사과를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우리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그 아픔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너무 쉽게 잊혀 진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봅시다.
△〈암살〉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조국 광복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많은 분들의 노고를 우리 가슴속에 새겨 보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지 1000자 내외로 써보세요.
■ 주제 관련 도서, 영화
〈약산 김원봉〉김삼웅 지음, 시대의 창, (2008)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전. 격동의 시기에 태어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한 김원봉은 의열단을 창단하고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다. 김구와 함께 만주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서는 월북했다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밝혀지지 않은 정치적 모략 때문에 그동안 그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어왔다. 이 책은 약산 김원봉을 심도 있게 다룬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이다. 저자는 30여 년간 수집한 각종 자료를 토대로 의열단 창단의 의의,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집필 배경, 조선의용대 창설과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된 실질적인 동기 등 역사적인 사실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출처:교보문고)
〈암살〉(2015.7.22 개봉/최동훈 감독)
1933년 조국이 사라진 시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 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을 암살 작전에 지목한다.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은 이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암살단의 타깃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 한편, 염석진에게 거액의 의뢰를 받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암살단의 뒤를 쫓지만 임무를 수행하던 중, 3명의 암살자가 친일파를 암살하려는 독립투사이고, 반대로 자신을 매수한 염석진이 일제의 간첩임을 알고는 , 오히려 3명의 암살 임무를 도와주고, 그 과정에서 자신은 죽습니다. (출처 : http://movie.daum.net)
■ 학생글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다. 우리는 광복절을 위해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을 다하신 분들과 일본군 때문에 꽃다운 나이에 꿈과 희망을 뒤로 한 채 슬픔과 고통을 겪어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해본다. 그리고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살아가야겠다. 일본은 아직까지 큰 슬픔을 안고 살아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망언을 일삼고 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분노가 올라온다. 반드시 그분들이 꿈과 소망을 무참히 깨뜨리고 짓밟은 일본인들에게 꼭 사과와 그에 걸 맞는 보상을 받아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들이 나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길 바란다.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희생뿐만 아니라 일본에 맞서 일제 치하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거신 분들의 노력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선생님과 NIE시간을 통해 광복의 의미를 새기면서 독립투사들과 친일파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아직도 많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기도 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반드시 일제 강점기에 남아있는 잔재를 청산하는 길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알게 모르게 감추어진 영웅들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대한민국을 위해 공부하며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그분들의 희생과 기대에 보답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어떤 고생들을 겪으셨으며 무엇을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하셨는지를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우리 조국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애국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
‘암살’의 영화 대사처럼, 지금도 “일제청산을 위해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을 대한민국을 위해 인생의 전부를 바치신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김사은(토기장이학교 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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