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순간 포착
‘겨울이 왔잖아/ 기러기는 겨울에 날아오잖아/ 멀리, 멀리, 멀리/ 북쪽에서 날아오니까/ 기러기는 차가운 거지/ 텅, 텅, 텅/ 빈 공중을 날아오느라/ 기러기는 차가운 거지’
단순함이 오히려 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시와 동시, 산문, 어른을 위한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온 안도현 시인이 동시집 <기러기는 차갑다> (문학동네)를 펴냈다. 첫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2007, 실천문학사), 음식을 소재로 한 말놀이 동시 <냠냠> (2010, 비룡소)에 이어 세 번째로 펴내는 동시집이다. 냠냠> 나무> 기러기는>
이번 작품집에는 저자가 휴대폰 없이 살면서 풀밭에서 우는 풀벌레 울음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빗방울이 어떤 크기로 대지 위에 떨어지는지 유심히 바라보면서 10여년 만에 얻어낸 결실들을 엮은 46편의 동시가 실려 있다.
동시집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자연의 삶 속에서 발견한 경이로운 순간을 포착한 시, 오늘의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얻은 시,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음악에 귀 기울인 시, 나무처럼 산처럼 벌떡 일어서는 어린 것들의 생명력을 노래한 시, 웃음을 자아내는 말놀이 동시와 구불텅거리며 흘러가는 서사의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야기동시’등이 담겨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성장한다. 언어도 놀이다. 3부에서 5부에 걸쳐 수록된 ‘말놀이 동시’는 아이들에게 시가 하나의 놀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듯, 몇 번을 읽어도 물리지 않는 ‘말놀이 동시’는 우리말의 특징을 살린 글장난감이 아닐까.
‘오리 엄마 엉덩이/ 씰룩씰룩 흔들면/ 오리 아기들 엉덩이 욜랑욜랑 흔들고’ ( ‘소풍가는 날’ 중에서)
‘잠자리야/ 잠자리야/ 여기가/ 바로/ 너의/ 잠자리였구나’ ( ‘바지랑대 끝’ 전문)
‘아리아리 무슨 아리/ 항상 둥글어 항아리/ … 종종 맞는다 종아리/ 조심해라 조동아리’ ( ‘아리아리 무슨 아리’ 중에서)
이번 동시집을 읽다보면 자연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어느 날 아기가 번쩍 일어서는 모습을 경이롭게 포착하는가 하면( ‘섰다, 섰다’, 학원 안가는 아빠와 숙제 안하는 엄마가 머릿속에 어른어른하는 것이 아니냐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어른’). ‘무엇이든 시가 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 하나 하나가 다 시로 거듭났음을 알 수 있다.
‘머지않아 겨울이 온다. 겨울의 “텅, 텅, 텅/ 빈 공중을 날아오느라.’ 차가워진 기러기를 집에 데려와 기르며 따스하게 만져줄 수 있는 심성이 필요한 때이다. 유강희 시인은 이 동시집이 “어린이에게는 보물찾기 같은 시 놀이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동심을 잊거나 잃고 사는 어른들에게는 동심의 귀환을 깜짝 선물할 것”이라고 평한다.
안도현 시인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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