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춘문예에는 예년보다도 많은 분들이 응모한 열기로 세밑의 겨울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180여 분, 4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내놓았는데, 응모한 편수만큼이나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심사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을 천평칭(天平秤)저울에 올려놓고 오랫동안 경중을 재어보면서 선후우열을 가려보았다.
결국 ‘요양원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하고 싶다는 어머니와 마지못해 나선’ 허정진의 ‘요양원 가는 길’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연로하지만 아직은 정정해서 뜻밖의 주문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인연의 끝은 늘 이렇게 허망한 줄은 알지만 먼 훗날의 일이라고 밀쳐두었던 현실이 편도선 부은 목에 침 삼키듯 묵묵한 아픔으로 다가온’ 작자의 가슴 에이는 깊은 마음의 심연이 심사자의 가슴을 아리고 여울지게 한 리얼리티에 연유된 소이연인 것 같다.
수필은 작자가 직접 체험한 삶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독자로 하여금 공감과 감동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기고백의 장르다. ‘달관과 통찰과 깊은 이해가 인격화된 심경을 그저 붓 가는 대로’의 의미를 담아내는 게 수필(隨筆)이다. ‘따른다(隨)’에 함의된 속뜻은 어떤 수준에 ‘이른다(到)’나 ‘베스트(至)’와 동질적이므로 좋은 수필을 쓰려면 반드시 어떤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작자는 ‘단아하던 몸도 나뭇잎 떠나보낸 우듬지처럼 홀로 앙상’하고, ‘늘 꽃으로 남고 싶었던 어머니는 이제 단풍든 낙엽을 보아도 곱다고 할 줄 모르는’ 신세가 되어버린 어머니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을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산중 작은 요양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보았던 노구들의 고독한 삶의 앙상한 형상들을 ‘향기 잃은 꽃밭에 날개 접은 나비마냥 오순도순 정물로 모여 앉았다’ 거나, ‘형형한 기색도, 펄펄한 기운도 사라졌지만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절실하다’라는 빛바랜 산중요양원의 묘사는 허랑하고도 생생한 사실정물화로 다가들었다.
이러한 허허로운 노년의 삶과 죽음에 이르게 되는 김은옥 씨의 ‘은사시나무’나 송귀연 씨의 ‘잿불’에서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나타나고 있다. 어릴 적 어머니가 감자나 고구마를 찌기 전 껍질을 벗길 때 사용했던 김학철 씨의 ‘달챙이 숟가락’의 아린 어려운 삶에도 드리어져 있고, 고단한 노년의 노점상 제2인칭관찰자 시점의 수필 제례시장 박시윤 씨의 ‘마수걸이’에서도 리얼하게 그려졌다. 이들 모두 다 당선작의 범주에 들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당선작은 오직 하나여야 한다는 제한성이 심사자로서 매우 아쉽고 야속하기만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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